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자 장유승의 쓰레기 같지 않은 쓰레기



얼마전 출간한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을 읽어보니 당시 널리 읽혀서, 그러니까 흔해서 ‘쓰레기 고서’가 된 측면이 있다. 대체로 실용서들인데 특별히 의도한 결과인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실용서가 많다. 지금도 헌책방에 제일 많은 게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책들이다. 출간됐을 때 주목받지 못했던 책들이 오히려 귀하고 비싸다. 우연히 한 무더기의 고서를 얻게 되었고,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고서 전체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샘플이었다. 가끔 지방에 오래된 집안의 문헌조사를 나가는데, 그런 집안에서 나오는 책들이 거의 비슷한 구성을 보인다. 희귀한 책은 극히 일부고, 대부분 그 당시 읽혔던 실용서, 교과서, 경전들이다. 보편적인 고문헌의 현황이 그렇다.

대부분이 필사본이라는 측면도 재밌다. 필사본의 문헌적 가치는 모두 낮은가? 필사본이라고 해도 유일본이다. 같은 사람이 필사해도 같은 책은 없다. 글씨를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쓴 책은 필사본이라도 값이 나간다. 대부분의 필사본은 시골 선비들이 책 구하기 힘들어서 베껴 쓴 거다. 오히려 인쇄한 책이 유일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좀 독특한 부분이 있다. 옛날부터 많은 부수를 인쇄하지 않았다. 서양과 다른 부분이다. 서양에서 인쇄술, 활자의 발견을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는 건 그걸 통해 엄청나게 책을 찍어내고 지식을 보급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인쇄술을 발명했지만 보급의 용도로 쓰지 않았다.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반란을 반역이 아닌 민란의 뜻으로 쓴 듯하다.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 뉴스에 나오는 고문헌은 실록이니 의궤니 하는 것들이다. 옛날 사람들이 몇 명이나 봤을까 싶은 책들. 그런 책들만 떠받들고, 정작 보통 사람들과 호흡했던 책들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의 의도가 조금 있고, 한편으로는 전략적이다. 다들 중요한 책으로 논문 쓰려고 할 때, 남들이 하지 않았던 독특한 걸 찾고자 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궁벽한 걸 찾는다면 실패하는 거고, 다 아는 걸 다른 각도에서 봐야겠다는 전략이었다.

모든 장이 산문으로 시작한다. 이 책을 어떤 종류로 정의하고 썼나? 지금은 아마도 문헌정보학 코너에 있다. 아무리 산문 성격이 강해도 제목이 ‘고서’니까. 사실 고서를 다룬다는 건 어느 분류에도 속할 수 있다. 어디에 특별히 들어가야 한다는 의도는 없었다.

산문의 비중이 상당하다. 꽤 길게, 주변 이야기를 두루 풀어놓는다. 산문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책이 완성됐을 때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니 사생활을 적은 부분에서 의견이 갈렸다. 개인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쪽과 이런 이야기 없으면 책이 너무 딱딱하다는 쪽. 책을 내고 매체 기사를 봐도 똑같이 갈렸다. 개인적으로는 첫 대중서라서 그런지 의도치 않게 과하게 들어간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중이 그럴 뿐 사담으로 읽히지 않았다. 산문의 통찰은 유익하고 적절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고서와 관계 있는 이야기를 했고,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늘어놓기보다 다른 사람도 해봤을 법한 보편적인 경험을 넣어서 공감을 얻고자 했다.

확실히 이 책이 ‘연구서’로 남기를 바라진 않은 듯하다. 한자문화권의 고전을 읽기 위한 입문서로 좋을 것 같다. 고문헌은 모든 인문학자가 기본으로 깔고 간다. 고서를 연구하는 서지학자들은 따로 있다. 그들이 책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나는 사실 문학 전공자다. 고서 지식이 그리 깊지 않은데, 오히려 그 덕에 좀 더 쉽게 썼다.

인문학의 대중화에 대해 말하면서 “대중의 층위가 다양하다면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다양하다”고 적었다. 한국학이나 고전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의 입문서가 될 수 있는 책을 써야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꼭 좋은 건 아니지만 외국의 예를 들면 책의 종류가 다양하다. 같은 주제를 굉장히 다양한 층위에서 다룬다. 우리나라는 <열하일기>라면, 어린이용, 청소년용, 어른용, 전문가용 이 네 가지다. 이런 수직적 층위 말고 수평적으로 다른 층위를 다루지 않는다. 고서나 옛 문헌에 관한 책들이 없지 않다. 학자들 중 일부가 쉽게 개괄적으로 설명해놓은 책들. 그런데 다양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책의 다양성 측면에서 이 책 하나를 더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웃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이 책에는 당신의 유머 코드가 있다. 편지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을 구어로 푼다든지, 아내, 방송국에 대고 딴청 피우듯이 던지는 말들. 일단 재미가 있어야 책을 읽지 않겠나. 보통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하다 보면 일반인의 언어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학자들이 쉽게 쓴다고 써도 보면 하나도 쉽지 않다. 정말 쉽고 재밌게 쓰려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힘을 빼려고 많이 노력했다. 유머는 반은 의도고, 반은 어쩌다 나왔다. 이 책 자체가 반은 우연이고 반은 의도이듯이.

