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디, 레디

마이클 잭슨의 그 유명한 음반 <Dangerous>의 프로듀서. 가이와 블랙스트리트의 주축이자 뉴 잭 스윙이란 장르를 통째로 만들어낸 뮤지션. 테디 라일리를 만나러 서울의 한 스튜디오로 갔다.

모자는 스탬피디 엘에이, 후드 티셔츠는 테디 라일리의 것, 반지는 무이 로프트, 팔찌는 프리카.
모자는 스탬피디 엘에이, 후드 티셔츠는 테디 라일리의 것, 반지는 무이 로프트, 팔찌는 프리카.

 

Kool Moe Dee 'Kool Moe Dee' (1986) 저명한 올드스쿨 그룹 T3의 쿨 모 디는 솔로 음반에 17세이던 테디 라일리를 과감히 기용해 ‘Go See The Doctor’를 발표했다. Guy 'Guy' (1988) 테디 라일리를 주축으로 결성한 가이의 첫 음반. 뉴 잭 스윙의 모범 같은 음악이 들어 있으며, 2백만 장 이상 팔렸다. Michael Jackson 'Dangerous' (1991) 퀸시 존스와 결별한 마이클 잭슨은 'Thriller'나 'Bad'와는 다른 음반을 만들고 싶어 했고, 테디 라일리에게 7곡을 맡겼다. Blackstreet 'Another Level' (1997) 테디 라일리 경력의 정점이자, 블랙스트리트 음반 중 가장 성공한 앨범. ‘No Diggity’는 4주간 빌보드 1위에 올랐다. Snoop Dogg 'Ego Trippin' (2009) 6곡을 썼고, 최근작 중 테디 라일리 고유의 색이 가장 잘 드러난 음반이다. 스눕 독, 디제이 퀵과 QDT란 유닛을 만들기도 했다. 소녀시대 'The Boys' (2011) ‘The Boys’로 소녀시대가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테디 라일리는 샤이니의 ‘아름다워’, EXO의 ‘What is Love’ 등에도 참여했다.
Kool Moe Dee ‘Kool Moe Dee’ (1986) 저명한 올드스쿨 그룹 T3의 쿨 모 디는 솔로 음반에 17세이던 테디 라일리를 과감히 기용해 ‘Go See The Doctor’를 발표했다. Guy ‘Guy’ (1988) 테디 라일리를 주축으로 결성한 가이의 첫 음반. 뉴 잭 스윙의 모범 같은 음악이 들어 있으며, 2백만 장 이상 팔렸다. Michael Jackson ‘Dangerous’ (1991) 퀸시 존스와 결별한 마이클 잭슨은 ‘Thriller’나 ‘Bad’와는 다른 음반을 만들고 싶어 했고, 테디 라일리에게 7곡을 맡겼다. Blackstreet ‘Another Level’ (1997) 테디 라일리 경력의 정점이자, 블랙스트리트 음반 중 가장 성공한 앨범. ‘No Diggity’는 4주간 빌보드 1위에 올랐다. Snoop Dogg ‘Ego Trippin’ (2009) 6곡을 썼고, 최근작 중 테디 라일리 고유의 색이 가장 잘 드러난 음반이다. 스눕 독, 디제이 퀵과 QDT란 유닛을 만들기도 했다. 소녀시대 ‘The Boys’ (2011) ‘The Boys’로 소녀시대가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테디 라일리는 샤이니의 ‘아름다워’, EXO의 ‘What is Love’ 등에도 참여했다.

더운데, 에어컨 켤까?
괜찮은데. 음악이 식혀주겠지.

이 스튜디오에선 누구를 위한 노래를 만드나?
2주 동안 열다섯 곡 정도 만들었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부를 노래들이다.

어떤 노래가 누구에게 갈지 아나?
오늘 저녁에 리스닝 세션이 있다. 이 스튜디오에 있는 프로듀서들과 SM의 A&R 팀원들이 모두 모인다. 그리고 누구에게 어떤 곡을 줄지 상의한다.

