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염경엽의 영웅문

2014.04.30GQ

염경엽은 비주류였지만, 철저히 준비된 감독이었다. 그가 이끄는 넥센 히어로즈는 지난해 처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올해는 더 높은 곳을 공략한다.

Sports판형

어제(4월 8일 KIA전) 넥센이 시즌 첫 연패를 당했어요. 야구는 매일 경기가 열리는 종목인데, 전날 패배를 말끔히 잊을 수 있나요? 지는 게임은 잘 안 잊히죠. 문제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니까. 더 늦게 자요.

경기를 복기하나요? 그렇죠. 영상을 보면서 당일 경기의 안 좋았던 대목들을 봐요. 제 경기 운영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좀 큰 것들은 메모를 하고요.

13:4까지 벌어졌을 때, 중계진은 “질 때는 확실히 지는 게 낫다”고 말했어요. 넥센 선수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경기는 13:8로 끝났어요. 포기하는 경기를 돈 주고 보고 싶을까요? 선수들에게 언제나 세 시간 동안 집중하라고 강조해요. 10:0으로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죠. 물론 투수 운용의 경우엔 중계진의 얘기에 어느 정도 동의해요. 하지만 교체한 선수가 나가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 경기는 최선을 다한 경기가 되는 거예요.

얼마 전 선수협에서 “6회 이후 6점 이상 차이가 나면 도루를 자제하자”고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도루를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팀 나름대로 정하면 될 것 같아요. 다른 팀은 어떨지 모르지만 전 제가 생각하는 불문율이 분명히 있어요. 지저분한 야구는 하기 싫은 사람이니까. 뭘 어떻게 정한다기보다는 ‘이 점수로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싶으면 상대를 자극하는 플레이는 안 해요. 하지만 1점을 더 뽑아야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면 어떤 상황이든 전 작전을 건다는 거죠.

9경기 4승 5패란 성적은 어떤가요? 우승후보로 꼽히기도 했는데, 생각보단 좀 어렵나요? 예상보단 승수가 좀 부족하네요. 타격, 수비, 주루는 잘 돌아가고 있는데, 투수 쪽에서 아직 제 기대치를 따라잡지 못했어요.

올해부터 외국인 타자들이 다시 리그에 등장했어요. 넥센으로선 손해를 본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확실히 그런 건 사실이에요. 저희는 외국인 타자가 필요하지 않은 팀이었으니까. 프로야구 전반적으로 투수력이 약화되다 보니 외국인 타자들이 적응하는 속도도 빨라졌어요.

“염 감독 선임은 베팅이다”라고 말한 이장석 대표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어떤 얘길 했나요? 넥센이 첫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해였죠. 고생했다고 하셨죠.

끝인가요? 네. 쉽지 않은 기회를 주신 거니까, 제가 그 베팅에 보답해야죠. 그렇지 못하면 사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3년 계약을 했어요. 계약기간은 의미 없다고 보나요? 능력이 없는데 자리를 지키는 건 남자가 아니죠.

그렇다면 어떤 남자를 존중하나요? 목표의식과 절실함이 있어야 돼요. 그게 없으면 자신이 뭘 가졌든 절대 성공할 수 없어요. 전 어렸을 때 너무 안일하게 살았어요. 제가 정한 한계선에서 항상 정지했어요.

사람은 안 변한다는데, 선수 염경엽과 감독 염경엽은 다른 사람인가요? 많이 다르죠. 어릴 땐 야구가 너무 쉬웠어요. 생각하는 대로 다 됐어요. 어느 대학을 가야겠다, 해서 그 대학에 갔고, 야구 했는데 프로는 가야지, 마음먹었더니 프로 선수가 됐어요. 프로 가선 주전을 차지했고요. 거기에서 만족했어요. 그래서 흥청망청 살았고, 그 분위기를 너무 즐겼어요. 아차 싶었을 땐 너무 늦었던 거죠.

선수 시절 기록을 살펴보면 오히려 주전에서 밀려난 1998년과 2000년 타율이 가장 높아요. 그렇죠. 후회한 다음에 노력을 해봤지만 안 되더라고요. 이미 너무 많이 잃었으니까. 불평도 많이 했어요. 지나고 보니까 다 제 잘못이었어요. 제가 잘했으면 누가 절 안 쓰겠어요? 그러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선수로서는 끝났다고 판단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했죠.

감독이 될 거라고도 생각했나요? 아니요. 예전엔 야구를 잘했던 분들만 감독이 됐으니까요. 코치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러다 프런트 일도 하게 됐고.

스카우트와 운영 팀에서의 경험이 감독 생활을 하는 데는 어떤 도움이 되나요? 스카우트를 하면서는 선수를 평가하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어요. 프런트로 일할 때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됐고요.

