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텍사스

텍사스 오스틴에서 만난 톱 모델 빅터 닐란더와 킴 존스.

 

텍사스 오스틴의 작은 호텔 앞에서 빅터 닐란더를 만났다. 젖은 석탄 같은 밤, 그는 낮은 의자에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 있었다. 격렬한 충격 뒤에 잠시 몸이 멈춘 듯 섬뜩했는데, 차가운 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낮고 울렁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좀 사나워 보였달까, 숨결에선 차갑고 메마른 바람이 일었다. 빅터 닐란더가 패션 신에 등장한 건 불과 삼 년 전, 런던의 J.W. 앤더슨의 컬렉션이었다. 그는 데뷔와 동시에 남성 모델계의 풍향계가 되었다. 디올 옴므의 광고 캠페인 모델로 나섰고, 유수의 남성 패션 매거진의 커버를 장식했다. 그런데도 그에 관해 별반 알려진 게 없었다. 그의 존재는 영국 시골의 정원보다 신비롭고 마라케시 여인의 그림자보다 아득했다.
빅터 닐란더는 수줍고 건조한 몸짓으로 촬영장을 어슬렁거렸다. 어떻게 모델 일을 시작했냐는 질문엔 “여권 사진을 촬영하러 갔는데, 사진가가 모델을 해보라고 권했어요. 일 년쯤 뒤 직업이 필요해서, 그래서 이렇게 됐죠.”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첫 컷을 찍고 빅터는 스타일링을 맡은 루이 비통의 디자이너 킴 존스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일 년 전쯤 우리 쇼에 섰었죠?” “네 그랬어요.” 빅터는 짧게 대답하고 담배를 물었다. 스태프 모두 사진 속 그의 모습에 찬사를 늘어놓아도 가장 늦게 입을 열자고 작정한 듯 말을 아꼈다. 아름다운 날씨 대신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기온은 덩달아 영하로 떨어졌다. 이 정도 추위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가끔 소스라치게 몸을 떨었다. 담요는 젖어서 체온을 더 떨어뜨렸다. 잠시 쉬자고 권했다. 빅터는 “다음 주에 여자친구랑 멕시코로 휴가를 떠날 거예요. 괜찮아요. 거긴 지독하게 더울 테니”라면서 웃었다. “어디 살아요?” “얼마 전에 뉴욕으로 이사했어요. 뭐 딱히 말 안 해도 뉴욕에 대해선 잘 알죠? 그래도 여전히 코펜하겐에 아파트를 갖고 있어요. 여름엔 정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일 거예요.” 그는 틈만 나면 훈장을 목에 걸 듯 담배를 피웠다. 술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일 년에 몇 번 정도요. 위스키 온 더 록으로.”라고 짧게 대답했다. 장소를 옮길 땐 음악을 들었는데, 카니예 웨스트, 드레이크, 프랭크 오션, 퍼렐 윌리엄스의 노래가 분방하게 흘러넘쳤다. 마지막 컷에선 반바지를 입어야 했다. 마지막이니 힘내라고 말하자, 천국의 계단을 뛰어오르는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웃고 또 웃는 얼굴은 석양 때문인지 문득 찬란해 보였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짧은 인사를 나눴다. 세계적인 사진가나 에디터와 일해온 그에게 어떤 촬영이 기억에 남는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지금 기억나는 건 휴고 보스를 위해 유타에 있는 소금 사막에 갔을 때예요.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이렇게 말하곤 죽은 노루처럼 쓰러져 깊이 잠들었다.

모든 의상은 2014 S/S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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