당신이 쓴 ‘The Boys’는 소녀시대의 이전 곡들과 꽤 달랐다.
언제나 전에 있던 걸 깨고 싶다. 정말 새로운 것, ‘다음 단계’를 보여주려 한다. 하늘을 겨눈달까?

만약 그 노래를 가이와 블랙스트리트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 썼다면 어떤 음반에 넣었을까?
20, 30년 전이니 마땅치 않지만 블랙스트리트의 ‘Blackstreet’?

한 인터뷰에서 가장 아끼는 음반으로 그걸 꼽지 않았나?
난 ‘The Boys’를 만들 때 한국이나 아시아만 보고 작업하진 않았다. 미국 시장도 생각했다. 소녀시대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와 <라이브! 위드 켈리> 무대에 섰다. 그런 게 바로 ‘다음 단계’라는 거다. 해외의 다른 프로듀서들도 한국에 와서 우리랑 일하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뭐라고 말해주나?
그 친구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건 이런 거다. 내가 여기 어떻게 오게 됐는지,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 그래서 아시아에서 작업하는 건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해줬다. 한국과 일본은 진짜라 할 만한 음악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당신이 30년 가까이 만든 수많은 곡 중에서 딱 한 곡을 고른다면 뭔가?
음… ‘Remember the Time’.

마이클 잭슨?
맞다. 그 노래는 내 경력의 전환점이었다. 전 매니저인 진 그리핀과 막 갈라섰을 때 마이클과 작업을 시작했는데, 사실 원래는 마이클의 전작 ‘Bad’에도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진 그리핀 때문에 못한 거지.

매니저가 왜 그 엄청난 기회를 막았나?
너무 많은 조건을 달았다. 마이클과 일하는 내내 자기도 같은 방에 있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나중에 마이클이 그랬다. “넌 그 대머리 매니저 때문에 ‘Bad’에 참가하지 못한 거야”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 경력에 엄청난 역사를 세울 수 있었던 기횐데. 그래도 다음 음반인 ‘Dangerous’에 일곱 곡을 썼다. 마이클 잭슨은 그 음반으로 뉴 잭 스윙을 다음 단계, 완전한 주류로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잭슨을 본 게 언제인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잠깐 본 게 마지막이었다. 난 그때 푸시캣 돌즈의 곡을 작업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테디란 애칭 대신 본명인 테오도어로 불렀다. 만나면 농담하며 놀았다. 옛날에 같이 녹음하던 얘기도 자주 했고. 우리가 어떻게 ‘Dangerous’ 음반을 성공시켰는지, ‘Invincible’ 같이 만들 땐 어땠는지…. 또 마이클은 언제나 내 아이들을 걱정했다. 내 큰딸의 안부를 묻고, 다른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지 신경 썼다. 나도 그랬고.

‘Dangerous’가 마이클 잭슨 음반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아니. ‘Thriller’가 있으니 감히 그럴 순 없다. ‘Thriller’는 모든 기록을 다 깼다. ‘Dangerous’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최후의 음반 정도로 말할 수 있을 듯하다.

‘Dangerous’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팝에 가깝긴 해도 알앤비였으니까. 그렇다고 누가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 있나? 저평가되었다고 해도, 3천5백만 장쯤 팔았다.

‘BBC 1 Xtra’에 출연해 블랙스트리트의 음악을 설명하며 뉴 잭 스윙 대신 헤비 알앤비라 칭했다. 둘은 다른가?
아니다. 가끔 사람들은 프로듀서를 깎아 내린다. 새 히트곡이 나올 때까지 반복되는 일이다. 재기한 뒤에야 사람들은 “와, 역시 성공할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내가 왜 헤비 알앤비란 말을 쓰냐면, 그런 음악이 블랙스트리트, 나아가 알앤비란 장르에 새 흐름을 갖고 왔기 때문이다. 물론 헤비 알앤비는 여전히 뉴 잭 스윙이다. 그게 내 스타일이고.