프런트와 현장 중 어느 쪽이 좀 더 체질에 맞나요? 야구를 한 사람이니까 코치 쪽이 더 좋았죠. 그래서 프런트에 있다가 코치로 뛰어나온 거고. 제일 중요한 건 선수들한테 인정받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큰 재산이 될 거라고. 프런트로 일할 땐 원래 그 일을 하실 분들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그래서 시기도 많이 받았고.

프런트 시절 함께 일한 이영환 전 LG 트윈스 단장은 “염경엽 감독은 만나본 야구인 가운데 가장 머리 회전이 빠르고 기획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데다 업무처리 능력도 뛰어나다”고 말했어요. 선수시절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뭘 하든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고서 한 장을 쓸 때도 계속 생각했어요. 내 눈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중요한 거잖아요. 보는 사람이 저보다 야구 관련 지식이 떨어진다면, 그 사람 눈에 맞춰서 작성하는 게 맞다고 봐요.

한편 LG 프런트로 일할 땐 “LG 암흑기의 주범”이라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굉장히 힘들었어요. 난 내 할 일을 해야 되는데, 소문 때문에 자꾸 숨고, 작아지게 되고.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서 사표를 쓰고 나온 거예요.

결국 모든 걸 이겨내는 건 실력이란 생각이 들어요. 넥센 감독으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자, 소문은 잠잠해졌죠. 당시엔 남자로서 최악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소문이 났었죠. 줄이나 잡고. 전 라인 같은 걸 잡아본 적이 없어요. 독고다이예요. 정말 자존심 세고, 그거 하나로 지금까지 왔어요. 그런데 야비하고 얍삽한 사람으로 비춰지니 충격이었죠. 언젠가 진실은 밝혀진다고 믿었어요. 그렇게 안 살았으니까.

넥센 감독으로 선임되었을 때,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란 맘도 좀 있었나요? 그것과 연관 짓기보다는, 내가 잘해내면 나 같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 같은’ 사람요? 야구를 좀 못했어도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 의외로 타 팀 코칭스태프를 만났을 때 “잘하라”는 응원도 많이 받았어요.

감독의 자질로 가장 중요한 건 뭔가요? 나를 버려야 돼요. 처음 시작하는 감독이라면 그게 첫 번째예요.

선수 시절의 영광을 잊으라는 말인가요?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버려야 한다는 거죠. 팀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생각해야 돼요.

넥센의 상황을 보면, 일단 거포가 많은 팀이에요. 올해는 윤석민까지 트레이드로 가세했고요. 제가 생각하는 야구하고도 잘 맞는 편이에요. 이장석 대표님이 좋은 선수를 많이 영입해놓으셨어요. 파워 히터를 많이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목동처럼 작은 구장을 쓰는 팀에 파워 히터를 내주는 건 큰 실수일 수도 있죠. 맞아요. 구장하고 팀의 야구엔 연관성이 필요해요. 두산 김경문 감독님이 예전에 잠실에서 빠른 야구를 해서 성공했잖아요.

장타력에 비해 출루 능력이 과대평가된 리그란 말엔 동의하시나요? 선수를 어디에 배치할지에 달린 얘기죠. 7번, 8번 타순이라면 출루 능력보다 장타력이 있는 선수가 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하위타선을 짤 수 있으니까요.

지난 스토브 리그에 FA가 한 명쯤 영입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요? 작년 FA 선수 중에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가 없었어요. 선수의 역할이 서로 겹치면 안 돼요. 겹치면 어떤 선수는 죽게 돼요.

아홉 명의 확고한 주전을 쓰는 대신 몇 자리를 꾸준히 순환시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선수들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출전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너무 오래 앉혀놓으면 좌절해요. 계속 내보내면 자만하고. 일단 한 시즌에 1백 경기 이상 뛴다면 나쁜건 아니니까요. 분명히 주전과 백업의 구분은 있어요.

시범경기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친 강지광을 2군으로 내려보냈어요. 그러면서 “작년에 고생한 선수가 우선이다”라고 했죠. 선수 시절의 경험처럼 들리기도 해요. 키우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팀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어요. 일단 계획한 대로 시즌을 밀고 나가야 주전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못했을 때 다른 선수한테 기회가 간다면 납득할 수 있겠죠.

한편 작년의 이성열과 서동욱, 올해의 윤석민처럼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한 선수들은 굉장히 과감하게 기용하고 있어요. 트레이드는 우리가 필요해서 한 거잖아요. 합류한 선수들이 동기가 있어야 팀에 대한 애착도 빨리 생기고, 적응도 잘하죠.

선수 영입엔 어느 정도로 관여하나요? 일단 구단에서 안건에 대해 상의는 해요. 저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떤 것 같습니다 의견을 내는 정도. 거의 제 의견을 존중해줬어요. 나쁜 트레이드도 거의 없었고.

