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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틀리의 유일한 세계

2014.01.21GQ

벤틀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 그들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이 제공하는 모든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더 희소하다. 벤틀리 비스포크 서비스가 제공하는 신세계.

영국 체셔에 크루crewe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 근처에는 소와 양을 기르는 농장이 있었다. 풀냄새, 거름 냄새가 바람을 타고 열어둔 차창으로 들어왔다. 그 냄새 사이로 나던 숙성된 나무 냄새. 싱글 몰트위스키를 마실 때나, 핀란드식 사우나에서 나무가 잔뜩 머금은 수분이 증발할 때 올라오는 그윽한 냄새. 크루에 있는 벤틀리 공장에서 흘러드는 냄새였다. 하루에 55대 정도의 벤틀리를 손으로 만드는 곳. 손으로 하는 작업이야말로 가장 정직하고 가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사람들의 진중한 마을.

공장은 과연 천천히 돌아갔다. 사람의 보폭과 손놀림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 벤틀리의 골격과 엔진을 조립하는 공정에는 숙련된 장인과 젊은 엔지니어가 적당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인테리어 공정이 한창인 곳에서도 같은 풍경을 봤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떤 할아버지는 벤틀리 공장에서만 30년째 가죽을 다듬고 있었다. 그 옆에는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또 다른 이가 핸들에 가죽을 씌워 꿰매고 있었다. 물론,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는 부품들은 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조립하고 잇고 다듬고 꿰매는 건 사람의 몫이다. 이들의 작업을 고집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있을까?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서 팔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 아닌가?

 

벤틀리의 세계관은 좀 다르다. 이들의 첫 번째 지향점은 벤틀리의 가치 그 자체에 있다. 벤틀리는 충분한 돈이 있어도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선택하기 어려운 차다. 깊이 알수록 마음으로 좋아하게 되고 결국, 벤틀리 말고 다른 자동차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울타리 없는 고산지대에서 놓아 기른 수소가죽만 쓰고, 세계 곳곳에서 한 그루씩 벨 때마다 다시 한 그루를 심는 식으로 균형을 생각하는 마음 씀. 그 가죽을 손으로 자르고, 손으로 씌우고, 손으로 가늠해 바늘로 꿰매는 공정. 벤틀리의 기함 뮬산을 만드는 데는 총 300시간이 걸린다. 인테리어에만 170시간이다. 핸들 하나에 가죽을 덧대 꿰매는 데만 18시간이 걸린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가정하면 인테리어에만 한 달, 총 7주가 걸리는 셈이다.

이런 방식이라야 차원이 다른 자동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같은 모델이라도 주문에 따라 천문학적 변형이 가능하다. 가죽의 종류와 색깔, 나무의 종류와 무늬, 시트 머리받침에 수놓을 수 있는 문자 혹은 그림, 나무 패널에 그릴 수 있는 그림, 그걸 자개로 할 건지 다른 나무로 할 건지 고민하는 시간…. 이 정도의 고민은 차라리 가벼운 편이다. 중절모를 즐겨 쓰니 차고가 좀 높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뒷좌석 팔걸이 뒤에 냉장고를 만들고 싶다는 말도 진심으로 듣고 최상의 품질로 구현할 줄 아는 회사가 벤틀리다. 이런 걸 맞춤 양복 만들 듯 세심하게 돌봐주는 서비스를 ‘비스포크’라 하고, 벤틀리의 비스포크 서비스를 뮬리너Mulliner라고 부른다. “우리는 정해진 옵션을 선택하는 정도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정말 유일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요. 다른 브랜드에서 이런 말을 할 땐 이미 마련된 옵션 중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뜻인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그 몇몇의 조합이겠지요. 우리가 ‘유일한’이라는 말을 할 때는 고객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 창조하고 디자인한 자동차를 말합니다.” 벤틀리 뮬리너 서비스 디렉터, 리처드 찰스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크루 공장을 찾은 한 고객은 자신이 바르고 있는 매니큐어 색의 벤틀리를 갖고 싶다고 했다. 담당자는 그 매니큐어를 한 통 가질 수 있겠느냐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담당자는 자신의 손톱에 그 매니큐어를 바르고 색깔을 조합하는 담당자에게 뛰어갔다. 다른 고객은 상담 담당자가 매고 있는 넥타이 색깔의 벤틀리를 원한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바로 자신의 넥타이를 잘라 샘플로 썼다. 자신의 믹서와 같은 색으로 만들어 달라던 이탈리아 디자이너도 있었다. “서울 남산에서 11월 즈음 떨어지기 직전의 단풍 색으로 부탁드려요”라는 말도, “아버지가 즐겨 쓰시던 만년필 그대로의 검정으로 가능할까요?”라는 부탁도, 안 될 이유가 없다. “뮬리너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은 지금까지 한 번도 만들어진 적 없는 자동차를 갖게 되는 거예요. 앞으로도 다시 만들어질 일 없는.” 리처드 찰스워스의 말이다. 전무후무前無後無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다른 고객은 집 앞에 있는 나무를 사용해서 인테리어 패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뮬리너는 거절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과 돈이 더 들긴 한다. 그 나무의 안정성과 내구성이 자동차의 내장재로 적합한지를 시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과 안전은 뮬리너가 고객의 요청을 미처 들어줄 수 없는 두 가지 기준이다.