80년대 가이의 뉴 잭 스윙과 블랙스트리트의 음악을 구분하기 위해 헤비 알앤비란 말을 쓴다고 생각했다. 뉴 잭 스윙이란 이름은 영화 <뉴 잭 시티>의 각본을 쓴 배리 마이클 쿠퍼가 지어줬다. 이후 내 음악을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뉴 잭 스윙이야말로 헤비 알앤비란 말 뜻에 걸맞은 음악이다. 재즈, 가스펠 같은 수많은 장르를 섞었으니까. 블랙스트리트의 ‘No Diggity’처럼.

‘No Diggity’가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다음 음반 ‘Finally’는 전작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프로모션을 하지 않아서다. ‘No Diggity’ 땐 어딜 가나 우리가 있었다. 일본, 런던, 덴마크, 네덜란드, 호주. ‘Finally’냈을 땐 멤버들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룹을 운영하려면 확실한 계획과 개개인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당시 멤버들은 나를 대신해서 프로듀서가 되고, 팀의 전면에 나서길 원했다. 그래서 난 기회를 줬고,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의 BS2, 그러니까 블랙스트리트2는 그렇지 않다. 팬들이 예전과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름을 블랙스트리트2라고 정했다. 멤버들이 날 믿는다. 난 곡을 만든 뒤 “네가 이 부분을 불렀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 있다. BS2로는 진짜 오래 활동할 거다.

가이와 블랙스트리트 중 어느 쪽에 더 애착이 가나?
블랙스트리트. 블랙스트리트에선 좀 더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곡을 만들어놓고 과연 보컬들이 이걸 부를 수 있을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달까? 블랙스트리트의 모든 보컬리스트들은 자기 파트를 완벽히 소화했다. 나 혼자 곡 전체를 짊어지고 싶진 않으니까. BS2의 멤버들은 모두 뛰어난 솔로 보컬리스트다. 슈퍼 그룹이라 말할 수도 있다.

가이의 메인 보컬 아론 홀은 종종 갭 밴드의 찰리 윌슨과 비교될 만큼 인상적인 목소리였다. 솔로곡 ‘Don’t Be Afraid’로 알앤비/힙합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고. 블랙스트리트의 보컬들이 그보다 낫다고 보나?
아론 홀은 한계가 뚜렷하다. BS2의 레니 해롤드나 ‘Another Level’의 마크 미들턴같이 고음을 시원하게 못 부른다. 가이의 다른 멤버 데미안 홀이 썩 좋은 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론 홀이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다.

턱시도, 셔츠, 보타이는 모두 랑방.
턱시도, 셔츠, 보타이는 모두 랑방.

어쨌든 성량이 큰 목소리를 좋아하나? 아론 홀, 마크 미들턴, 데이브 홀리스터….
어릴 때 스티비 원더, 찰리 윌슨, 조지 클린턴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랐으니까. 블랙스트리트와 가이에도 그렇게 굵고 단단한 보컬이 있었으면 했다. 나도 찰리 윌슨이랑 작업해본 적이 있는데, 진짜 못 부르는 게 없다.

SM에서라면 어떤가?
샤이니의 종현이 떠오르긴 한다. 아주 좋아하는 톤이다. 아, 소녀시대에 티파니를 비롯해 좋은 보컬이 많다. 예쁘다 보니까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소녀시대 멤버 중 누가 제일 좋나?
하하. 고를 수 없다. 난 삼촌 같은 존재다. 얼른 다시 같이 작업하고 싶다.

엑소의 ‘으르렁’ 같은 본격적인 알앤비를 기대한다.
이번에 그런 걸 좀 만들었는데, 진짜 끝내준다.

작년엔 TLC가 20주년을 맞아 돌아왔고, 2월엔 토니 브랙스턴과 베이비페이스의 합작 음반이 나왔다. 조데시도 재결합한다.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뮤지션들이 재조명받고 있다. 어떤가?
좋다. 멋진 음악이 다시 되돌아오는 일이니까. 뛰어난 뮤지션들은 우리 전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뉴 잭 스윙은 음악을 넘어서는 어떤 움직임이었다. 종류도 엄청 다양했고, 그만큼 못다한 얘기들이 쌓여 있다. 넓은 범위에선 요즘 케이팝에도 뉴 잭 스윙에 가까운 요소가 많다.

