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퍼렐 윌리엄스의 목적이 이끄는 삶

2014.04.28GQ

퍼렐은 이제 목적이 확실한 노래를 만들고자 한다. 나이 때문은 아니다.

재킷은 루이비통, 스웨터와 타이는 버버리 런던, 셔츠는 폴로 랄프로렌, 반바지는 간트 러거, 에스빠드류는 크리스찬 루부탱, 시계는 오데마 피게. 수트는 랑방, 셔츠와 타이는 버버리 프로섬, 타이 바는 더 타이 바, 신발은 컨버스, 안경은 모스콧

퍼렐은 지난해 만으로 마흔 살이 되었다. 퍼렐의 얼굴은 놀랍게도 처음 그가 음악 신에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똑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듯하다.

퍼렐이 일본식 정원을 좋아할 거란 얘길 들은 후,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명상에 잠긴 나무들을 보러 가기로. 퍼렐이 운전석에 앉고, 명랑한 그의 아내 헬렌이 조수석에 앉았다. 곧 퍼렐의 전화기가 울렸다. Ush란 이름이 액정에 떴다. 어셔다. 처음엔 퍼렐과 어셔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퍼렐이 어셔에게 뭔가 조언한다는 사실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다. “조바심 낼 필요 없어. 음반이 지금부터 한 달 뒤에 나온다면, 비디오는 두 달 뒤에 나와도 된다는 거야.” 퍼렐이 말했다.

듣다 보니 퍼렐이 프로듀싱하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인 듯했다. 제목은 ‘Year of the Horse’. 어셔는 발매 시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다음 주 금요일은 음력 설날이었고, 어셔는 그날에 맞춰 뭔가를 발표하고 싶어했다. 그런 어셔에게 퍼렐은 말띠 해는 1년 내내 계속된다고 말하고 중이었다. “일단 비디오를 찍어. 내가 지금 너한테 부탁하는 건 그거 하나야.” 퍼렐이 다소 조바심이 난 어셔를 진정시켰다. “지누와인이 ‘Pony’ 뮤직비디오에 로데오 황소 기계를 등장시켰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봐.” ‘Pony’ 뮤직비디오에서 지누와인은 너저분한 대로변 술집에 들어가 셔츠 단추를 풀고 섹시한 춤을 춘다. 그리고 술집의 몇몇 여자들은 로데오 황소 기계에 올라탄다. “그건 지누와인이었어.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건 너잖아. 너는 진짜 로데오의 세계로 가는 거야. 네가 로데오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노래와 함께.”

로데오의 세계라…. 어셔의 신곡 뮤직비디오는 90년대 힙합, 알앤비 뮤직비디오를 주름잡던 하이프 윌리엄스가 찍을 예정이다. 퍼렐은 어셔가 실제 로데오 경기장에 갔을 때 비로소 다양한 계층, 온갖 종류의 미국인들을 한꺼번에 열광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시대라고!” 퍼렐이 다시 어셔를 설득했다.

어셔는 퍼렐의 계획에 대해 100퍼센트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퍼렐은 그런 방면으론 도가 튼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감을 믿는다. 자본주의의 천재. 트러커 캡, 스케이트보드 기술, 노다웃의 음악…. 그는 당대의 성공한 프로듀서를 꼽을 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작곡가 한스 짐머는 언젠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사운드트랙을 작업을 할 때의 얘기를 들려줬다. 한스 짐머와 조니 마가 코드 진행으로 입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퍼렐이 곡 하나를 뚝딱 완성했다는 일화였다. 휴대전화로 5분 만에.

어셔와 통화하는 퍼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로데오의 세계를 통해서 비유적으로 얘기를 하자고. 난 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에서 양을 안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걸 좋아했단 말이야!” 정확히 말하면, 퍼렐은 ‘Blurred Lines’에서 양에게 노래를 불렀다. “네가 여기서 제일 섹시한 년이야.” 어쨌든 퍼렐과 양은 인기가 많았다. 그러고 보면 퍼렐이 새롭게 꾸며낸 일들 중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드물다. 2013년, 퍼렐은 ‘Blurred Lines’를 역시나 자신이 참여한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로 추격했다. 그러면서 빌보드 차트 1위와 2위를 동시에 차지하기도 했다. 빌보드 전체 역사를 따져봐도 굉장히 드문 일이다. 최근엔 <슈퍼배드 2>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Happy’로 또다시 1위에 올랐다. 그 곡은 지난 3월 발매된 두 번째 솔로 음반인 <G I R L>에도 수록되었다.

차로 돌아온 퍼렐은 새로 나올 신보 ‘G I R L’을 틀었다. 아직 발매일은커녕 발매 여부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아이폰으로 곡을 넘기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우리 집 벽엔 박제가 있어. 난 사냥꾼이야!” 음반엔 다프트 펑크, 저스틴 팀버레이크, 마일리 사이러스 등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지금까지 퍼렐이 만든 곡들과는 꽤 다르게 들렸다. 그는 이제껏 디스코의 영향을 받은, 70년대 솔풍의 노래가 가득한 음반을 만든 적이 없다. 게다가 섹스를 주제로 전 세계 여성들을 겨냥해 만든 음반이라니. <G I R L>은 심각하지 않았다. 그보단 즐기기 쉽고 누구나 받아들일 법한 음악에 가까워 보였다. 듣다 보니 그동안 퍼렐이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으로 만들어온 음악들이 되레 좀 못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못됐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면, 좀 차갑달까? 적어도 이렇게 따듯하진 않았으니까.

