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구하기

지금 가장 문제적인 감독, 선동열은 명장인가?

Sports판형

미국 영화감독 겸 배우 오손 웰스는 젊은 시절 최연소,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그런 그가 현존하는 최연소 퇴물이라는 조롱을 받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KIA 선동열 감독도 젊은 시절 늘 최연소, 최고 소릴 들었다는 점에서 웰스와 닮았다. 웰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40대가 넘어서까지 찬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2005년 삼성의 감독 자리에 오르자 마자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물론 일부 야구인은 “스타 선수는 명장이 될 수 없다”는 야구계의 격언을 깨부순 선 감독의 위세에 배가 아팠는지 “운이 좋았다”는 말로 초보 감독의 우승을 평가 절하했다. 하지만 삼성은 2006년에도 우승했다.

선 감독은 2010년에도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SK에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졌지만, 선 감독에 대한 평가가 떨어진 건 아니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총 6년간 삼성을 이끌며 선 감독은 무려 다섯 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올랐고, 그 가운데 세 번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명장이란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삼성 재임 기간 중 철벽 마무리 오승환을 탄생시켰고, 권오준, 권혁, 정현욱 등 가능성만 풍부했던 불펜투수들을 리그 최고의 셋업맨으로 성장시켰다.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 등 젊은 야수들을 발굴한 건 차라리 덤에 가까웠다.

삼성은 그런 선 감독에게 5년 재계약을 선물했다. 야구계는 “저렇게 탄탄대로만 달리는 야구인도 드물 것”이라며 재계약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10년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선 감독은 ‘용퇴’라는 미명 아래 전격 삼성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삼성 모그룹 실세의 낙마 불똥이 선 감독에게까지 튄 것이다. 그리고 2012년, 고향팀 KIA의 사령탑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전임 조범현 감독이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2011년 4위라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기아 팬들은 그보다 선동렬 감독의 친정 복귀에 들썩였다. 그들은 선 감독이 KIA를 과거 해태처럼 변모시켜주길 갈망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전해 4위였던 KIA는 2012년 5위로 떨어지며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2013년엔 8위. 기대가 유독 컸던 만큼, 언론과 팬들의 태도도 급격히 변했다.

선 감독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이들은 삼성 시절의 성적을 순전히 ‘선수빨’로 본다. 한 야구 해설가는 “2005년 삼성은 1백억 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해 심정수, 박진만을 영입했다. 그런 선수들을 휘하에 뒀다면 어느 감독이라도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삼성은 늘 스타급 선수들이 넘쳐나도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담을 쌓았던 팀”이라며, “2005, 2006년 삼성 우승의 1등 공신은 심정수, 박진만이 아닌 선 감독이 키워낸 오승환, 권오준 등 불펜투수들이었다”는 말로선 감독의 지도력이 삼성 우승의 중요한 배경이었음을 강조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지난해 KIA의 팀 구성이다. 많은 야구 전문가는 지난 시즌 전 KIA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았다. 투수진이 막강한데다 김주찬을 영입하며 타선 보강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선수빨’만 따지자면 2005, 2006년 삼성과 비교해도 떨어질 게 없었다. 그러나 KIA는 8위에 그쳤다.

선 감독을 잘 아는 한 야구인은 “삼성엔 있고, KIA엔 없던 게 선 감독의 발목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 감독은 훈련량이 많은 사령탑이다. 스프링캠프 기간에 투수들은 보통 2천5백 구 이상을 던진다. 다른 팀보다 1.5~2배가 많은 양이다. 정규 시즌엔 지키는 야구를 가동하며 많은 투수를 소모한다. 부상자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삼성엔 태릉선수촌보다 재활이 뛰어나다는 삼성트레이닝센터가 있어 부상자가 빨리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KIA 재활 시스템은 9개 구단 가운데 최악이다. 사석에서 선 감독이 ‘KIA 선수들은 한번 부상을 당하면 돌아올 줄 모른다’고 하소연한 것도 KIA의 낙후된 재활 시스템 탓이 크다. 선 감독이 KIA에 온 건 ‘잘못된 만남’인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선 감독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가 단순히 팀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베테랑 저승사자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선 감독은 그간 노장 선수들을 줄줄이 은퇴시켰다. 삼성 시절엔 양준혁의 은퇴에 앞장섰고, KIA 감독이 돼선 이종범의 은퇴를 이끌어냈다. 팬들의 역풍은 거셌다. 은퇴 당사자들도 반발했다. 하지만 선 감독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주변에서 “좀 더 부드러운 방법으로 은퇴시키는 건 어떠냐”고 조언했지만, 선 감독은 정공법을 택했다. 항간의 이야기대로 선동열 감독은 자신보다 주목받는 베테랑을 싫어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자신처럼 후배들이 경력의 정점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길 바랐던 걸까? 선 감독은 항간의 지적을 일축하며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팀을 변화시키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선 감독 밑에서 오랫동안 코치를 맡았던 모 야구인은 베테랑 숙청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 감독은 김응용 해태 감독과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드래건스 감독의 영향을 무척 많이 받았다. 두 감독은 실력이 떨어진 베테랑을 과감하게 쳐내고, 젊은 선수를 중용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팀을 정상에 올려놨고, 불만을 품은 베테랑이 팀 분위기를 저해하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 선 감독은 삼성 시절 그런 방식을 따라해 젊은 선수들을 주전급 선수로 성장시키며 짭짤한 효과를 봤다. 팬들은 선 감독의 베테랑 숙청을 비난하지만, 야구계 내부에선 ‘선동열이나 되니까 슈퍼스타의 옷을 벗기는 게 아니냐’ 는 옹호론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어쨌든 선 감독이 소통이 잘되는 사령탑은 아니다. 감독직에 오른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선수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감독으로 꼽힌다. 대화가 적고 칭찬에도 인색하다. 그러다 보니 오해도 많이 쌓인다. 지난해까지 KIA에서 뛴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하고서 “한국에서 야구할 땐 눈치를 보는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야구계에선 이를 선 감독에 대한 직격탄으로 해석했다.

한 KIA 선수는 “석민이 형은 일찌감치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려면 당연히 선발로 등판해야 했다. 하지만 팀 사정상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를 맡았다. 석민이 형이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무리 보직을 맡긴 코칭스태프의 결정에 상당히 아쉬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응용 한화 감독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김 감독은 “선 감독이 윤석민을 마무리로 쓴 건 팀 사정이 아니라 윤석민의 사정을 봐줬기 때문”이라며, “선 감독이 윤석민 선발 성적이 원체 좋지 않아 마무리라도 맡겨야 미국 스카우트 눈에 띌 것 같아 보직을 바꿨다는 소릴 했다”고 전했다.

이렇듯 지금 선동열은 논쟁적이다. 현장의 평가도 첨예하게 갈린다. 선 감독이 이런 동시 다발적인 논란을 넘어 삼성 시절처럼 ‘명장’ 소릴 들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어떻게든 팀 성적을 끌어올려야 한다. KIA와 삼성이 판이하게 다른 만큼, 시대에 맞는 리더십으로 재무장해보는 건 어떨는지. 강속구가 듣지 않는다면 이젠 변화구를 던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