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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 디자이너와의 인터뷰

2013.12.12GQ

벤틀리 익스테리어 총괄 디자이너는 한국인 이상엽이다. 벤틀리 본사와 공장이 있는 영국 크루에서 그와 나눈 비밀스런 이야기.

쉐보레 카마로부터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엽’으로 한국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
매우 좋았다. 카마로는 그야말로 미국적인 차다. 어렸을 때부터 디자인해보고 싶었다. 미국인보다 미국적인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카마로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베이비 부머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 같은 차다. 모터쇼에 출품한 카마로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콘을 직접 디자인하면서 자동차에 대해 더 깊은 눈을 뜨게 됐다. 더 재밌는 건 카마로가 젊은 세대에게는 <트랜스포머>의 범블비라는 거다. 마케팅을 너무 잘했다. 젊은 세대는 1969년 카마로를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 아이콘이 된 거다. 거기에 한국인 디자이너가 재미있게 맞아떨어졌다. 회사에서 나를 쓰는 걸 좋아했다. “21세기 범블비는 한국인이 디자인했다” 그런 식으로. 하지만 사실 자동차 디자인은 한 사람이 하는 작업이 아니다. 팀워크다. 천재는 예술을 할 수 있지만 자동차 디자인은 안 된다. 폭스바겐에서는 처음부터 다 다시 배웠다. 논리적인 디자인에 대해,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러고 벤틀리에 왔다.

당신은 GM과 폭스바겐을 거쳐 벤틀리로 왔다. 벤틀리에서 일하는 것과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GM이나 폭스바겐 아우디는 거대한 회사다. 매우 도전적이고,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고 타협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생산과 조합에 대한. 벤틀리는 작은 회사다. 벤틀리는 럭셔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디자인에 대해서는 자동차의 아름다움 자체에 대해 고민하고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벤틀리는 항상 전에 없던 모습이어야 하지만 10년, 20년 후에도 그대로 아름다운 디자인이어야 한다. 모든 차가 클래식이라 생각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벤틀리의 가치이고 아름다움이다. 디자이너는 그것을 유지하고 구현하기 위해 균형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벤틀리 디자인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냄새와 촉감 등 인테리어 요소도 벤틀리를 벤틀리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눈을 감고 차 안에 들어가면 즉시, 가죽 냄새로 벤틀리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 벤틀리는 더 부드럽고 두꺼운 가죽을 쓴다. 그러니 그 냄새로도 알아볼 수 있다. 카펫은 다른 브랜드보다 세 배 두껍다. 촉감도 다르다. 열쇠를 돌리고 버튼을 누를 때도 마찬가지다. 닿았을 때의 온도가 다르고 눌리는 소리와 느낌도 다르다.

왜 벤틀리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나?
GM에서 폭스바겐으로 옮긴 것은 독일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폭스바겐 골프를 어떻게 디자인하는지 알고 싶었다. 쉐보레 카마로 디자인과는 아주 다른 언어니까. 그런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배우고 싶었다. 골프는 스타일링을 위한 자동차가 아니다. 가장 아름답고 경제적이며 논리적인 박스다. 벤틀리에서 제안이 왔을 때,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럭셔리 자체에 대한 것. 켄 오쿠야마라는 디자이너가 있다. 피닌 파리나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내 상사였다. 그는 GM과 포르쉐에 있었다. 페라리를 디자인했다. 어렸을 때 그를 보면서 그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지금 10년이 넘은 사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나 자신에게는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 디트로이트에서 미국 디자인을, 폭스바겐에서 독일 디자인을 배웠다. 이제는 럭셔리를 배우고 싶었다. 벤틀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회사, 열정적인 브랜드다. 벤틀리 사람들은 늘 배지를 달고 다닌다. 벤틀리의 일원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이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영광이다. 아주 즐기고 있다.

요즘은 어떤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나?
다 말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SUV를 만들고 있다고는 귀띔해줄 수 있다. 2016년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것이 지금 당면한 주요 과제다. 더불어 내부적인 과제들, 다음 세대의 벤틀리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벤틀리 SUV의 디자인은 이미 공개된 걸로 알고 있다.
한 면의 그림만 공개됐다. 그나마도 실루엣만 알려져서, 세부를 짐작하기는 어려울 거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단언할 수 있다. 벤틀리의 SUV는 매우 고급하고 힘이 넘치는 자동차가 될 것이다. 몇 달 전에 공개된 콘셉트카도 있지만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나는 다 알고 있지만, 말해줄 순 없다. 아, 말해줄 순 있지만 당신을 이곳 크루 공장에 붙잡아둬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시장에서 인기 있는 아우디 Q7, 포르쉐 카이엔, BMW X5 등과 비교했을 때, 우리 SUV가 훨씬 프리미엄하다. SUV의 인기 있는 럭셔리 세그먼트에 비교해서, 우리 SUV가 훨씬 더 고급하고 넓다. 진짜 호사로운 SUV다. 벤틀리의 강인한 DNA가 살아 있고, 벤틀리는 이번 SUV를 통해 벤틀리의 정체성을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벤틀리 플라잉스퍼의 옆모습에선 이 거대하고 우아한 자동차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 쓴 선이 또 얼마나 적고 단순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개의 선으로 우아함과 품위를 동시에 표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벤틀리의 헤드램프는 동그라미 네 개다. 이번 세대부터 바깥쪽 헤드램프의 크기가 더 커졌다. 리어램프는 최대한 아래쪽으로 배치했다. 따라서 차가 더 넓고 격식 있어 보이는 경향이 생겼다. 벤틀리 인테리어가 좌우 대칭이라는 점은 뒷좌석에 느긋하게 앉았을 때 두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다. 하지만 그전에, 고유한 가죽 냄새로부터 벤틀리를 알아볼 수 있다. 송풍구에 쓰인 크롬의 감촉과 온도, 핸들에 달린 격자무늬 크롬 다이얼의 감촉을 느낄 때도. 이런 건 벤틀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속삭이는 전통적인 요소가, 안팎으로 가득하다.

