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과 베토벤

김선욱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는 올해 11월에 끝났다. 히드로 공항 게이트 앞에서 그가 전해온 말들.

김선욱이 무대로 나왔다. 허리를 깊이 숙인 인사, 다시 고개를 드는데 걸렸던 시간. 그런데 첫 타건은 피아노 의자에 앉자마자 휘몰아치듯 했다. 9월 14일, 이날의 목록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7, 28, 29번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대장정의 일곱 번째 날, 김선욱 자신도 가장 어려운 곡으로 꼽았던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 클라비어’를 연주할 때의 그는 등반가 같았다. 산이 거기 있었고, 그에 반했으니 오를 수밖에 없는. “서울에서 2년 동안 진행한 프로젝트는 관객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음악가로서 베토벤 소나타 서른두 개는 특별하거든요. 꿈을 이루게 돼서 행복하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으려고 해요. 끝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고, ‘한 번 남았네’ 그 정도예요. 아쉬움도 많고,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히드로 공항 게이트에서, 그는 곧 스웨덴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 홀에서의 연주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화기 너머, 세계 모든 객석의 저편에서 그는 담담했다. 스물여섯의 막바지, ‘젊은 거장’이라는 칭호에는 멋쩍게 웃으면서도, 청년의 음성으로 하는 이렇게 어른 같은 말. “어디서 연주하는지가 크게 중요하진 않아요. 연주는 계속하는 것이고, 무대라는 공간과 무대 밖의 공간은 세계 어디서나 같으니까요. ”김선욱은 열세 살, 2001년의 첫 번째 독주회에서도 베토벤 소나타 7번을 연주했다. 2년 후의 독주회에선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을, 이듬해 KBS 교향악단과의 협연에서도 베토벤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베토벤 소나타 서른두 개가 되게 대단하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그 이후의 곡이 더 좋아요. 피아노곡이 아니어서 아쉽죠. 베토벤 소나타 32번이야말로 베토벤의 정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뒤에 더 있는 거죠. 하지만 피아노로는 할 수 없으니까….” 10년을 넘겨온 성실한 탐닉, 끝이 없는 길 위에 있다는 데서 오는 이상한 안도 혹은 아쉬움…. 베토벤 소나타를 완주하는 당찬 프로젝트는 스물다섯에 시작해 스물여섯에 마무리됐다. 모든 티켓은 일찍이 매진됐고, 관객은 거의 놀라서 박수를 쳤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서서히 풀려 올라가는, 어쩌면 지금 가장 새로운 베토벤을 목도하고 싶은 객석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 ‘올해의 남자’라니, 되게 민망해요. 저는 사실 주목을 받은 적이 없어요. 이런 말 하면 되게 그런가? 근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제 연주에 와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런던의 아침, 서울의 저녁. 마지막 보딩콜이 울리는 공항에서 김선욱은 다만 차분했다. 뜻밖의 행운은 이 청년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관객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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