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없는 것 – 1

뻗대는 걸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시, 그렇게 도무지 불가능을 모르는 것 같은 도시, 그러나 막상 찾으려 들면 좀처럼 없는 도시, 아예 불모지인 것만 같은 도시, 서울. 서울에 사는 60인이 말하는 아직도 서울에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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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스 호텔 같은 호텔 뉴욕에 있는 와이스 호텔은 1백여 년 동안 원단공장이었던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호텔로 만든 곳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이런 사연을 지닌 호텔을 보지 못했다. 세운상가를 멋진 호텔로 변신시키면 어떨까? 원도심 활성화를 바라고, 또한 사연 많은 건물들이 힘없이 허물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황재환(멀티숍 ‘바버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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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델 토로, 그레이스 캘리 전시 전기자동차의 로망 테슬라, 마이애미의 느슨한 감성을 품은 신발 브랜드 델 토로, 그리고 그레이스 캘리 전시회. 스콧 한(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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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들 서울엔 킨들이 없다. 아마존이 한국어 서점 및 전자책 사업을 시작하지 않은 탓이다. 스테파니 메이어에서 E. L. 제임스까지, 오늘날 인기 대중 작가는 대부분 킨들을 통해 입지를 다지고 인기몰이를 하는데, 한국에서는 기존의 문단과 출판의 논리에서 벗어나 대중과 직접 호흡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 물론 국내에서 킨들을 구입하고 배송받는 건 가능하지만, 전체적인 시스템과 생태계로서의 ‘킨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그 변화가 도래한다면 시시하게 고사하고 있는 한국 문단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노정태(번역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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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포스터만 파는 가게 이미 막을 내린 영화, 공연, 전시의 오리지널 포스터와 전 세계의 오래된 낱장 인쇄물을 파는 가게가 필요하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 찍어낸 것에만 목말라하면 ‘그 새로운 것이 낡았을 때’라는 가정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로(서점 ‘유어 마인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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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스토어, 리처드 아베돈 전시, 트레이더 조스 마켓…. 뉴욕에서 레고 스토어를 보고 눈을 번쩍 뜬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서울에는 ‘레고스토어’도 없다. 앤 아더 스토리즈도 안 들어와 있다. 패션 사진가들의 전시는 제법 늘었는데, 어빙 펜과 리처드 아베돈의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면 어떨까? 트레이더 조스 마켓이나 홀푸드 같은 유기농 매장은? 빅토리아 시크릿은? 고급한 퀴어 잡지는? 이렇게 없는 게 많은데 그럭저럭 살고 있다. 서재우 <제이제이 매거진>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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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약들 별의별 것들이 다 수입되는 서울에서 왜 디자인 예쁘고 품질 좋은 치약들을 살 수 없는 건지 궁금하다. 치약 성분 관련 규제가 엄격해서 그런가도 싶지만, 욕실에 죽염이나 호랑이가 그려진 ‘못생긴’ 치약을 놓는 건 정말 싫다. 유시몰, 톰스, 마비스, 아요나 같은 치약들이 수입되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오선희(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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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스폿 뉴욕에 있는, 말하자면 뮤직프로듀싱과 디제잉을 가르치는 학원이다. 프로그램이 훌륭하고 무엇보다 거기 다닌다는 사실이 멋지게 들린다. 전국민 DJ시대 DP, 내가 한번 수입해볼까? 김은신(‘무대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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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펜부르크와 마쿰의 그릇 서울의 럭셔리 시장은 여전히 중년 이상의 소비자가 주를 이룬다. 그나마 패션은 제법 섞였다지만 ‘리빙’의 경우엔 중년 이상의 소비자가 아니면 아예 구매 자체가 없는 편이다. 그런데 ‘리빙’의 경우, 중년 이상 소비자는 무조건 ‘세트’ 구매를 우선한다. 그릇이든 가구든 한꺼번에 세트로 들인다. 예민한 취향이 아니라 이름값에 기대는 방식을 택하기 일쑤다. 그러니 어떤 브랜드는 아예 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 독일 그릇의 우아함과 강인함을 눈에 선하도록 보여주는 님펜부르크도, 네덜란드 황실 도자기의 황홀한 장식미에 현대적 디자인을 덧입힌 마쿰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서울에서 진짜 럭셔리 같은 건 사실 불가능하다. 이효경(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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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rpm과 클로즈드 아메리칸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본 브랜드들은 아름다운 기술력과 정성을 보여준다. 그중 45rpm은 야무지게도 ‘인디고’라는 정체성을 확립했다. 꽤나 비싼 가격 때문인지 웬만한 멀티숍에서조차 구경하기 힘들지만, 정말 정성 들여 만든 옷맛을 아는 데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다. 그런가 하면 독일 브랜드 클로즈드의 바지는 지상 최고의 핏을 보여준다.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곳 나온 그 바지를 입는 순간, 여태까지 입었던 건 그냥 바지 비슷한 게 아니었나 싶다. 이현진(갤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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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데폿 홈 데폿만 들어온다면 혼자서 집도 지을 수 있겠다. 김보성(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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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틸만스 방한 테리 리처드슨과 유르겐 텔러, 그리고 지금 전시가 열리고 있는 라이언 맥긴리까지, 세 사진가와 서울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패션계 일각을 떠들썩하게 만들며 방한했고 화보를 남겼으며 그 화보가 모두 참담했다는 점이다. 이유도 같다. 그 이름에 기대어 삽시간에 쇼를 완성하려다가 모든 게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다.우스개 삼아, 어쨌든 볼프강 틸만스는 아직 방한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방한한다는 소식에 이태원 게이 디스코에서 연예인 파격 화보를 기획하는 이에게 ‘올해의 푸닥거리상’을 일찌감치 낙점하고 싶다. 신유홍(큐레이터)