퍼렐은 결코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다. 오직 앞으로만 향하는 화살 같다. 첫 솔로 음반 <In My Mind>는 2006년에 나왔다. 퍼렐이 그웬스테파니, 루다크리스, 비욘세의 히트 싱글을 써낸 해다. <In My Mind>엔 꽤 허풍스러운 가사가 담겨 있었다. 모두가 고대하던 음반이었지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데스티니스 차일드 출신 보컬 레토야 러켓, 엉성한 컴필레이션 음반 <Now That’s What I Call Music! 22>보다도 덜 팔렸다. 이케아 선반을 위한 노래를 써도 히트할 것만 같던 프로듀서가 자신의 음반은 성공시키지 못하다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퍼렐은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 곡들은 전부 제 자아에서 나온 거였어요. 내가 버는 많은 돈, 화려한 생활습관에 대한 노래였죠. 그게 좋을 리 없죠. 거기서 뭐가 나오겠어요? 그냥 노래를 만들어야 하니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을 한참 잘못했던 거죠.”

셔츠와 바지는 프라다, 에스빠드류는 오바디아 앤 선즈, 모자는 보르살리노 by 제이제이 햇 센터, 목걸이는 샤넬.

그래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나요? 네. 그것 때문에 완전히. 우주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너한텐 목소리가 있고, 기회가 있어. 이걸로 뭘 하려는 거야?”

<In My Mind>가 나오기 전에도 우주가 그런 말을 했나요? 그렇죠. 그런데 듣질 못했어요. 돈의 목소리가 너무 컸어요. 성공이 지나쳤죠. 여자들은 예뻤고, 보석은 눈부실 정도로 반짝거렸죠. 차는 엄청 빨랐고, 집도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다 미쳐 돌아가고 있었고, 내 영혼은 축쳐졌어요. “젠장,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싶었죠.

<In My Mind>의 실패 이후, 퍼렐은 더 이상 솔로 음반을 내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그는 이미 프로듀서로서 주인공 옆에 있는 사람 역할엔 익숙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해나갈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만족스럽지 않은 시절이었나요? 물론이죠.

퍼렐의 어머니는 퍼렐이 열 살 때쯤 둘째를 가졌다. 셋째도 둘째와 10년 터울이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참 이상했어요.” 퍼렐이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교사였다. 아버지의 이름은 파라오로, 할아버지와 이름이 같다.

80년대의 버지니아 비치는 돌이켜보면 참 신기한 동네였다. 퍼렐만큼이나 성공한 프로듀서 팀발랜드도 거기에 있었다. 퍼렐과 팀발랜드는 같은 교회에 다녔다. “팀발랜드의 침실에 놀러가곤 했어요. 비트를 만드는 곳이었죠. 팀발랜드의 아버지는 음악이 커질 때마다 ‘팀! 음악 좀 줄여!’라고 외치셨죠.” 만약 그 집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그들이 만든 멋진 음악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클립스의 푸샤 티 역시 퍼렐의 동네 친구였다. 푸샤 티는 인터뷰에서 종종 “퍼렐은 그때부터 좀 다른 녀석이었다”고 회상하곤 했다. 퍼렐과 넵튠즈를 결성해 수많은 히트곡을 써낸 채드 휴고 역시 버지니아 비치에 살았다. 퍼렐과 채드는 넵튠즈의 이름으로 테디 라일리, 블랙스트리트, SWV 등의 음악을 쓰며 음악 신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1998년, 넵튠즈는 뉴욕 퀸즈 출신의 래퍼 노리에가의 ‘SuperThug’를 만들었다. 그 노래 덕분에 둘은 엄청난 부자가 됐다. 사이키델릭 록 리프를 클라비코드로 연주한 노래였다. 정신없는 드럼에, 베이스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퍼렐은 이 노래가 나온 뒤에 버지니아의 한 클럽에서 벌어진 일을 똑똑히 기억했다. “다들 완전히 미치던데요? 사람들이 의자를 던지고 난리를 피우던 광경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퍼렐은 자신의 노래가 클럽에서 작은 폭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성공을 확신했다.

그는 렉서스를 샀다. 그리고 포르쉐도 샀다. 퍼렐은 원래 보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의식 있는 행동을 지향하고, 주목을 끌려는 요란한 행동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른바 ‘백팩 래퍼’였다. 그래서 백팩을 멘채로 포르쉐를 탔다. 채드 휴고를 비롯한 동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그룹 N.E.R.D는 팝, 펑크, 록, 랩, 스틸리 댄의 음악을 완전히 뒤섞은 노래를 불렀다. 퍼렐의 새로운 음악은 전에 없던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길은 프랭크 오션,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 뮤지션이 색 다른 음악을 들고 나올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전 제 또래, 그러니까 그 시대의 젊은 흑인 친구들이랑 좀 달랐어요.퍼렐이 록, 재즈, 스케이트보드같이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완전히 끌릴 수밖에 없었죠. 허구한 날 이상한 놈이란 소리를 듣는 흑인이 나 혼자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타일러가 말했다.

