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전방위적 홍명보

2014.01.14GQ

전술적 홍명보
전술적 측면에서 수비수 출신인 홍명보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수비 조직력이다.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세계 수준과는 꽤 거리가 있어서다. 선수 시절부터 수비수로 활약해 수비 조직력이 전체 팀 조직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은 수비수를 훈련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다. 하지만 대표팀은 훈련시간이 짧기에, 홍 감독은 새로운 전술을 찾아내기보단 반복과 익숙함을 강조한다. 청소년 시절부터 함께해온 선수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드필더 운용방식 역시 공격보단 수비에 우선순위를 둔다. 그렇다고 선 수비 후 역습 형태는 아니다. 베이징 올림픽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치른다.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은 활동량을 토대로 광범위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선수를 선호하며, 중앙보다 측면에서 공격을 전개한다. 공격형 미드필더를 사용하는 방식이 좀 독특한데, 비교적 포메이션의 무게중심이 뒤에 있기 때문에 해당 포지션의 선수는 종적으로 이동하며 득점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홍명보 감독이 맡은 팀들은 수비는 꾸준히 안정적이었지만, 공격은 다소 단조롭고 답답할 때도 있었다. 중앙을 깨는 과감함보다 측면 위주의 안정적인 공격 방식을 택해 역동성이 떨어진다. 원톱에 대한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공격 자원에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여전히 이상적인 만능형 공격수를 찾고자 한다. 최근엔 스트라이커의 동선이 지나치게 미드필더 쪽으로 치우치면서공격형 미드필더가 실종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젠 탄탄한 수비만큼이나 세밀한 공격 전술도 필요한 시점이다. 박찬하([KBS N 스포츠] 축구해설위원)

관리자 홍명보
“사람들은 뭔가를 더할 거라 말하지만 나는 지금 빼는 중이다.” 부임 초 득점력 부재로 어려움을 겪을 당시 홍명보 감독이 한 말이다. 축구계는 그에게 혁신과 변화를 통한 덧셈을 기대했지만 그가 강조한 것은 뺄셈의 묘였다. 그가 부임했을 때, 대표팀은 기성용의 SNS 파문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살을 붙이기 전에 뼈대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읍참마속’이었다. 기성용을 베고 가면 홍명보 감독은 팀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죄를 통한 공포정치는 없었다. 기성용에겐 칼 대신 묵직한 메시지를 보냈다. 경고였지만 동시에 배려였다. 한 사람을 죽이긴 쉽지만 홍명보 감독이 파악한 본질적 문제는 개인이 아닌 환경과 분위기였다. 그는 대표팀 소집 시 선수들에게 수트를 입게 했다. 그리고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 입구부터 걸어 들어오라고 지시했다. 이전에는 선수들이 자신을 후원하는 브랜드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고급 외제차를 타고 센터 안까지 들어왔다. 홍명보는 ‘천생 리더’로 평가받는다. 특유의 리더십과 조직 관리는 감독이 되기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시종일관 포커페이스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은 선수들은 물론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절대적인 믿음을 줬다. 지난 3년간 대표팀은 파벌설에 시달렸고 조광래, 최강희 두 전임 감독도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눈앞의 목표를 위해 조광래 감독은 해외파의 기량을, 최강희 감독은 국내파의 결집을 우선시했다. 돌아온 것은 반대 진영의 반발이었다. 홍명보 감독은 원칙을 중시한다. 대표팀엔 항상 이목이 집중되고 좌우에서 흔드는 말이 많지만, 홍명보 감독은 꿋꿋하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 해외파와 국내파로 구분지어선 안 된다. 오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가 있을 뿐이다”는 원칙이다. 대표팀에 들어오는 순간 선수들은 소속팀 구분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희생해야 한다. 홍명보 감독은 유럽에서 잘나가는 선수에게는 겸손을, 처음 뽑힌 선수에겐 자신감을 주문한다. 이것은 거스 히딩크, 알렉스 퍼거슨, 주제 무리뉴 등 유명 감독들도 동일하게 쓰는 방식이다. 몇몇 대형 스타에 굴복하지 않고 팀을 장악한다. 무엇보다 홍명보 감독이 꿋꿋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후배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는 리더라서다. 홍명보는 자기 못지않은 영향력이 있는 박지성, 자기 색이 강한 박주영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것이 이름값과 축구 실력에 의해서든, 인간성과 자질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든 그는 감독으로서 이미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을 향한 호감과 존경심을 활용할 줄 안다. 수직적 관계를 예상한 이들에게 그는 뜻밖의 수평적 태도로 다가간다. 일각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지나치게 팀에 얽매인다는 지적을 한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팀의 틀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선수의 창의성과 재기를 묶어버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딩크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축구의 경쟁력으로 개인과 전술이 아닌 조직과 희생을 내세웠다. 대표팀 감독은 한국 축구의 시스템 전체를 바꾸는 자리가 아니다.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자라난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축구의 토양은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배출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홍명보 감독의 원칙은 주어진 현실과 잘 맞는 최선의 선택이다. 서호정([풋볼리스트] 기자)

언론과 홍명보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황태자다. 대학생 신분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던 때부터 2002년 월드컵을 지나 지금까지 홍명보는 늘 한국 축구의 상징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부임 초기 잠시 그를 외면한 탓에 시련을 겪기는 했지만, 그것이 유일한 굴곡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축구인 홍명보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물론, 홍명보 본인이나 그의 팬들은 이러한 평가를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다. 스포츠 스타의 삶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땀이 엄청나게 닦여나간 뒤에야 비로소 대중 앞에 드러날 기회를 얻는 것이니까. 하지만 축구계에 등장한 이래 그는 늘 승자였다. 한국 축구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날은 항상 그가 있었고, 스포트라이트도 그의 차지였다. 성공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현재의 홍명보는 그의 과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얘기다. 홍명보는 그런 인물이다. 독일의 베켄바우어, 네덜란드의 크루이프, 브라질의 펠레 같은 입지라 할 수 있다. 축구인으로서 이른바 ‘안티’ 없이 여러 진영의 지지를 두루 받는다. 기량과 성과로 세계 수준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라면 차범근이겠지만, 차범근의 활동과 평가는 대부분 한국 밖에서 먼저 이뤄졌다. 반면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제도권 안에서 충실히 성장한 인물이다. 차범근은 한국에 축구 시장이 열리기 훨씬 이전부터 유럽 시장을 종횡한 인사였고, 그래서 한국 축구의 기득권 세력이나 언론이 다루기에는 까다로운 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영광을 함께하며 국내 언론에서 충분히 다뤄온 인물이다. 늘상 우러러봤던 선수인 한편,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주변의 스타. 그는 척박했던 한국 축구계에 발을 딛고 서서, 출전한 대부분의 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언론이 홍명보를 대하는 방식은 그래서 존중과 지지를 동반한다. 게다가 그는 꼼수나 감언이설을 즐기는 인물이 아니다. 대인관계는 절제할 줄 알고, 언행은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즉, 홍명보가 언론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엔 뭔가 특별히 노력한다거나 언론을 다루려는 인상이 없다. 그저 자기 방식을 고수하는 것뿐이다. 언론 역시 그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제껏 보여준 모습이 거짓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서형욱([tvN] 축구해설위원)

    스탭
    Illustration/이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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