 

뉴욕에서 온 진짜 슈프림 스트리트웨어를 취급하는 대부분의 멀티숍에서 죽도록 수입하고 싶어 하는 뉴욕의 브랜드. 매주 목요일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품절에 품절을 거듭하는 ‘핫’한 브랜드인데, 유독 한국에서만 정식 수입이 불가능하다. 어느 동대문 업자가 슈프림 로고를 묘하게 베껴 상표권을 등록해둔 탓인데, 뉴욕의 진짜 슈프림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분노가 태평양을 건널 기세라는 소문이 있다. 문희배(멀티숍 ‘소품’ 대표)

 

폴케 양말 독일 백화점에 가면 이 브랜드의 양말과 스타킹을 색깔 별로 모조리 다 사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비치는 정도의 미세한 차이, 발끝에 닿는 부분의 묘한 감촉, 같은 검은색이라도 색 깊이의 작은 차이에 따라 스타킹은 보기보다 품질의 차이가 엄청나다. 폴케는 어떤 제품을 사도 늘 만족스럽다. 군더더기 없이 매끄러워서 광고 속 여자들처럼 다리가 길어지는 기분마저 든다. 김지은(리빙 스타일리스트)

 

스코티시 레스토랑 런던의 보이스데일처럼 본격적인 스코티쉬 레스토랑이 아직 서울엔 없다. 스코틀랜드 전통 요리와 진짜 죽여주게 맛있는 앵거스비프를 파는 곳, 그러면서 싱글 몰트위스키의 목록이 끝도 없이 늘어지는 곳. 이런 레스토랑이 생긴다면 매일 가서 저녁을 먹을 테다. 유용석(‘한국위스키협회’ 이사)

 

셰프엔 감자칼 뉴욕에 갈 때마다 보따리꾼처럼 열 개씩 사오는 제품이 있다. 주변인들의 엄청난 주문에 정신을 못 차릴 때도 있다. 홀푸드마켓에서 파는 손가락에 반지처럼 끼우는 감자칼 이야기다. 셰프엔이라는 브랜드가 붙은 이 주방기기는 비슷한 아이디어 상품이 나을 법도 한데, 아직 서울엔 어디에도 없다. 손가락에 끼운 감자칼이 손바닥 안으로 쏙 들어오는 식인데, 이걸로 감자, 당근, 우엉 등을 쓰다듬으면 신기하게도 껍질이 쭉쭉 벗겨진다. 유지현(홍보대행사 ‘더 레이어’ 대표)

 

실비 길렘이 추는 발레 <볼레로> 현대 발레의 대가로 불리는 모리스 베자르가 1960년에 안무를 맡은 <볼레로>는 조르주 돈, 마야 플리세츠카야 등 당대의 무용수들이 빠짐없이 거친 곡이다. 그중에서도 실비 길렘이 공연하는 <볼레로>는 절제된 움직임 안에서 보여주는 힘 있는 동작과 자세로 이전 세대의 모든 <볼레로>를 넘어선다. 그녀는 이제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긴 크레센도를 다루는 그녀의 움직임을 하루빨리 서울에서 보고 싶다. 특히 <볼레로>는 후반부 원형 무대를 둘러싼 무용수들의 의상과 무대 세팅이 공연마다 변하면서, 독무자와 군무자의 관계를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 서울이라면 어떤 이야기일까. 김수랑(일러스트레이터, ‘오벌’ 대표)

서울에 없는 것 –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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