그때가 그리운가? 그 시절보단 그때의 음악이 그립다. 내가 만들었던 곡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진 뉴 잭 스윙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보이즈 투 멘의 성공 이후, 베이비페이스, 조데시의 케이시 앤 조조 등 많은 프로듀서들과 뮤지션들이 느린 곡으로 돌아섰다. 그 와중에도 당신은 꾸준히 비트가 센 노래를 썼다.
BS2도 업템포 곡으로 나올 거다. 여전히 빠른 노래가 좋다. 라이브에서 발라드를 부르면 사람들은 다 자리에 앉는다. 근데 ‘No Diggity’나 ‘Teddy’s Jam’ 같은 걸 하면 난리가 난다. 파티하는 것처럼.

서울에서 클럽에 간 적이 있나?
갔다. 앤써.

앤써는 알앤비, 힙합이 거의 안 나오는 클럽인데.
그냥 클럽 음악. 아, 옛날에 힙합 클럽도 갔었다. YG가 운영하는 클럽. 강남에 있는 거. 밤새도록 놀았다. 힙합, 알앤비, 뉴 잭 스윙까지 다 나왔다.

NB 말인가? 당신 노래도 틀었나?
거기 맞다. 렉스 앤 이펙트의 ‘Rump Shaker’, 가이의 ‘Teddy’s Jam’, 마이클 잭슨의 ‘Remember the Time’…. 다 나왔다.

디제이가 당신이 클럽에 있다는 걸 알았나?
그런 것 같다. 양현석 대표랑 놀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곡을 쓰고 있다.
하하. SM이랑 계약하기 전이었다. 원래 YG랑도 얘기를 했다. 그러다 SM과 계약하게 됐고. 독점 계약은 아니지만, SM과만 일하고 있다. 의리랄까?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클럽에서 당신이 그때 쓴 노래를 듣는다.
굉장한 일이다. 과거의 음악도 역사와 마찬가지다. 당대의 음악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알 필요가 있다.

그때 쓰던 악기를 요즘도 쓰나? 난 롤랜드 악기를 유독 좋아한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808, 727, 626 같은 드럼 머신을 아직 갖고 있다. V-신스 GT, XT, 가이와 키스 스웨트의 거의 모든 노래에 쓴 롤랜드 VP-550 건반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개조해서 많이 쓴다. 악기 회사들이 그런 제안을 많이 하기도 하고.

지금 스튜디오에 여러 프로듀서가 모여 있다. 같이 한 곡을 쓰는 건가, 아니면 제각각 한 곡씩 만드나?
다 같이 한다. 여긴 캠프다. 전 세계 올스타 작곡가들과 SM이 협심해 엄청난 곡을 만들어내는 훈련소 같은 곳.

지금 이 방은 혼자 쓰나?
그렇다. 거의 여기에만 있다. 너무 추워서 잘 안 나간다. 지금 2주 하고 3일 있었는데 호텔에 딱 네 번 갔다. 저 소파가 내 침대다.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오랫동안 버지니아 비치의 스튜디오에 머무르며 곡을 썼다. 도시보단 조용한 곳이 좋나?
거기에 17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가 좋다. 연락하고 싶으면 하고, 받기 싫으면 안 받고. 조용히 있는 게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댄스 음악 프로듀서인데 그래도 되나?
조용한 곳에 있을 뿐, 그런 음악에서 한눈판 적은 없다.

버지니아에서 고등학생이던 넵튠즈를 발굴했다. 넵튠즈의 퍼렐은 지난해 미국 ‘GQ’가 뽑은 ‘Men of The Year’였다.
그거 봤다. 퍼렐의 행보는 언제나 흥미롭다.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 연락 못한 지 2~3년쯤 된 것 같지만, 정말 자랑스럽다.

