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황현산을 만났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밤에 일하고, 밤에 관해 말한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는 문학평론가의 산문집으로서는 기록적인 1만 부가 팔렸다. 사람들은 ‘밤’이 무슨 의미인지는 물었지만, ‘선생’에 관해선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다. ‘우리 시대의 선생님’이라는 말이 쉽게 나왔다. “그런 말이 나오면 깜짝깜짝 놀라요. 선생 자리가 얼마나 불편합니까. 무슨 간단한 일에도 지혜로운 소리를 해야 할 것 같잖아요. 늙는다고 해서 지혜가 생기지 않습니다.” 햇빛이 드는 강의실에서 황현산이 말했다. 나이가 드는 것 그래서 선생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언젠가 박물관에서 <몽유도원도>를 보기 위해 두 시간씩이나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그는 이 책에 쓴다. “사람들은 반드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해도 위대한 어떤 것에 존경을 바치려 했으며,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교정을 떠난다. 봄이면 본관 꼭대기 층에 있는 독서회실에서, 다람쥐길이라고 불리는 좁은 산길을 내려다보던 게 벌써 50여 년 전이다. “책 읽다가 창밖을 보면 햇빛이 비추고, 산에 벌이랑 나비 날아다니는 게 보였죠. 그때 느꼈던 평화로움과 행복감을 잊지 못해요.” 그때는 초여름이었지만 이제는 초겨울이 좋다. “나뭇잎이 반쯤 떨어진 상태가 참 아름다워요. 여름의 거칠고 음란했던 것이 정리되고 나면 사물의 본모습이 드러나지만, 완전히 조락으로 들어간 건 아니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미학과 이 계절이 잘 어울려요.” 또한 지금 자신의 삶이 그 계절이라고. 그러나 그는 시간의 등을 보고 쫓아갈 생각은 없는 듯하다. “계속 알아보고 연구해야 하는데, 당장 해답을 내놔야 하는 선생 같은 위치에 놓이는 건 공부에 도움이 안 돼요.” “일단 발표한 글은 다시 고쳐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속임수예요. 그것이 나였는데, 내가 아닌 것처럼.”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 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라며”, “끈기 있게” 기다린 사람은 사실 황현산이었다.

그에게 시간은 원으로 흐른다. 유토피아에서 출발해 유토피아로 향한다. “대학도 점점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어요. 학문의 자유와 발전에 치명적이죠. 저는 대학이 낭비구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체험하는 해방 공간이 돼야죠. 여기에서 유토피아의 행복을 경험하고,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야죠.” 올해 황현산은 어떤 위대한 선생의 모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성실한 학생이야말로 선생이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나이가 들면 보통 소박하고 단순한 걸 좋아한다는데, 저는 점점 더 복잡하고 치밀한 시가 좋아요. 그런 시들은 이 말을 꼭 하고 싶은데, 내 말을 좀 들어줄래요?, 라고 해요. 들어줄 사람을 찾는 거예요. 듣는 사람이 있다고, 내가 잘 들었다고 그들에게 증명해주고 싶어요.” 여지없이, 밤에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