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여름의 열가지 물건

봄의 한낮과 여름의 깊은 밤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이 계절의 물건 10.

PRADA / Saffiano Travel Tote Bag 꽃밭에서 우쿨렐레를 딩가딩가 튕기는 여자가 프린트된 이 가방은 프라다 2014 봄여름의 핵심인 하와이 모티프를 그대로 담았다. 사피아노 트래블 토트백은 작년에도 그 전해에도 있었지만, 이런 식의 천진함은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없으리라. 그러니 돈만 있다면 이것저것 따질 이유가 없다. 사피아노 가죽 소재라 뭔가 묻어도 곧 지워지고 쉽게 상처도 안 난다. 그러니 바닷가나 수영장에 들고 다녀도 괜찮다. 소매가 짧은 면 티셔츠와 연한 청바지를 입고 가볍게 드는 것을 추천한다.
LOUIS VUITTON / Commander Buckle Derby 더블 몽크 스트랩의 인기는 몇 해가 지나도록 여전하다. 구두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더블 몽크가 흔해진 것 같아서 싱글 몽크 스트랩을 사봤지만 여전히 더블의 착 감기는 맛을 못 잊는다는 아련한 에피소드도 넘친다. 60년대 댄디 스타일에서 힌트를 얻은 루이 비통의 커맨더 버클 더비는 플레인 토, 메달리온 장식, 두 개의 날씬한 버클 장식 등, 클래식 더블 몽크의 외양을 ‘젠틀하게’ 따른다. 한편, 부드러운 푸른색 송아지 가죽에 수작업 염색으로 음영 효과를 준 세부는 지적인 남자가 슬쩍 던지는 섹시한 농담처럼 매력적이다.
DEUTZ / Champagne 여름밤의 샴페인은 계절을 누리는 가장 단순한 즐거움이자 사는 재미, 부작용 없는 최음제다. 도츠 샴페인은 흠뻑 적셔진 꽃잎 같은 맛이 난다. 차갑게 식혀서 한 잔 가득 마시면 눈앞의 모든 게 번져 보이는 향기로운 마법. 아모르 드 도츠는 산사나무와 덩굴, 비스킷이 뒤섞인 섬세하고 가느다란 맛이 나고, 도츠 블랑 드 블랑은 레몬과 자몽, 복숭아 맛으로 시작해서 견과류와 구즈베리 맛으로 침착하게 끝난다. 제일 좋은 방법은 두 병을 사서 블랑 드 블랑을 먼저 따고, 숨 돌릴 틈 없이 아모르 드 도츠를 팡 터뜨리는 것.
HERMÈS / Jour D’hermès 에르메스의 새 향수 쥬르 데르메스는 여성용 향수다. 하지만 남자가 사야 하는 향수이기도 하다. 연인에게 이런 선물을 받고 놀라지 않을 여자는 우주에 없으니까. 새벽 이슬이 촉촉하게 맺힌 아침 꽃 스위트 피, 매혹적이고 센슈얼한 저녁의 꽃 가드니아, 두 가지를 섞으면 상상도 못했던 향취가 만들어진다. 유연한 선의 유리병은 튜브 톱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어깨 모양을 표현한 것. 드물게 아름답다 했더니 피에르 하디의 작품이다.
SHURON / Ronsir 오픈 칼라 셔츠와 색이 진한 쇼츠를 입고 양말 없이 더블 몽크를 신은 다음엔 역시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시력이 안 좋은 사람들에겐 기능 면에서 다시 없는 복음이요 한 줄기 빛인 클립 온 선글라스는 특유의 겹쳐지는 세부 때문에 디자인 면에서도 특별한 지점이 있다. 바슈롬, 아메리칸 옵티컬과 더불어 미국 3대 안경사로 꼽히는 슈론사의 전설적인 모델 론서는 보들레르의 말을 기억하게 한다. “완벽하고 진정한 멋은 완전히 단순한 외관에서 풍긴다.” KFC 창업주인 커넬 샌더스도, 말콤 엑스도, 영화 의 케빈 코스트너도 그 단순함에 깊이 빠져서 론서를 아꼈다.