넵튠즈는 그래미상도 받았지만, 퍼렐은 이미 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03년 8월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 달 라디오에 나왔던 곡 중 43퍼센트가 넵튠즈의 손을 거친 노래였다고 한다. 팝 문화를 숭배하던 아이가 팝 문화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스눕 독의 ‘Drop It Like It’s Hot’, 올 더티 바스타드의 ‘Got Your Money’, 제이 지의 ‘I Just Wanna Love U(Give It 2 Me)’, 패볼러스의 ‘Young’n (Holla Back)’….

재킷, 셔츠, 바지는 모두 폴로 랄프로렌, 운동화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이후 퍼렐은 여자들과 날씨를 따라 마이애미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그런 풍족함을 맘껏 즐겼다. 주문제작한 보석을 사고, 순금 블랙베리를썼다. 물론 여전히 그의 언행은 아름다웠다. 퍼렐은 가장 나쁜 남자의 가장 좋은 버전이 되기로 결심했다. 2006년, BET 채널의 <랩 시티>에 나와 첫 솔로 음반을 홍보하던 모습을 보면 당시 퍼렐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는 방송에서 잠시 프리스타일을 하다 주머니를 뒤져 루빅스 큐브를 꺼냈다. 여섯 개 면 전부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퍼렐이 큐브를 카메라 앞으로 들어 올리자, 큐브는 회전하며 빛을 냈다.

퍼렐은 아직도 그 큐브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자주 꺼내진 않는다고 했다. “이제 크고 요란한 것들은 잘 안 해요.”

지금 생각하면 어때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혼이 나가 있었죠.

아들에게 주면 되잖아요. “이 다이아몬드 루빅스 큐브는 널 위해 내가 남기는 유산이야.” 아니요. 제 아들이 받을 유산은 보석이 아니라 좋은 교육과 긍정적인 인생관이었으면 해요.

퍼렐은 결혼이나 나이를 먹는 것과 자신의 변화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어요. 물론 결혼은 최고의 결정이었지만.” 퍼렐이 아내 헬렌을 보고 고개를 까딱여 보이자, 헬렌이 미소로 대답했다. 정원에 다녀온 다음 날, 우리는 버뱅크의 스튜디오 앞에 앉아 있었다. 퍼렐은 최근 몇 년이 그렇게 특별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는 마일리 사이러스와 켄드릭 라마의 곡을 프로듀싱하고, 루이 비통과 몽클레르 액세서리를 디자인했으며, 무라카미 타카시의 조각작품에 참여하는 동시에, 다섯 살 난 아들 로켓을 키우며 지내왔다. 그 사이에 파리로 날아가 다프트 펑크와 몇 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리고 로빈 시크와 스튜디오에서 만나 ‘Blurred Lines’를 쓰고 불렀다. 딱 30분 만에.

작년 봄, 퍼렐은 다프트 펑크의 음반 레이블인 콜롬비아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솔로 음반을 더 만들 생각이 없다는 얘긴 들었어요. 하지만 마음을 바꿀 거란 것도 알아요. 지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해도, 결국 마음을 바꿀 거예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당신의 맘을 바꾸고 싶어요.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만들고 싶은 거라면 뭐든 만들어서 음반을 하나 내는 거죠.’”

퍼렐은 쉽게 설득당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계약이 임박했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이 어떤 음반을 만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음반 이름은 무엇이 될지까지도. “<G I R L>이란 이름이 금세 떠올랐어요. 여자들은 오랫동안 저를 믿어주고, 큰 힘이 돼줬거든요.” 퍼렐은 자신이 나이가 들었고, 자기 음악을 듣는 사람 중 일부도 같이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다.

<In My Mind> 음반의 ‘How Does It Feel’엔 “TV에 나온 나를 봐. 예쁜 여자들은 나와 섹스하고 싶어 하지”란 구절이 있다. “내가 대체 무슨말을 했던 걸까요? 그냥 으스대고 있었죠. 난 당시에 제이 지, 퍼프 대디처럼 되고 싶었어요. 그들에겐 그들의 길이 있고, 내겐 내 갈 길이 있는 건데. 그러고 나서 난 좀 다른 식으로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음악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2008년부터 지금까진 훈련 기간이었던 거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목적을 부여하는 시간.”

앉아 있던 퍼렐이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제이 지의 ‘So Ambitious’의 일부였다. “내 동기는 사람들이 내가 어떤 모습은 될 수 없을 거라고 떠들어대는 거야.” 노래를 멈춘 퍼렐이 다시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목적을 투입하세요, 목적을 투입하세요, 목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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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그래퍼
    파올라 쿠닥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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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 배론(Zach Ba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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