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노래를 들어라

콜로라도 고원에 갔다. 바위와 바람이 흐르듯이 멈춰 있었다. 자연이 자연으로 남을 수 있도록 애쓴 사람들의 노랫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랜드 캐니언의 수질이 오염되는 것을 염려한 오바마 정부는 향후 20년간 새로운 우라늄 채굴 신청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사진은 ‘노스림’에서 바라본 그랜드 캐니언의 모습.

유타의 자이온 국립공원을 지나는 260킬로미터의 버진 강은 부드러운 사암질 강바닥 위에 조금씩 흔적을 남긴다.

유타의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에는 연간 약 200센티미터 정도의 눈이 내린다. 후두와 뾰족하게 솟은 바위는 눈이 쌓였을 때 존재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상상한다. 바람이 바위를 깎아 빛의 협곡을 만들어내는 곳을. 돌의 층위에서 시간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는 곳을. 모래가 석화되고 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아치 사이로 큰까마귀가 나는 곳을. 콜로라도 고원에 펼쳐진 풍경이 그렇다. 콜로라도 고원은 유타, 애리조나, 뉴멕시코, 콜로라도가 만나는 지역으로 ‘포 코너스’라고도 불린다. 붉은 바위들을 보면 이곳이 지구보다는 화성에 가까운 듯하다. 혹독하고 건조한 이 미국 남서부에서 우리는 신비로 가득 찬 샘 깊숙한 곳으로부터 물을 길어 올려 마시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자연을 걸림돌로 치부한다. 자연이 개발의 길을 막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에너지 독립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지와 노력 때문에 미국 서부의 미개척지는 석유 및 가스 탐사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시추, 수압파쇄, 그리고 타르 모래 추출, 석탄을 캐기 위해 산이 없어질 때까지 채굴하는 것도 포함된다.

물론 이 긴장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공유지, 특히 미국의 붉은 바위 미개척지를 둘러싼 논쟁은 뉴딜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6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내무장관이었던 해럴드 아이크스는 유타의 70번 고속도로 아래의 모든 것을 보호하는 구상을 진행 중이었다. 그는 진홍색 협곡과 외딴 언덕, 협곡과 언덕을 따라 흐르는 강들을 포함하는 모든 땅을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려 했다. 콜로라도 강은 현재 연간 5천만 톤에 가까운 모래와 침전물을 파월 호수 저수지에 퇴적한다. 강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하류의 수질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역을 에스칼랑트 국가기념물로 이름 짓고자 했던 아이크스의 바람은 담대하고 선구적인 행동이었다.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크스의 구상에 반대했던 자들은 땅 그 자체가 아닌 채광, 방목, 용개발 등 땅의 용도를 다양화한다는 미명하에 아이크스가 부당하다고 외친 것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고, 이 대화는 국가 안보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자석과 같은 자연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늘 있다. 애리조나의 하원의원 스튜어트 유달 또한 유타의 협곡지대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유달 의원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내무장관으로 임명되자 즉각 아이크스의 뜻을 이어받기로 했다. 그린과 콜로라도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사암 협곡의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국립공원을 확장하는 계획을 우선순위로 세웠다.

이 과정에 얽힌 중요한 일화가 하나 있다. 1961년 유달 장관은 내무부 개척국 플로이드 도미니 국장과 애리조나에서 회담하면서 전용기를 타고 콜로라도를 둘러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유달은 응했고, 도미니의 전용기는 1만 피트 상공에서 협곡지대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콜로라도 강을 따라 비행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그린 강과 콜로라도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이르자 도미니는 유달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이곳이 바로 제가 댐을 짓고 싶은 곳입니다.” 그러나 유달의 눈에는 국립공원의 아름다움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유달은 협곡지대를 닷새 일정으로 둘러보는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이 미지의 땅으로 향하게 될 서른 명이 넘는 방문단에는 <라이프>, <룩>,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같은 잡지의 기자와 사진기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문단은 열세 대의 모터보트를 나눠 타고 콜로라도 강을 따라 내려갔다. 이 진상조사단은 자연에 곧바로 매료됐고, 강 위 높은 곳에 있는 ‘돌하우스’의 끝없는 붉은 바위 협곡, 아치, 석화된 사구 같은 지형지물의 장관에 외경심마저 갖게 되었다. 그것들은 지평선 너머에도 존재할 것처럼 보였다.

미국 국립공원제도 자문위원회의 의장인 프랭크 매스랜드 2세는 당시의 경험을 두고 “이 땅의 장엄함과 외로움, 아름다움, 그리고 모습에 감명받지 않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리라 믿는다.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국립공원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유타의 주지사였던 조지 듀이 클라이드가 방문단에 합류했다. 그는 국립공원 지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함께 도보로, 차로, 헬리콥터로 광활한 사막을 탐험했으며, 난생처음 ‘더 메이즈’, ‘아일랜드 인 더 스카이’를 비롯해 지금은 상징적인 지위를 얻은 다른 형성물들을 둘러봤다. 마지막으로 방문단은 체슬러 공원에 모여 구름을 찌를 듯 솟은 사암 첨탑인 ‘더 니들’을 등지고 앉았고, 한 기자가 주지사에게 어떻게 이런 풍경에 반대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클라이드 주지사는 그를 둘러싼 광대한 지역을 향해 손을 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유타가 광산업에 의존하는 주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건축용 석재로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단 말이죠.”

유타의 협곡지대에 새롭게 국립공원을 설립하겠다는 유달의 결심은 더 확고해졌다. 그가 다녀온 짧은 탐험은 존 웨슬리 파월이 거의 100년 전인 1869년에 콜로라도 강을 따라 내려간 여행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역사적 의미가 있다. 유달은 연구팀을 꾸려 새로운 국립공원의 경계를 설정하게 했다. “경계를 넉넉하게 설정하라고 지시했어요. 공원의 전체 넓이를 4천 제곱킬로미터로 했죠.” 유달이 얘기했다.