Bold Ring 남자를 위한 반지는 정직하고 현실적인 동시에 혁신적이어야 한다. 이 사진 속의 건장한 반지들처럼. 맨 위부터 순서대로) 피라미드 모양 장식의 실버 링,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만든 링 모두 BOTTEGA VENETA. 골드 삼각 기둥 장식이 있는 링, 실버 원기둥 장식이 있는 링, 골드 원기둥 장식이 있는 링 모두 SAINT LAURANT PARIS. 베르사체 고유의 문양이 있는 커다란 링 VERSACE. 곡선 문양이 있는 실버 링, 뾰족한 문양이 있는 실버 링 모두 CHROME HEARTS. 기하학적 삼각형 장식이 있는 실버 링 MAISON MARTIN MARGIELA.
MADAM STOLTZ / Base 식탁에 꽃을 꽂아두고 싶은 계절이다. 어디 식탁뿐일까. 침대 옆 콘솔과 차 안, 사무실 책상에도 꽃 한 다발만 있다면 거기가 정원이다. 덴마크 보른홀름 섬의 작고 평온한 도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드는 마담 스톨츠의 가구와 소품들은 그 자체로 계절이고 휴양이다. 세련되고 건조한 북유럽 가구의 보편적 외양과 달리 마담 스톨츠는 거칠고 수수하고 자연스럽다. 틴 소재 바구니와 전혀 조심스럽지 않은 유리 제품이야말로 이 브랜드의 본령. 틴 바구니에는 흙 묻은 고구마와 당근을 담고, 되는대로 만든 것 같은 튼튼한 유리병에는 들꽃을 꽂아두는 이런 여름.
BARBOUR / Hockney Shirt Jacket 바버의 가장 우아하고 품위 있는 라인 비콘 헤리티지 컬렉션은 노튼 앤드 선즈의 패트릭 그랜트와 함께 만든다. 패트릭 그랜트는 영국 북동부 노섬브리아의 해안가에서 이번 계절의 이미지를 찾았다. 낡은 낚싯배의 그윽한 녹색과 노란색, 파란색. 소재는 가볍고도 튼튼한 것으로만 골랐다. 그중 호크니 셔츠 재킷은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로부터 색깔과 모양의 모티프를 따왔다. 자유롭게 흩뿌린 페인트와 오래 입은 것 같은 빛바랜 파란색, 팔꿈치의 귀여운 패치 장식. 고작 셔츠 재킷 한 벌이 이렇게 재미있고 가능이 많고 융통성 있어 보이다니.
MAISON MARTIN MARGIELA / Denim Pants 따뜻한 계절엔 역시 청바지, 라고 하기엔 섭섭한 망설임이 있다. 햇빛에 잘 마른 흰색 면 티셔츠와 함께 입기엔 오히려 그레이 진이나 블랙 진이 더 적절하다. 특히 장식 없는 검정색 가죽 통을 신을 거라면. 무릎이 찢어지고 끝단을 잘라 실밥이 쏟아지게 만든 까불까불한 데님이 지겨울 때쯤, 점잖은 마르지엘라 진을 입는다. 평범한 스트레이트 핏에 음영 없는 평평한 색깔. 평소 입는 것보다 한 치수 큰 걸로 골라 여유 있게 입기를 권한다.
HERMÈS / Le Flaneur 르 플롸네라는 프랑스 꽃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자전거는 꿈처럼 아름답다. 송아지 가죽 안장과 손잡이, 탄소 섬유 프레임,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를 가진 채, 자전거의 가장 예쁜 세부라 할 수 있는 램프와 벨도 청초하게 달려 있다. 그리고 더 무슨 얘기가 필요할까. 에르메스 자전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