사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고 대체로 글과 유기적이다.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과정에도 관여했나? 한국일보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부문 후보에 올라갔다고 들었다. 사진작가 김춘호가 찍었는데, 원래는 연예인이나 명품을 찍는 분이고 책을 찍어본 적은 없다고 들었다. 보통이라면 비용이 한정돼서 그런 분에게 사진을 맡기기 어려운데 출판 전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여유가 생겼다. 찍은 걸 보니 너무 잘 찍어서, 쓰레기가 쓰레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책이 처음이라 편견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찍었다면 쓰레기처럼 나왔을 거다. 다음은 편집의 승리다. 보통 고서를 다룬 책들은 얌전하게 잘 보이게 놓는데, 일부러 반항적으로 사진을 비틀고 기울여서 배열했다. 고서를 다룬 책들 중에서는 정말 처음일 거다.

한문으로 된 문헌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자료가 아니라 이미지로 기능하는 측면이 크기도 하다. 나로선 조금 읽어주길 기대했다. 되도록 쉬운 부분 위주로 찍으라고 지정해주기도 했고.

책을 수집한다거나 책의 물성에 대해 가지는 애착은 없나? 거의 관심이 없다. 연구자로서 알아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만 안다. 주로 내용을 보니까. 규장각이나 장서각 같은 기관에서 고서 가지고 목록 만들고 논문 쓰고, 보물이나 국보 보면서 연구도 하고, 이미 많이 보긴 했다. 책에 관한 호사는 누릴 만큼 누렸다.

이 책을 쓰고 쓰레기 고서들은 어떻게 처리했나. 아직 갖고 있다. 내가 모든 분야의 연구자가 아니니까, 각 분야의 경전 연구자들한테 나눠줄 생각이다. 그들도 책을 많이 봤겠지만 실물은 잘 안 가지고 있다. 자, 이걸로 또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내 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서를 다룬 책이지만, 책 너머에서 다루는 건 인문학이다. 지금 한국의 인문학. ‘대학’ 장에서 자기 수양에 대해 말하는 부분, ‘유토피아’는 완벽한 사회가 아니라 꿈을 잃지 않는 사회라고 말하는 부분, 고전이 멘토라는 부분 등등. 인문학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책들, 우리나라 인문학과 대학의 폐해를 깊이 있게 논한 책들은 이미 많다, 사람들이 잘 안 읽어서 그렇지. 난 아주 얕게 다뤘다.

학자도 학생도 아닌, 이미 자기만의 관성이 생겼고, 대부분 어린 시절의 꿈과는 다른 삶을 사는 평범한 일반인들에게 인문학을 해야 하는 당위를 설득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 같다. 평소에 하는 얘긴데, 우리나라에 1백 명이 있다면 인문학 얘기만 나와도 정말 싫다고 격하게 반발하는 사람은 10명도 안 된다. 이건 배워야 해, 하는 사람도 10명 정도밖에 안 될 거다. 대부분은 관심도 없고, 특별한 호불호도 없다. 근데 이 부류는 아주 재미있는 사극이 나온다거나, 가끔 신문에서 새로운 문헌이 발견됐다고 하면 얼마든지 관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접근한다. 그들에게 인문학 고전 좋은 거 많으니까 와서 배우라고 할 필요 없이, 스스로 가치를 깨닫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 불러 모아서 이거 중요하니까 꼭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학자들이 재미있는 걸 보여주면, 사람들은 저절로 온다. 지금 일부에서는 중고등학교부터 고전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물론 고전 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재밌게 만드는 작업 없이 막연히 인문학이 홀대 받는다, 고전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로는 사람들을 끌어낼 수 없다.

그런 문맥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가장 설득력 있게 대중에게 전달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대중을 상대하지 않는 아이러니”를 말한다. 전문 연구자지만, 대중과 공유하려는 욕심이 있다. 일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결과가 지금이다. 인문학 소외. 보통 고서 마니아, 수집가 하면 ‘오타쿠’ 취미로 생각하지 않나. 그걸 어디다 써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그저 책 자체가 좋아서 수집하는 경우다. 국내에도 고서 관련 책이 꽤 있는데, 대부분 이게 얼마나 귀한 책인데 내가 힘들게 구했다, 하는 이야기다. 재미는 있지만 나는 별로 공감이 안 된다. 이게 우리와 무슨 상관일까, 라는 고민을 안고 있다.

대중을 상대하는 게 학자의 의무라고 보나?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 강요할 수는 없다. 미국 대학에도 아주 아카데믹한 연구만 하는 교수가 있는가 하면 대중적인 교수도 있고,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한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좋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으면 그룹이라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한국에서는 개인이건 집단이건 색깔이 하나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대중을 만나는 건 연구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연구자들은 논문 하나에 점수 얼마, 이렇게 평가받는데 이 책은 그런 평가도 못 받는다. 연구서가 아니니까. 나한테 도움은 안 되지만, 이런 일은 좀 젊은 연구자가 할 수밖에 없다. 사실 지금 30~40대 인문학 연구자들이 그런 노력을 많이 한다. 나는 약간 손을 보탰을 뿐이다.

마지막에 “특별한 존재와 평범한 존재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존재 자체의 가치가 아니라 관계다”라고 썼다. 이 책과 각별한 관계를 형성한 독자라면 다음에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까? 고전을 읽으라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여전히 어렵다. 역시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은 연구자들이 쉽게 설명해놓은 책이 좋겠다. 또 책에도 썼지만, 대화로 이루어진 고전이 좋다. 대화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게 인문학의 본질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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