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희애 VS. 김희애

2014.05.07GQ

김희애는 어떤 배우일까? 새삼, 그녀의 연기를 그녀의 연기와 비교해본다.

Entertainment판형

커리어 우먼 VS. 애인
SNL에서 개그우먼 안영미는 <밀회>의 여주인공 오혜원을 연기하는 김희애를 패러디한다. 안영미의 패러디 신은 <밀회>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드라마 초반부 유아인과 김희애의 첫 피아노 협주 장면이다. 안영미는 이 연주 장면을 노골적으로 비틀면서 원작에는 없지만 김희애가 화장품 CF에서 유행시킨 “놓치지 않을 거예요”를 속삭인다. 이 패러디는 처음에는 우스꽝스럽지만 콩트가 진행될수록 껄끄럽고 불편한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옷의 솔기 같은 이 껄끄러움은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에게서도 느껴진다. 아트센터 기획실장이자 순수한 천재 피아니스트 청년과 사랑에 빠진 오혜원을 동시에 보여주는 김희애는 아무래도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김희애는 여백이 없는 배우다. 반면 그녀가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오혜원이란 인물은 점점 진부해진다. 물론 <밀회>의 오혜원이란 캐릭터에 김희애가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건 이 드라마에서 오혜원의 8할인 아트센터 소장으로서의 모습 때문이다. ‘우아한 노비’라는 자조적인 대사처럼 오혜원은 아트센터와 클래식 음악을 움직이는 거대한 큰손 밑에서 조아리고 때론 그들의 뒷배를 봐주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권력 관계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약점도 보이지 않는 치밀함도 갖춰야 한다.

과거 드라마에서 여백 없는 연기를 보여줬던 김희애는 이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 인물 오혜원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연기력을뽐낸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나머지 부분, 사랑에 빠진 오혜원을 연기할 때 여백 없는 김희애는 평면적이다. 사랑을 하는 오혜원은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처럼 나르시시즘적이고 연극적인 사랑에 빠진 인물이 아니다. 오혜원은 처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끌림, 사랑을 깨닫고 당황하고 흔들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김희애는 이 흔들림을 너무 ‘드라마’적으로 보여주려 애쓴다. 표정 하나, 호흡 하나, 눈빛 하나 놓치지 않고 답안지에 적듯 말이다. 그렇게 그녀가 놓치지 않을 때마다 ‘우아한 노비’였던 오혜원마저 어느새 생생함을 잃고 만다. 더구나 사랑이란 원래 나 아닌 타인에게 계속 놓치고 또 놓쳐도 애틋해지는 그 무엇일 텐데 말이다. “사색도 감정도 없는 기교가 무슨 소용이야!” 그래서 오혜원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선재를 꾸짖는 이 대사가 오히려 오혜원이 김희애에게 호통치듯 다가온다.
글 / 박진규(소설가)

성녀 VS. 속물
피아노를 칠 때의 그녀는 늘 흰옷을 입고 있다.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흰 칼라 셔츠나 셔츠 원피스를 입고서 흰 건반 위에 자신을 바친다. 당당하고 정결하게. 그 순간 그녀의 몸을, 그녀의 손을 접촉하도록 허락받은 이는 오직 피아노뿐이다. 아직 ‘동정’인 소년조차 그녀를 만질 수 없다. 반면 가진 자들이 자신을 욕보이도록 기꺼이 허락할 때, 그녀는 검거나 무늬가 있거나 색깔 있는 옷을 입고 있다. 부유한 마나님들에게 뺨을 내어주기도 하고 그 여자들이 던지는 마작 패에 이맛살을 찢기기도 하며 회장님이 슬쩍 흘린 한마디에 뚜쟁이 역할도 서슴지 않는다. <밀회>의 김희애는 그렇게 패션 감각이 아닌 의상 감각을 통해 성녀의 이미지와 속물의 이미지 사이를 오간다. 윤리 도덕과 세속적 욕망 사이, 궁극의 오르가슴을 선사하는 순수예술과 순수예술을 노리개처럼 부리고 싶어 하는 자본주의 사이, “그냥 저 사랑하시면 돼요”라고 말하는 선재와 “너도 명품 걸치고 부자 셀럽들 상대하면서 이거저거 누리고 싶어 자청한 거잖아”라고 말하는 강 교수 사이.

