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명의 셰프가 차린 어버이날 아침상

“요리를 시작할 때 아버지께서 많이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요리 학교도 못 나왔잖아요? 흐흐. 그런데 요즘은 달라요.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집에 싸가지고 가면, 아버지가 정말 맛있게 드세요. 평소 양식은 전혀 안 드시는데도요. 얼마 전엔 제가 나온 잡지를 열 권씩 사두시는 것도 봤어요. 이런 말도 다 쓰실 거예요? 이것도 챙겨보실 텐데…. 어버이날 아침에 차려드릴 메뉴로 떠올린 건 뵈프 부르기뇽입니다. 육류를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쇠고기와 푹푹 삶은 작두콩이라면, 백 퍼센트, 확실히, 다 드실 것 같아요. 아! 저녁엔 술도 함께 마시고 싶어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표고버섯, 하몽을 넣고 튀긴 춘권을 마요네즈와 생고추냉이를 섞은 소스에 찍어 먹으면 좋겠어요. 아마 함께 마시는 첫 잔일 거예요. 지금까지 아버지와 술 한잔 못하고 살았네요.” 정창욱(운니동 ‘차우기’)

“아버지께서 40대부터 틀니를 끼셨습니다. 평소 음식도 자주 못 해드리는데, 이날만큼은 불편한 이도 잊을 수 있는 메뉴를 골라야죠. 그래서 가시를 다 발라낸 삼치구이를 만들려고요. 대삼치라고, 길이가 1미터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게 있어요. 이걸 포 뜬 다음 가시를 빼고 두툼하게 굽습니다. 유자 드레싱을 두른 양파와 영양부추를 곁들여 삼삼한 삼치에 맛을 더하거나, 삼치 살을 다시마 가루와 소금에 찍어 드셔도 좋고요. 밥상에 김치가 없으면 영 서운한 부모님을 위해서 김치찜도 만들고 싶어요. 6개월 묵은지는 돼지기름에 볶으면 신맛은 잡고 고소한 맛은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돼지고기 항정살은 네 시간 정도 삶아 사르르 녹게 하고요. 새벽에 시장에 들러 제일 신선한 재료를 한 아름 사서 국과 밑반찬도 만들 거예요. 아…. 그날 진짜 일찍 일어나야겠는데요” 박성윤(한남동 ‘일호식’)

“저에게 아버지는 가장 무서운 요리사입니다. 역삼동의 대려도라는 뿌리 깊은 중식당에서 오랫동안 요리하셨어요. 제가 어떤 중식 요리를 해드려도, 아버지는 다 드신 걸 거예요. 깐깐하게 평가하시고 지적하실지도 모르죠. 그래서 아버지가 깜짝 놀라실 만한 요리법으로 만든 새로운 아침상을 차려드리고 싶습니다. 두부로 피를 만들고, 그 속을 생선 살과 죽순으로 채운 뒤 꽃게 살과 알을 올린 메뉴입니다. 만두 좋아하시는 아버지도 이런 건 처음일 거예요. 몸에 좋은 건해삼과 건은이버섯으로 수프도 만들어야죠. 공심채까지 살짝 데쳐 올리면 영양소가 꽉 찬 한 상이 됩니다. 큰 수술 이후에 유독 자극이 덜한 음식을 찾으시는 아버지가 드시기에도 아주 순하고 보드라운 맛입니다. 요리를 보시고 무어라 하실지, 한마디 한마디 잘 들어둬야겠습니다.” 장금승(장충동 신라호텔 ‘팔선’)

“어릴 적에 정동진에서 살았어요. 아버지의 고향이죠. 속초에서 시집온 어머니는 아버지가 수영 바지만 입고 나가 잡아온 쥐치, 가자미로 요리를 해주셨어요. 그땐 가자미를 회로도 자주 먹었어요. 지금 요리한다면 토마토 버터 소스를 곁들인 가자미 구이가 어울릴 것 같네요. 여기 한가운데 올린 건 오소부코예요. 고기라면 아주 좋은 것만 조금씩 드시는 어머니를 위해 송아지 정강이를 오븐에 3시간 쪘습니다. 문어와 도가니를 넣은 파카리 파스타도 조금 올렸고요. 아침으론 좀 거하죠? 워낙 바빠 단둘이 살아도 어머니를 위해 요리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이 참에 어머니에게 맛보여드리고 싶은 걸 모두 만든 거예요. 정동진처럼 한쪽엔 산을 만들고 서서히 바다로 이어지듯 해산물을 올렸고요. 아침부터 시작해 점심시간이 다 지나도록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먹고 싶네요.” 현정(청진동 ‘오스테리아 꼬또’)