타선에 거포가 많다면, 투수진엔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가 많아요. 손승락, 한현희, 강윤구, 올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조상우…. 팀에서 그런 어린 선수들을 잘 뽑아온 거죠. 스카우트도 이장석 대표님의 직속 라인이에요. 그런 투수들이 터지면 특A급으로 터지잖아요. 그래서 강속구 투수하고 파워 히터는 쉽게 버려선 안 된다는 거예요. 트레이드도 그렇고.

150킬로미터를 우습게 던지는 조상우를 선발로 키울 생각은 없나요? 작년에 준비를 시켰는데, 2군에서 보니까 60개쯤 던지면 스피드가 떨어지더라고요. 메커니즘이 아니라 힘으로 던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팔에 무리가 갈 수 있어요. 중간에 나오면서 하나씩 깨우치다 보면 선발로 갈 수 있겠죠. 어떤 선수가 류현진이 될 가능성이 높은지, 오승환이 될 가능성이 높은지 정확히 판단해주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라고 봐요. 뭐든지 최고면 되는 거잖아요.

세이버 매트릭스를 신뢰하나요? 세이버 매트릭스나 윈 셰어 같은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료도 많이 보고요. 통계를 무시할 순 없어요.

통계로 모든 결정을 내리진 않는다는 말처럼 들려요. 제일 중요한 건 선수들의 컨디션과 팀 사정이에요.
어떻게 보면 통계는 통계일 뿐이란 거죠.

선수들의 컨디션은 직접 물어보나요? 그래서 제가 밤에 경기를 다 보는 거죠. 텔레비전으로 보면 타자들이 칠 때 타이밍을 잘 잡는지, 투수들이 정확히 어떤 구질을 던졌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감’이란 걸 믿나요? 감도 중요하죠. 운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잘 쳐도 야수 정면으로 가기도 하고, 빗맞아도 텍사스 안타가 나오고 그러잖아요.

작전을 걸 때도요? 작전은 감보단 예측을 하는 거예요. 감이랑은 전혀 달라요. 상황과 상대를 파악하고 분석해야죠.

거기엔 통계가 바탕이 되겠네요. 그렇죠. 시합하면서 1회부터 상대가 어떤 구종을 던지는지, 어떤 카운트에 어떤 공이 들어오는지 등을 계속 머리에 담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처음에 어떤 작전을 썼는지도. 썼던 걸 또 쓰면 간파 당할 확률이 높겠죠.

화려한 공격 전술에 비해 투수 운용이 아쉽다는 유의 말은 어떤가요? 투수 운용은 결과를 갖고 얘기하는 부분이에요. 욕 안 먹으면서 운용하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감독은 이길 수 있는 확률에 승부를 걸어야 돼요. 이기기 위해 좀 더 빠른 교체를 하고, 이기기 위해 좀 더 늦춰보는 거예요. 계투진과 선발 개개인의 컨디션 같은 건 내부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정확히 알잖아요. 그리고 어쨌든 실패를 하면 누가 책임지나요?

감독이죠. 제가 책임지는 거예요. 중요한 건 제 스스로 평가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선수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감독이 어이없는 실수를 계속하면 선수들이 절 믿지 못해요. 감독의 소질이 없는 거죠.

선수 시절부터 메모를 했죠. 그 많은 수첩엔 주로 어떤 내용이 있나요? 내가 잡았던 목표, 야구하면서 느낀 점, 감독하면서 신경 써야 되는 부분, 다른 팀 작전….

스카우팅 리포트 같은 것도 적혀 있나요? 누가 누구에게 강하고, 누가 어떤 공에 약하고…. 그건 다른 수첩에. 선수별로 만들어놨어요.

이론이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보나요? 저는 간접 경험으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김성근 감독님의 야구를 보면서 좋은 부분을 뽑아 내 야구로 만들었고, 로이스터를 볼 때도 그랬어요. 데이터 야구 대신 “두려워하지 마라”, “편하게 해라” 같은 말로 자신감을 실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도 4등은 가능하구나. 우승은 못해도. 그동안 야구를 허투루 보진 않았어요. 선수 때 허투루 봤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염 감독이 나와 좀 닮은 것 같다”는 식의 말을 했어요. 상대를 분석하고, 작전 때문에 밤을 새고 고민하며, 최고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감독이라는 말과 함께요. 정말 감사하죠. 말씀해주신 것 같은 야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계획 없이 시합에서 이길 순 없어요.

요즘은 2위를 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해도 감독이 경질되곤 해요. 감독은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할까요? 과정과 결과가 있으면 절대 무시 안 당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쨌든 결국 프로는 결과인 거고요.

2위를 안 좋은 결과라 말할 수 있나요? 그러면 과정이 안 좋았단 얘기죠. 2등 했어도, 감독을 기용한 사람들이 봤을 땐 1등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감독의 특징이나 팀의 미래를 못 봤다거나.

    에디터
    유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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