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get

미니의 미래

2014.04.08GQ

3세대 미니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기대도 컸다. 그래서 아무도 모를 때, 몰래 푸에르토리코로 갔다. 더 성숙해진 뉴 미니를 타고 도라도 해변을 달리려고.

산후안 공항에 내렸을 땐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였다. 여기는 ‘부유한 항구’라는 어원으로부터 새로 다듬은 이름의 나라,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발음이 달큰한 이름의 땅에서 부는 바람은 온순했다. 외투를 벗고 버스에 앉아 눈을 감았다. 꽃샘추위가 시작된 서울에서, 잠이 모자란 채 몇 시간이나 날아왔는지 헤아릴 정신도 없었다. 듣고 있던 노래가 언제 끝났는지도 몰랐다. 산후안은 스페인 식민 시대 서인도제도와 유럽을 잇던 거점 도시였다. 숙소는 도라도 해변에 자리 잡은 한 리조트였다. 몽롱한 가운데 누가 말했다. “도라도라면, 엘 도라도의 그 도라도인 거야?”

도라도dorado는 ‘금색의, 황금색의, 황금색 같은’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남성명사다. 엘el은 영어의 the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남성 단수형) 정관사다. 한국어로 익숙한 번역은 ‘황금의 땅’일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 황금을 찾으려는 스페인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곳이 과연 여기였을까? 그때 스페인 사람들은 사금으로 온몸을 치장한 원주민 지도자도 금으로 건축한 마을도 못 찾았다. 엘도라도는 일종의 전설이었고, 마냥 좇다가 죽음에 이르는 환상이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렇게 한적하고 아름다운 해변을 보면서 ‘바로 여기가 황금의 땅’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해변에 3세대 미니가 태연하게 서 있었다. 완전히 달라졌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었다. 변했지만 실은 변한 게 아니라고 하는 것 같은, 단정하면서도 뻔뻔한 표정으로.

미니는 지금까지 고수해온 철학 자체로 전 세계에 거대한 커뮤니티를 조직했다. 미니를 산다는 건 그 철학에 동의한다는 계약이자 산뜻한 인생에 대한 다짐, 약속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미니를 운전했던 새벽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해가 좀 늦게 뜨길 원했을 정도로. 뮌헨 교외에 있던 공군 기지를 개조한 트랙에서 미니 쿠페 JCW를 탈 때는 놀이동산에 온 것 같았다. 미니는 시간의 축을 태연하게 옮겨놓는다. 어렸을 때, 어떤 재미에 순수하게 몰입했던 소년이었던 그때로. BMW가 2세대 미니를 출시한 건 2006년이었다. 7년이 지났다. 그래도 미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팔렸다. 미니는 유일하니까, 시간이 흐른다고 낡아가는 디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새로우면서 동시에 고전의 풍모를 갖춘 차이기도 하다. 3세대 미니도 과연 크게 다르지 않다. 걱정도 의심도 접어두는 게 좋다. 여지를 활짝 열어두고, 운전석에 앉아서 시동을 거는 순간 모든 것이 증명될 것이다.

인테리어의 디자인 요소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넓어졌고,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생겼다. 시동을 거는 버튼은 센터페시아에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총괄하는 동그란 다이얼 위에는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쓸 수 있다. 모니터 주변의 LED는 상황에 따라 다채로운 색깔을 낸다.

일단, 좀 커졌다. 사진으로는 티가 잘 안 나지만 1세대, 2세대, 3세대 미니가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미니는 점점 커지고 있다. 2세대 미니쿠퍼보다 9.8센티미터 길어졌다. 폭은 4.4센티미터 넓어졌고 높이는 7밀리미터 높아졌다. 앞바퀴 축의 중심과 뒷바퀴 축의 중심 사이 거리는 2.8센티미터 길어졌다. 뒷좌석 시트면도 2.3 센티미터 넓어졌다. 뒷좌석은 편해졌고, 트렁크 용량은 51리터가 늘었다. 뉴 미니의 트렁크 용량은 211리터다. 수치를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뉴 미니를 세워두고 앞에서 뒤로, 천천히 걸어보면 알 수 있다. 볼륨이 커졌다. 지금 팔고 있는 미니와 미니 컨트리맨 사이의 어디쯤일까? 실제로 미니 컨트리맨의 디자인 요소가 몇몇 반영되기도 했다. 컨트리맨은 미니의 승차감과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SUV의 뉘앙스를 적극 차용했다. 시장은 알차게 반응했다. 미니를 갖고 싶지만 공간이 작아서, 트렁크가 작아서 망설였던 사람들의 마음을 성공적으로 달랬다. 뉴 미니는 그보다 본질에 가까운 곳에서, 다시 유혹을 시작했다.

