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 플레이

소비자의 규모라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찾기 위한 행사였으나 생산자들의 숨은 욕심이라는 추상적인 데이터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페어Fair’에는 한 신의 제작, 유통, 소비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면면이 담긴다. 한 신을 아우르는 장을 만들겠단 뜻이 있었나?

김영혁(레코드 페어) 북미에서 엘피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전문 매장이 거의 없어서 엘피를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어렵게 구매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엘피가 구시대의 매체라고 생각하거나, 음반 장사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절망하는 음반 관계자들의 생각을 조금은 바꿔주고도 싶었다. 레코드 페어가 그 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음악 관계자나 음악 애호가들, 그리고 음반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음반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는 계기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로(언리미티드 에디션) 처음 떠올린 건 ‘시끌벅적한 시장’이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책이 중심이기 때문에 평소 유달리 차분한 독립출판 신에 활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면도 있다. 1회 때부터 계속 쓰고 있는 “전시를 배제한다”는 문구도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는 시장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고집하고 있다.
하박국(암페어) “생산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늘었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암페어는 ‘데이터’를 얻고 싶어서 시작했다. 현재 서울에서 열리는 전자 음악 공연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다. 공연장에 온 사람들이 한국 전자 음악 신의 전부일까? 아니라는 가정하에, 2013년을 기점으로 생긴 흐름을 모아보면 어떨까? 일단 그 흐름을 모두 모으면 각각의 애호가에 더해 이쪽 음악에 관심은 갖고 있으나 아직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한, 언제라도 소비자가 될 수 있는 군까지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 데이터를 얻고 싶었다. 데이터를 얻어야 2014년에 어떻게 움직일지 전략을 짤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체로 소수의 사람이 모인 신에서, 페어라고 부를 만한 규모를 갖춘 행사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을 듯하다. 결과는 예상보다 성공적이었다고 들었다. 페어를 통해 신을 다시 평가한 부분이 있나?

김영혁 예매 수치는 그리 좋지 않았고, 홍보 기간도 짧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왔고, 많은 판매자가 좋은 매출을 올렸다. 기쁘긴 했지만 그것 자체가 신의 새로운 지표가 될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서울 레코드 페어 이후에 엘피를 구매하는 20~30대가 확연히 늘어난 것은 사실이고 엘피를 제작하는 국내 음악가들도 늘었다. 하지만 전체 시장을 놓고 보면 활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5년 정도 지난 다음에 신에 대한 재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서로 동력을 주고받는 식이다. 일 년 내내 흘러가는 신은, 그들이 놓칠 수 있는 기운을 이틀간의 폭발을 통해 얻고, 반대로 언리미티드 에디션 역시 신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신이 좁은 것은 한국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다만 페어에서 그 좁은 신이 갑자기 확장될 때, 더 다양한 연령과 성향의 관람객을 유치하지 못하는 것은 주최 측의 한계다.
하박국 “감동적인 행사였다”고 얘기한 한국 전자 음악 1세대들과 “너무 행복하다”고 SNS에 쓴 10대 후반의 젊은 프로듀서 지망생들을 만났다. 전자는 얼마 전부터 ‘굿 시그널’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었고 일부는 함께 공연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후자는 ‘사운드클라우드’에 작업한 곡들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다. 소비자의 규모라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찾기 위한 행사였으나 생산자들의 숨은 욕심이라는 추상적인 데이터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장소의 아쉬움, 또 장소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뭔가?

김영혁 아직 고정된 장소가 없다. 대규모 페어들처럼 코엑스 같은 장소를 쓸 수 있는 상황도 못 된다. 대관비에 상응하는 참가비를 받아야 하는데, 레코드 페어에 참가하는 판매자들은 5만원만 올려도 참가를 재고하는 분들이다. 코엑스처럼 넓은 공간인데, 대관비가 높지 않고 관객들의 접근성도 높은 곳. 서울에 그런 곳이 있을까?
이로 장소는 정말 중요해서 몇 가지 기준을 갖고 접근한다. 하나는 단순한 대관이 아니라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성격을 이해해고 서로 적극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곳, 또 하나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정도로 크되 페어를 전문적으로 개최하는 공간은 아닌 곳. 페어와 행사를 위해 존재하는 곳에 인습적으로 남은 규칙이나 구도가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여타 큰 페어와 다를 바 없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박국 평소 무대륙에서 흡연 공간으로 쓰이는 뒷마당과 뒷문으로 연결된 공연장을 사용했다. 둘 다 평소에는 쓰이지 않는 공간이고 동선이었으나 암페어와 같은 이벤트를 열기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무대륙은 매달 정기적으로 전자 음악 공연을 열고, 전자 음악 공연에 맞춰 음악가들이 직접 장비를 확충한 곳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페어의 손님이 관람객만은 아니다. 부스 참가자들 또한 페어의 손님이라면, 그들이 이 행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뭘까?