‘Dangerous’와 블랙스트리트의 성공으로 주변에 수많은 프로듀서와 뮤지션들이 있었을 것이다. 넵튠즈도 그중 하나였을 테고. 왜 회사를 세우거나 세력을 불리지 않았나?
블랙스트리트에 전력투구하고 싶었다. 내 작업에 집중하고 있으면 매니저 역할 같은 건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의 작업물이 약 8천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어디에 쓰나?
음악 작업 말곤 없다. 쇼핑할 바에 차라리 스튜디오를 하나 더 지을 거다.

요즘 미국 알앤비 신을 보면 어떤가?
비욘세가 컴백하면 알앤비가 돌아왔다가, 비욘세가 쉬러 가면 알앤비도 사라진다. 하하. 아까 얘기했듯 베테랑들의 책임감이 부족해서다. 게임에 뛰어들어야 한다. 지금은 전시 아노미 상태 같다. 알앤비가 팝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여서 슬프다. 그냥 원하는 대로 모험을 걸어도 충분히 잘될 수 있는데.

베테랑으로서 이겨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쿨 앤 더 갱, 찰리 윌슨이랑 작업 중이다. 스티비 원더와 뭔가를 할 수도 있다. 블랙스트리트2 음반도 믹싱만 하면 된다.

2006년 ‘뉴 잭 리유니온 투어’ 당시부터 가이와 블랙스트리트의 새 음반이 나올 거라고 얘기했지만, 아직 발매되지 않았다.
내가 한국 뮤지션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아나? 그들은 항상 똘똘 뭉쳐 있다. 설사 그룹이 와해되더라도 멤버들 때문이 아니라 회사나 다른 이유 때문인 경우가 많다. 미국은 안 그렇다. 흑인, 백인 가릴 것 없다. 건즈 앤 로지스, 후티 앤 더 블로우피시, 리빙 컬러, 가이, 블랙스트리트… 다 깨졌다. 그러니까 결국 컨트리 뮤지션이랑 외국 뮤지션들이 이기는 거다. 미국 그룹은 결국 솔로 뮤지션들의 집단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왜 그룹을 고집했나?
솔로 음반’Black Rock’은 녹음 다 해놓고 안 냈다. 공짜로 냈었지. 음원으로만. 난 아직 솔로로 나설 준비가 안 됐다. 물론 언젠간 낼 거다.

블랙스트리트의 또 다른 주축 천시 한니발과의 관계는 어떤가? 천시 ‘블랙’ 한니발, 테디 ‘스트리트’ 라일리로 불리기도 했는데.
나쁘다. 완전히. 다시는 같이 뭉칠 일이 없을 것 같다. 난 정말 진심을 다해서 천시를 대했다. 그래서 저작권도 돌려준 거다. 처음 계약할 땐 나한테 있었다. 그걸로 돈을 벌고 새로운 계약도 따내고 가족들을 돌봤으면 했다. 그런데 결국 뒤통수를 쳤다. 내 가족들이 언제나 천시를 믿지 말라고 할 때도, 난 믿었다. 원래 인터뷰할 때 안 좋은 얘기는 웬만해선 피하려고 한다. 근데 이 얘긴 진짜 좀 제대로 알려질 필요가 있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 물론 다 지난 일이고, 나한텐 이제 새로운 삶이 있다. 아마 이번 인터뷰가 이 얘기를 하는 마지막 순간일 거다.

현존하는 프로듀서 중 누가 최고인가?
음, 한 명은 도저히 못 뽑겠고 팀버랜드와 퍼렐 윌리엄스.

그럼 당신은?
하하. 물론 나도 포함이다. 트위터 같은 SNS를 하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종종 뮤지션들이 “당신 덕분에 음악을 시작했다”고 말해주곤 하니까. 로드니 저킨스, 저메인 듀프리, 브라이언 마이클 콕스 같은 프로듀서들 보면 진짜 대단하다. 그런데 그 친구들도 날 그렇게 본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난 오랫동안 누군가의 롤 모델이었고, 그것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내가 쓸데없는 짓 안 하고 여전히 스튜디오에 있는 건 “넌 이제 내 롤 모델이 아니야”란 소리가 듣기 싫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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