어쩌면 어떤 골목에 있는 첫 번째 요철을 넘을 때, 당신은 뉴 미니의 진면목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속이 확실히 깊어졌다. 미니는 더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차가 됐다. “핸들이 무거워.” “생각보다 딱딱해.” “승차감이 별로야.” 2세대 미니쿠퍼를 시승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미니 같은 승차감을 ‘별로’라고 일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지만, 한국과 미국이 만드는 차가 고수하는 물렁한 승차감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평가였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낯선 감각이 정작 차를 사는 데는 크게 도움이 안 되니까. 미니는 미니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이 낯선 감각을 소유욕으로 극복하는 사람만이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고유하기도 했고, 그래서 예쁘기도 했지만….

뉴 미니는 더 많은 사람을 확실하게 겨냥하고 나선 차다. 가운데 있던 속도계는 핸들 뒤 계기판으로 이동했다. 대신 내비게이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모니터가 가운데에 생겼다. 모니터 안에서 다룰 수 있는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은 BMW가 하던 방식과 궤를 같이한다. 버튼 위에 쓰여 있는 영문과 숫자의 서체도 그렇다. 원래 속도계였던 가운데의 동그라미 주변은 동그란 LED 조명으로 둘렀다. 운전 모드에 따라 녹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바뀐다. 차례로 그린greesn, 미드mid, 스포츠sports 모드다. 창문을 여닫는 버튼도 좀 쉬워졌다. 원래는 센터페시아에 있었던 버튼이 다른 여느 차처럼 문 쪽으로 이동했다. 모두가 익숙한 방향으로, 뉴 미니는 더 많은 사람에게 손짓한다. 이리 와서 앉아보라고. 같이 한번 놀아보자고.

대서양을 접한 푸에르토리코에서, 창문을 열어두고 산후안 해안도로를 달렸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래 정차했을 때 꺼지는 엔진은 그냥 그러도록 두었다. 새로워진 미니가 연비를 아끼는 방식이다. 가끔은 오른손으로 핸들을 잡고 왼팔은 창틀에 얹기도 했다. 이 따뜻한 바람을 몸으로 맞고 싶어서. 한국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한적하고 좁은 해안도로에서는 서핑보드 같은 걸 허리춤에 들고 가는 남자를 봤다. 거대한 산이 파도에 깎이고 무너져서 성문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잠시 멈췄다. 트렁크를 등지고 기대서 저 바다의 끝 같은 걸 상상하기도 했다. 이런 순간이 탐험의 시작이었겠지? 보이지 않는 곳이 궁금한 마음, 끝내 확인하고 싶은 모험심 같은 것. 바다로 이어진 길은 배를 띄우기 위한 곳이었다. 거기 작은 배 한 척이 묶여 있었다.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고속도로에선 눈치 보지 않았다. 조금씩 커진 미니의 차체가 얼마나 민첩한지 보고 싶어서, 시속 180킬로미터를 넘겨 심술 맞게 달려보기도 했다. 2세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좀 다른 차원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미묘하게 편안해진 실내에서, 핸들링은 세심했다. 차체는 변함없이 민첩했다. 그래서 몇 대를 추월했는지 몰랐다. 신나게 달려봤다. “에엥- 에에엥-!” 갑자기 들리는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미안해요, 한국에서 온 저널리스트인데, 이 차를 시승 중이에요. 새로 나온 미니예요, 3세대. 예쁘죠?” 풍채가 좋은 중년의 경찰이었다. 이국의 경찰 앞에서 뭘 숨길 수 있을까? 그 무표정을 마주하곤 솔직하게 말했다. “오, 이 귀여운 차가 어찌나 잘 달리는지…. 몇 마일로 달리는지도 모르고 그랬네요. 여권 드려요? 국제운전면허증? 잠시만요, 저기 트렁크에, 가방 속에….” 이렇게까지 알아서 말하니 경찰도 웃었다. “하하하,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요? 여긴 80킬로미터 도로예요. 이 길이 끝나면 120킬로미터까지는 달릴 수 있으니까 거기서 달려요. 그런데 지금처럼 달리면 안 돼요. 나 말고 다른 경찰이 거기 있을 테니까. 오케이? 그런데, 이게 새로 나왔다는 거죠?”

다시 숙소로 향했다. BMW에서 지정해놓은 길을 벗어난 어디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3세대 미니를 스쳐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머물렀다 가는 걸 지켜봤다. 남국의 느긋한 바람 속에서, 뉴 미니는 이런 차라고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국에는 4월 10일 공식 출시된다. 가격도 그날 공개된다. 사전계약은 이미 시작됐다. “충분히 합리적일 것”이라는, BMW 코리아의 전언을 여기 남겨둔다.

헤드램프와 리어램프의 모양도 조금씩 변했다. 주변은 크롬으로 둘렀다. 엔진룸은 이렇게 알차게 꽉 차 있고, 뉴 미니 쿠퍼 S에는 리어 스포일러가 달려 있다.
    에디터
    정우성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