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세 편의 영화로부터



호텔에서 열린 5일장 : <그랜드 부다페스트>
웨스 앤더슨의 신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 중 제일 앞서 있다. 굳이 이 영화를 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한다면 특별히 새로울 건 없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 (현역 중) 몇 안 되는 감독이며, 어떤 장면을 봐도 누구나 웨스 앤더슨의 작품이란 걸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도 그의 왕국이 견고하다고 생각했는지 (부를 수 있는 만큼) 많은 배우를 초대했다. 주인공을 제외하고 틸다 스윈튼, 주드 로, 윌렘 대포, 애드리언 브로디, 빌 머레이, 에드워드 노튼,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가 조연이거나 단역이라니.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누가 어떤 역할이었는지 단박에 기억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배우들이 경쟁하듯 좌상을 펼치고 연기를 팔았으니까. 과연 <그랜드 부다페스 호텔>은 웨스 앤더슨이 만든 영화 중 가장 흥겨우면서 배부른 영화로 기억될 만하다.

학살자의 기억 : <액트 오브 킬링>
<액트 오브 킬링>은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에 실패했다. 상을 받은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많은 찬사를 받았고, 지극히 아카데미(를 주도하는 미국인 정서)에 가까운 영화니까. 그럼에도 <액트 오브 킬링>은 다큐멘터리 역사에 꽂힌 깃발과 같다. 펄럭여야 마땅하다. 인도네시아에서 1백만 명을 넘게 죽인 학살자들(그들은 자칭 갱스터라고 부른다), 그들이 직접 살인 과정을 재연하며 영화를 만들고, 그 과정을 담은 <액트 오브 킬링>은 인간이 살인을 어떻게 합리화하는지 관찰한다. 메스꺼울 정도로 정당화하는 과정.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약한 상대를 적으로 몰아세우며, 짓밟아서 가치를 입증하고, 그들을 태생의 원죄로 묵는 방법이 낯설지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개봉이 시급한 영화다.

정확한 셔틀콕 : <셔틀콕>
영화 <셔틀콕>의 주인공 민재(이주승)는 청소년과 성인 사이에 있다. 갑자기 부모가 사라지자 흩날리는 감정만 남는다. 가족과의 연정, 집착과 책임, 포기와 관망. 어울릴 수 없는 암호들이 영화 속에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사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고 영화를 보는 건 탐험과 비슷하다. <셔틀콕>이 신인 이유빈 감독의 작품인지 모르고 봤다. 고백하자면 (촌스럽게도) 여자 감독이라 놀랐다. 단박에 정의하자면 이 영화는 부성애를 향한다. 부성애는 모성애와 다르다. 아니, 부성애는 간혹 틀리기도 한다. (어떤 형태든) 사랑에 관해선 남자는 여자보다 못난 편이 아닐까? 이 영화 안엔 가벼운 바람에도 약한 셔틀콕이 있다. 이를테면 부성애의 시작. 그걸 면밀히 관찰한 건 여자 감독. 반면 이주승의 연기는 흔들림이 없다. 4월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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