밤의 지배자

이브닝 로브는 밤을 집어삼킨다. 지금, 로브의 극적인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던 디자이너들은 로브를 보고 무릎을 쳤다. 이제는 일상복으로 변절한 이브닝 재킷의 대안은 역시 로브뿐이었다. 로브는 흔히 드레싱 가운이라고도 부르는데, 남자의 옷 중 가장 화려해서 공모라도 한 듯 집 안에서만 은밀하게 입었다. 빨간색 벨벳 커튼이 걸린 대저택에나 어울릴 로브가 컬렉션에 등장한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프라다 컬렉션에선 로브처럼 만든 코트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올봄, 에트로는 수트에 로브를 더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드러냈다. 그 격정적인 반향은 올 가을과 겨울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턱시도와 함께 입거나 이브닝 재킷을 대신하는 식으로. 루이 비통은 영국의 아티스트 채프먼 형제가 만든 기이한 세계를 로브에 새겼다. 채프먼 형제는 그림에‘ 지옥의 정원’이란 이름을 선물했는데, 오묘한 상상 속 생명체 사이로 보이는 꽃 문양 덕에 한층 기이하다. 드리스 반 노튼은 컬렉션 전체를 과감하게 이브닝 로브나 파자마로 채웠다. 실제로 로브는 파괴적이고 전염성이 강해 많은 사람이 남자의 관능에 대해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

 

HUGE HEFNER
< 플레이보이 >의 창업주 휴 헤프너는 지적인 동시에 향락적이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파자마에 이브닝 로브를 입고 다닌다. 공식적인 행사엔 더 기를 쓰고 입는다. 대놓고 원색적인 성을 팔지만 동시에 가장 지적인 필자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기사를 의뢰하는 남자. 그래서 그의 인생과 스타일은 기묘한 설득력을 얻는다. 육체와 정신의 해방. 은밀하게 입어야 했던 로브를 당당히 드러내는 것도 그 기질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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