벤틀리가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차다. 그런 차를 디자인하는 기분은 어떤가?
어렵고 도전적이다. 새롭고 산뜻한 디자인이 매우 중요하다. 벤틀리 DNA를 그대로 간직한.

당신이 생각하는 벤틀리 DNA란?
컨티넨탈 GT야말로 벤틀리를 브랜드 그 자체로서 보여주는 차라고 생각한다. 장르를 말하자면 ‘슈퍼 럭셔리’인데, 그 안에 압도적인 역동성이 함축돼 있다. 벤틀리를 디자인할 때 중요한 건 ‘버틀러 콘셉트’라고 생각한다. 집사, 베트맨에 나오는 것 같은 집사 말이다. 필요하면 뭐든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항상 뒤에 숨어 있듯이 존재한다. 벤틀리 디자인은 늘 한 박자 낮춘다. 단순하고 오래간다. 그러면서 보닛 안에 600마력 이상의 힘이 있다. 밟고자 하면 쉽게 쓸 수 있는 힘이지만 과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고객층도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아니다. 정말 우아하게,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편이다.

최근에 출시한 플라잉 스퍼에서 도드라지는 건 면과 면이 날카롭게 만나 생기는 각도다. 전에 없이 날이 서 있고, 그로부터 성격이 생겼다.
똑같은 날카로움인데, 그 각도에 따라 자동차의 성격이 많이 달라진다. 자동차는 햇빛을 받는다. 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으면 자동차의 선들이 약해진다. 그늘에 있으면 강해지고. 디자이너는 그런 여러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자동차를 그려야 한다. 그래야 디자인이 더 산뜻해진다. 차가 달라보인다.

자동차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단순함 아닌가?
맞다. 최대한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냄이 더 강렬한 디자인을 만든다. 그것이 성숙한 디자인이기도 하다.

벤틀리만이 고집하고 있는 디자인 단서들은 어떤 것이 있나?
네 개의 동그란 헤드램프, 메시 그릴 같은 요소. 모든 선이 아주 깨끗하고 깊다. 범퍼 라인도 없고 헤드램프 옆 라인도 없다. 깔끔하다. 아주 까다롭고 비싼 과정이다. 벤틀리 디자인은 항상 단순함과 정확함을 추구한다. 날카로운 지점은 다른 어느 회사보다 날카롭다. 깔끔하고 순정한 디자인, 그래서 나오는 미묘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벤틀리에는 있다.

당신 자신, 시장, 회사의 욕망이 있을 거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기준이 있나?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고객의 요점, 시장, 벤틀리 DNA를 지키면서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

이번 플라잉스퍼를 두고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었다. 비교적 남성적인, 광활한 느낌이 가미돼서 그런 얘기가 나온 것 같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이다. 1세대 플라잉스퍼가 나왔을 때는 뮬산이 없었다. 그래서 플라잉스퍼가 굉장히 정중하고 격식을 차리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뮬산이 있다. 벤틀리의 기함이다. 그러니 플라잉스퍼는 뮬산과 GT의 중간 정도로 하자는 것이 시작이었다. 뒷부분이 어깨처럼 딱 벌어져서 더 힘 있게 보인다. 뮬산은 정중하면서 우아하고 플라잉스퍼는 상대적으로 양감이 있고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는 거다. 벤틀리가 세계 어느 나라의 한 시장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벤틀리 본연의 디자인이다.

넓고 강한데 깔끔하다. 한데 붙을 수 없는 단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 아주 새로운 디자인이다. 플라잉스퍼처럼 생긴 세단이 없다. 리어램프가 굉장히 낮게 달려 있다. 그래서 그 위로 차체 자체가 굉장히 많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차가 낮고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네 개의 헤드램프 중 큰 것이 바깥쪽에 있는 것도 너비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당신이 진짜 부자라면, 돈도 많고 시간도 넘쳐난다면 어떤 차를 디자인하고 싶나?
벤틀리 중에서?

뭐든.
나는 아직 최고의 영국차를 만들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벤틀리를 만들고 싶다. 지금은 그것밖에 없다. 2013년 1월에 막 시작했다. 내 꿈은 멀리 있지 않다. 진짜 벤틀리, 최고의 벤틀리를 만들고 싶다. 그 이상은 없다.

지금, 당신의 인생이 맘에 드나?
재밌다. 눈이 이렇게 쌓여 있는데 그 길을 혼자 걷는 것 같은 기분. 그런데 하나도 두렵지 않다.

    에디터
    정우성
    기타
    COURTESY OF BENT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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