미국 서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천연자원이 경합하게 될 때, 그리고 경제적 논리가 미학적, 오락적, 심지어 과학적 언어를 깔아뭉갤 때, 으레 그렇듯 정치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유타의 상원의원이며 탐사단의 일원이기도 했던 프랭크 모스는 캐니언랜즈 국립공원 설립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상원 본회의장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타협안을 내놓아야 했다. 그 결과 국립공원은 유달이 애초에 구상했던 면적의 1/4로 축소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64년 늦여름에 의회는 캐니언랜즈 국립공원 설립법안을 통과시켰고, 같은 해에 원시지역보호법을 발효했다.

지난 2006년 7월 26일 스튜어트 유달은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의 그랜드 뷰포인트의 가장자리에 서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이 원래의 면적인 4천 제곱킬로미터를 되찾을 수 있도록 힘을 쏟았을 것입니다.” 잠시 멈춘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수십 년 동안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콜로라도 고원입니다.” 유달은 2010년 3월 20일에 세상을 떠났다. 존 웨슬리 파웰은 이 건조한 땅을 사랑했다. 해롤드 아이크스는 물론이고 스튜어트 유달도 그 땅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했다.

유타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곳의 야생은 갈수록 사라져간다.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의 건강하고도 완전한 공동체는 생태학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귀해지고 있다. 국가는 자주 기억상실에 걸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떠한 가치를 지키는지 잊어버린다. 하지만 개인은 속박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즉 힘의 원천은 바로 저 풍경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는 존재다. 그랜드 캐니언의 꾸미지 않았지만 어떤 문양보다도 아름다운 층, 요세미티의 수직으로 솟은 웅장함, 시간이 지나 깎이고 둥글둥글해진 애팔래치아 산맥에 깃든 고대의 지혜, 그리고 에버글레이드 습지 위를 날아오르는 날개처럼 솟은 풀…. 자연은 곧 우리다. 그곳은 열린 민주주의의 공간이다. 자연을 삶의 초석이 아닌 건축용 블록 채석장 정도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상상력의 빈곤에 처할지도 모른다. 삶의 터전은 물론이고 뿌리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야망과 우선순위라는 잔혹함은 우리의 발아래 기반을 쉽게 약화시킨다. 우리는 문화적 낙석을 겪고 있다. 야생의 아름다움을 무시하는 것은 영감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영감이 없이는 창조성도 죽기 마련이다.

황야를 걸으며 지구 박동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인간은 광활한 공간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을 자각할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드리워진 그랜드 캐니언의 절벽 표면을 목격하거나 자이온 국립공원의 ‘그레이트 화이트 쓰론’ 꼭대기에 앉아보는 일, 브라이스 캐니언의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 사이에 갇힌 빛이 분홍, 주홍, 노랑색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 이 모두가 인간이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하게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구의 곡률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느낄 수도 있는 위대한 침식지형의 가장자리에 서면 눈앞의 침묵은 깊은 시간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며 우리를 에워싼 세상의 거대함에 경탄한다. 인간의 정신이 풍경과 함께 확장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풍경을 보호하는 일은 인간과 지각 있는 모든 존재의 지적 진화에 필수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 확장은 앞으로도 미국 정부와 의회가 추진해야 할 중요한 프로젝트다. 우리에게는 아직 우리 자신의 경계과 지평선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해럴드 아이크스가 거의 80년 전에 세운 미국의 붉은 바위 황무지 구상을 완성시킬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구상에 사인을 한다면, 야생을 위한 유산을 남기는 한편 우리가 상상력을 계속해서 펼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장치를 인류에게 선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욕심은 정치적인 것을 뛰어넘는다. 어쩌면 개인적인 욕심일지도 모른다. 기도하는 손처럼 위로 솟은 붉은 바위 협곡을 걸을 때면 시간이 가하는 압력을 느낀다. 눈이 저절로 감기고 나머지 다른 감각들이 자극을 받기 시작한다. 사암에 새겨진 수백만 년 전의 물결에 손을 담그는 상상을 한다. 주워든 돌멩이가 사슴 모양으로 깎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물은 신기루다. 흰목굴뚝새는 낮아지는 음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그 소리는 협곡의 벽을 치고 튕겨져 나온다. 큰까마귀는 가뭄 동안에도 촉촉한 소리로 운다. 인간은 이곳에 속하면서 속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야생의 위대한 역설이다.

우리는 더 많은 야생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살아남은 것들을 없애버릴 수는 있다. 그림자와 빛은 콜로라도 고원의 것이지만, 무지와 계몽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림자와 빛은 미국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 남은 은총의 흔적들을 파괴하는 것은 우리가 거듭해서 태어나는 곳을 없애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매한 짓은 그만둘 때가 됐다. 향수가 아닌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만이 아닌 지구 위의 서로 연관되고 연결된 모든 생명체를 위해서. 바람은 진짜로 돌을 마모시킬 수 있다

델리키트 아치는 유타 동부의 아치스 국립공원에 있는 약 2천 개 아치 중 하나다.

캐니언랜즈 국립공원의 공유지 5천7백 제곱킬로미터는 채광과 시추에 노출돼 있다. 환경 보호가들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콜로라도 강은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랜드 캐니언의 깊은 벽을 깎았다. 어떻게 강물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유타와 애리조나 경계선에 놓인 모뉴먼트 계곡의 가장 내밀한 모습은 나바호 구역의 30킬로미터에 걸친 흙길을 따라 펼쳐져 있다. 그 위에 140미터 높이의 바위층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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