“뮬리너는 고객이 자신의 차를 창조하는 데 기꺼이 관여합니다. 정말 이지 즐거운 작업이에요. 우리는 고객에게 지금까지 만들었던 벤틀리를 바탕으로 현명한 제안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뮬리너 고객이라면 매우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자신만의 자동차를 갖고 싶어 할 거예요. 우리의 일은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이뤄주는 겁니다.” 리처드 찰스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차를 계약하는 일이 새집을 설계하는 일과 같고, 그들은 건축가인 셈이다. “우리는 기술과 지식, 설비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고객의 꿈, 바로 그거예요.”

모든 자동차는 개인의 것이다. 도로에 같은 자동차가 수만 대 있다 해도, 내 자동차는 내 생활과 추억이 묻어 있는 물건이라서다. 그렇게 각각의 자동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유해진다. 하지만 나만 아는, 내가 직접 창조한 벤틀리를 이런 식으로 가질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풍족한 현실이자 지향할 만한 꿈 아닌가? 결과물의 아름다움을 의심할 여지가 없고, 그 아름다움이 고유하기까지 하다면…. 벤틀리는 이런 자동차를 만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것처럼, 다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단 한 대를.

1. 뮬리너에서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을 창조할 수 있고, 그 모든 색으로 벤틀리의 외관과 인테리어를 조합할 수 있다 2. 벤틀리에 들어가는 모든 가죽은 이렇게 다뤄진다. 최상급 가죽을 선별해 사람이 다듬고 그것을 핸들과 시트에 씌워 손으로 꿰맨다. 3. 벤틀리에서 나무를 다루는 방법. 11월 20일, 중국에서 론칭한 뮬산 시즌 콜렉터 에디션에 적용한 나무 패널에는 자개로 소나무를 그려 넣었다. 글씨를 넣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4.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재임 50주년을 기념하는 벤틀리의 선물, 스테이트 리무진이다. 크루 공장 장인의 기술력과 배려가 모두 모인 수작, 완성까지 걸린 시간은 2년이었다. 길이 6미터22센티미터, 무게 3,390킬로그램, 각종 방탄 장비와 안전장비를 갖췄다. 모자를 즐겨 쓰는 여왕이 타고 내릴 때 고개를 숙이지 않도록 높이를 1미터 77센티미터로 높였다. 5.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뮬산 다이아몬드 주빌리 에디션이다. 금색 실로 새긴 자수, 왕실 마차를 새긴 쿠션 등 우아하고 고급한 사양들을 손으로 만들어 넣었다.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COURTESY OF BENT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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