“저희 조부모님은 평양에서 냉면집을 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6.25 동란 전에 오사카로 건너가셔서 한국식 불고기와 냉면을 소개하셨다고 합니다. 그게 지금의 야키니쿠가 되었습니다. 그래선지 아버지는 지금도 냉면은 물론이고, 고깃국물을 활용한 요리를 좋아하세요. 어버이날 아침 식사로 프랑스식 고깃국물을 소개해드리고 싶은 제 마음 아시겠죠? 프랑스 요리에 포토푸Pot au Feu라는 것이 있어요. 최대한 여러 부위의 고기들을 천천히 오랫동안 잘 삶아서 국물과 고기를 모두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골, 꼬리, 사태, 양지, 갈비, 부챗살, 아롱사태를 부위에 맞게, 고기가 망가지지 않도록 묶고 조여서 성형을 해요. 이렇게 모양을 잡은 고기를 조려 국물이 완성되면 채소를 넣고 다시 한 번 끓입니다. 디종 머스터드에 고기를 찍어 먹고, 빵은 국물에 적셔 먹으면 됩니다.” 임기학(청담동 ‘레스쁘아 뒤 이브’)

“한국에 온 지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어버이날 정성스럽게 차린 아침상은 몸과 마음으로 이해되는 문화예요. 평소 제 소개를 할 때 열여섯 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다고 말하는데, 생각해보면 여섯 살 때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신 ‘브레이즈드 치킨’을 만들던 때가 진짜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아침상은 부모님은 물론이고, 할머니께도 꼭 차려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하루 전날 준비해둔 크랩 케이크에 제주도산 돼지 삼겹살을 수비드 조리해 더합니다. 에그 베네딕트를 올리고 쇼롱 소스로 마무리하면 한 접시가 완성됩니다. 쇼롱 소스를 토치로 살짝 태우면 맛도 모양도, 향도 다 살아나죠. 여기에 직접 만든 그래놀라와 버터 푸딩을 곁들입니다. 색감과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 과일을 하나씩 4등분해 접시 위에 꽃처럼 피운 샐러드도 만들어봤습니다.” 슈테판 헤야트(삼성동 파크 하얏트 호텔 ‘코너스톤’)

“부모님이 요즘 아침으로 밥보단 샐러드, 고구마, 삶은 달걀, 과일, 녹차를 드세요. 나이 드시면서 자극적인 음식을 잘 안 드시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평소에도 맛이 강한 음식보단 건강식을 좋아하셨고요. 그 영향으로 지금 저의 요리 스타일이 완성된 거겠죠? 어버이날 아침 식사라면 담백하면서 씹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걸 차려드려야죠. 먼저 12시간 불린 유기농 고대미로 만든 리조토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치킨 스톡이 아닌 채소 스톡을 써서 담백한 맛이 더 두드러지게 합니다. 아스파라긴산이 듬뿍 들어 있어 몸에 좋은 땅콩싹으로는 샐러드를 만들 거예요. 아보카도를 숟가락으로 떠서 올려 육류를 대신할 식물성 기름을 보충하고 마지막에 아보카도 오일을 슬쩍 두르면 됩니다. 양송이, 백만송이, 황금송이, 참송이, 포르토벨로 버섯을 윤기 날 정도로 살짝만 구운 것도 한 접시 더하고요.” 임도경(한남동 ‘봄봄’)

“여러 가지를 준비했지만,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식재료로, 섬세하고 독특하게 조리했습니다. 지금은 곁에 안 계시지만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 할까요? 제철 주꾸미와 두릅 무침, 참다랑어 아카미 회, 검은참깨두부, 제주도산 도미 구이, 연평도 암꽃게찜, 제철 바지락 된장국, 현미로 쑨 전복죽에 찜초밥까지….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한 요리에 일식의 기운을 조금 더했습니다. 차가운 것부터 드시고, 찜과 구이를 비우신 후 죽과 국으로 천천히 식사를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창 일식 요리를 배울 때쯤 돌아가셨으니 제가 해드리는 첫 번째 요리일 것 같네요. 하이고, 밥 먹으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한시외전> 속 고어의 마음이 저와 같습니다.” 임홍식(여의도동 63빌딩 ‘슈치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