그 아이러니한 상황에 꼭 들어맞는 얼굴을 지닌 여배우가 바로 김희애다. 세월의 흔적을 지우려 애쓴 노력이 짐작되면서도 여전히 자연스럽게 나이 들었다고 말할 만한 그녀의 얼굴은, 자본과 자연이 동등한 힘을 자랑하는 장소다. 혹은 양쪽 진영의 권능이 그녀의 얼굴 안에서만큼은 휴전을 선언한 것 같다고 하면 과장된 수사일까. 그 휴전 상태의 가면을 습득한 그녀는 상류층 강 교수의 속된 세계와 하층민 선재의 성스러운 세계를 모두 끌어안으면서 그 둘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한다. 그리고 그 중도 선상에서 개인의 품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도 도덕의 문제를 연기해낸다. <우아한 거짓말>의 현숙이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또 그녀가 맡아 다행이라 생각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슬픈 사연을 지닌 억척 엄마 현숙은 그녀에게 중도적 품위를 버리라 요구하지만, 결국 그녀의 중도적 품위가 현숙이 단순한 전형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막아주기도 한다. 물론 현숙 같은 ‘마트 아줌마’는 너무 비범하지 않은가 물을 수도 있다. 아마도 김희애의 얼굴이 그녀의 필모 그래피만이 아니라 ‘SK-ll 모델’, ‘이찬진 대표의 부인’, ‘재테크의 고수’ 등의 기의가 함께 작동하는 기표이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현숙을 연기하는 그녀가 덜 흥미로워 보이는 이유는 설득력보다 캐릭터 자체의 단조로움에 있다. 현숙의 눈은 저 세계를 향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월담의 유혹은 그러나 실로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담의 어느 쪽에 서 있든 상관없다. 고결한 여자 대 천박한 여자, 순결한 여자 대 음탕한 여자, 선량한 여자 대 영악한 여자. 한 여자 안엔 두 세계가 공존한다. 그 어느 쪽으로도 완벽한 ‘백 퍼센트’는 있을 수 없다고, <밀회>의 김희애는 자신만의 고유한 얼굴과 연기를 통해 말하고 있다. 늘 얼마간의 불순물이 섞여 있는 그녀의 욕망의 화신들이 흥미롭다.
글 /이후경(영화평론가)

거짓말 VS. 진짜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첫 번째 신, 현숙(김희애)은 서서 졸다가 밥솥 소리에 깬다. 달걀 프라이를 먹지 않는 딸 대신 입을 크게 벌리고 프라이를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중국집에선 짜장면도 나오지 않았는데 단무지를 손으로 집어 먹고, 화가 날 땐 ‘등신아’, ‘미친’, ‘망할년’을 번갈아 내뱉는다. 현숙은 혼자 두 딸을 키우는 마트시식 코너 직원이다. ‘서민’이 된 김희애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그건 철저히 외모와 역할 사이의 괴리일까? 박제된 얼굴, 날렵한 몸, 아무리 찡그려도 애환 따윈 튕겨내는 매끈한 피부. 그녀는 <힐링캠프>에서처럼 실제 김희애를 보여줄 때도, 그 얼굴에 합당한 태도로 일관한다. 절제와 절제. 그녀가 어떤 식으로든 ‘우아한 여자’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건 미모뿐만 아니라, 삶을 관통한 절제 때문은 아닐는지. 누군가는 그녀가 프레임 안에서 연기를 ‘하려고’만 해서 정말 ‘연기’처럼 보인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김희애는 계속 자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연기와 내면과의 괴리, 실제로 절제하는 김희애와 프레임 안에서 폭발하는 김희애는 진짜와 거짓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걸까? 하지만 내면연기 같은 건 거짓이라고 말한 임권택 감독의 일침. “배우의 내면을 어떻게 보여준단 말이요, 그냥 거기 있어서 진짜 같으면 되는 거예요. 내가 지금 배우인데, 그거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렇게 봐 달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그때는 이미 거기서 끝난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해야 하는 동작을 하는 배우의 쇼트가 제자리에 있느냐는 문제요. 그 거짓말을 보고 사람들은 잘한다고 하는데 그런 거에 속으면 만날 해봐야 점점 사람이 웃겨지는 거요.”

<우아한 거짓말>에 이어 <밀회>가 시작됐다. <우아한 거짓말>에도 같이 출연한 유아인과의 충돌은 놀랍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현숙에게 스쳐 지나간 남자는 겉으로는 성동일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유아인과 더욱 (성적으로) 긴장된 건, 과연 <밀회>의 예고편이었다. 옆집 남자 유아인을 여전히 절제한 표정(은 투명한 피부를 관통하며 옅은 시선만)으로 응대한다. 당장이라도 함께 침대에서 뒹굴어도 아무렇지 않을 은밀한 긴장. 그러니 <밀회>에서 선재(유아인)를 상대하는 김희애의 움직임은 마땅히 제자리에 있다. 그녀의 내면이 어떤지 그런 것 따위는 잊은 채, 그녀가 순수한 사랑과 불륜을 섞은 채, 상류층의 치부 밑에 자신의 치욕을 숨긴 채,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이지 못하는 계급인 채, 숨겨온 욕정을 막 풀어헤친 채로 말이다. 더불어 보는 즉시 믿을 수 있다. 누군가는 과장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건 허상을 살아내는 (그래서 뭐든 연기하듯이 이겨내는) 오혜원만이 할 수 있는 말투와 몸짓이며, 오혜원에겐 그런 애환 같은 건 튕겨내는 피부, 크고 하얀 리본으로 포장한 박제된 얼굴, 어떤 원피스도 낙낙한 날씬한 몸이 당연하다. 이제 김희애의 진짜 내면이 궁금하다. 여전히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 절제하면서 에너지를 숨긴, 그러면서도 ‘우아한 거짓말’, 오혜원으로 유일한 배우니까.
에디터 /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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