김영혁 좋은 매출이다. 그리고 매장이든 레이블이든 또는 음악가든 자신의 브랜드와 음악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 음반을 구매할 정도면 일단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다. 그들에게 홍보할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판매자들의 참가를 독려할 때 이 점을 강조한다.
이로 일상적인 시간에는 얻을 수 없는 경험치를 폭발하듯 얻는 것. 질문했듯이 페어에는 제작, 유통, 소비의 모든 구도가 펼쳐지고 그 요소를 묶는 것은 바로 ‘말’과 ‘관찰’이다. 제작자는 이틀의 시간 동안 현장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신을 한 덩어리로 체험하고 관찰하고 이야기한다. 언리미티드 에디션 이후에 제작자가 급격하게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 지점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하박국 전자 음악 신은 규모와 인지도의 문제로 유통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유통을 하더라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단지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부스에 이점이다. 소매점에 음반을 공급하지 않는 전자 음악 유통 플랫폼 오디오로그는 이날 1백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매출보다 더 큰 효과는 전자 음악 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갓 시작한 오디오로그라는 플랫폼을 홍보한 것이다. 소비자와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둔 부스는 이 작은 행사에서도 큰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페어에서 열리는 부대 행사에도 관심이 크다. 부대 행사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을까?

김영혁 부대 행사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했다. 물론 ‘난 레코드만 조용히 사러 왔는데 왜 이렇게 행사가 많고, 입장료는 왜 받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레코드 페어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기존의 레코드 애호가를 모으는 것보다, 레코드를 잘 모르거나 멀어진 사람들을 행사장에 오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로 부대 행사는 페어의 성격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연결 고리를 가지게 짠다. 부대 행사 관람이 1순위인 손님도 페어를 찾는데, 동선상 그들 역시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부스를 지나친다. 그때 받는 인상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줄 거라고 본다.
하박국 암페어의 부대 행사는 쇼케이스뿐이다. 신청을 받았고 일부는 섭외했다. 한국 전자 음악 신의 모든 팬덤을 모으는 게 목표였기에 가능한 다양한 분야의 음악가를 올리는 데 신경 썼다.

하나의 페어는 그 페어만의 에디션을 만들어 행사의 가치를 극대화하곤 한다. 아직 한국의 소규모 페어에서 부족한 면이지 싶다.

김영혁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레코드 페어 한정반을 제작했다. 하지만 국내에 새로 생긴 공장의 노하우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결론을 얻어 당분간 해외 공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직접 기획해서 에디션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여하는 레이블과 음악가들, 혹은 매장에서도 이날을 위한 한정반을 제작하는 방향이 좋다.
이로 행사만을 위한 한정본은 그 행사에서 모두 소진될 때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난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대한 여러 가지 통계를 보면, 아직은 주최 측에서 이를 권장하기엔 무리일 듯하다. 다만 한정본 수량에 대한 기준을 좀 더 낮게 잡으면 재밌는 방식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하박국 1회 암페어 때는 에디션은 아니지만 공익적인 차원에서 만들었던 음반을 저렴하게 판매했다. 아직 규모가 작아 따로 에디션을 만들기는 어렵다. 매년 후원을 받아 만들고 무료로 배포하는 영기획의 을 암페어와 연계하거나, 참가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따로 모아 컴필레이션을 만드는 등의 방법을 생각 중이다.

페어의 지속에 대해, 여느 단체나 회사처럼 성장 동력을 고민하나? 지금이 한국에서 열릴 수 있는 규모의 임계치는 아닐까?

김영혁 어떤 음악가의 한정반을 찍고, 어떤 앨범이 판매되느냐 같은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거다. 아이돌 한 팀이 엘피 한정반을 들고 나온다면 레코드 페어 관객은 물론 엘피 소비자도 넓어질 것이고. 단기간에 엘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굉장히 길게 보고 달려가고 있다.
이로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비슷한 성격의 행사가 더 많이 생길 거라고 예상한다. 다른 나라를 봐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준비하는 좋은 긴장감으로 작용한다. 앞으로 새로 생길 페어와 다른 점은 6년 차를 맞는 행사에 쌓인 시간이고 그걸 어떻게 강인하게 발전시킬지 고민하고 있다. 작년 5회에 5천 명이 찾았다. 개인적으로는 1만 명을 임계치로 보고 있어 아직 갈 길이 멀다.
하박국 아직 임계치를 생각하기엔 역사가 짧다. 1회 암페어는 신기할 정도로 나쁜 평이 없었다. 대체적으로 행사에 만족했다는 얘기인데 그들이 모두 한국 전자 음악 신의 애호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14년은 다양한 기획으로 그들을 한국 전자 음악 신의 고정 팬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아직 무리하게 규모를 키울 계획은 없다.

2014년, 가장 큰 화두로 삼고 있는 문제의식이 있을까?

김영혁 장소, 한정반 제작, 현장 운영 등등 늘 고민하는 부분이 많다. 외부 지원이나 스폰서 등을 통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도 중점을 두고 있는 화두 중 하나다.
이로 대변혁은 우리에게 위험해서, 아주 작은 변혁 정도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의 화두는 ‘확장’인데 대중을 향한다기보다 오히려 더 집중하는 방식의 확장이 될 것이다.
하박국 2013년 한국 전자 음악 신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음반이 발표됐다. 2013년에 발표된 한국 전자 음악 음반은 50장이 조금 넘는다. 그중 물리적인 음반으로 발매된 건 20장 정도고 그중 100장 이상 판매된 음반은 5장이 안 된다. 외려 규모가 크고 오래된 곳일수록 물리적인 음반을 발표하지 않거나 유통하지 않는다. 단순히 음악 소비 형태가 바뀌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EXO의 음반이 100만 장 넘게 팔리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음반은 음악가와 팬 사이의 가장 직접적인 연결고리다. 한국 전자 음악 신에서 이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한 암페어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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