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산책로 <2>

좋은 계절에 열세 명의 남자가 열세 갈래 길로 서울을 산책했다. 언제 어떻게 왜 그 길을 걷는지, 단정하게도 전했다. 산책은 도시와 개인이 맺는 호젓한 유대. 그들이 걸을 때, 서울은 어쩐지 멋진 도시가 된다.

01 유니 페어 국내 최초 구두 전문 편집매장. 최근에는 알든의 플레인 토 블러처가 새롭게 입고되었다. 02 세콘도 삐아또와 스페이스 M 란스미어 아웃렛과 스페이스 무이의 아웃렛이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03 313 아트 프로젝트 5월 24일까지 자비에 베이앙의 전시 ‘Bodies’ 가 열린다. 커다란 도산공원 입석 바로 뒤쪽으로 베이앙의 작품 ‘Cassandre’가 야외에 설치되었다.

도산공원, 리테일 테라피 어떤 사람은 그게 무슨 산책이냐 그러는데, 옷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적어도 2주에 한 번쯤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일이다. 이른바 ‘리테일 테라피’랄까? 일요일 오후 베키아&누보 도산공원점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다. 요즘은 아줌마들이 많아서 좀 시끄럽긴 하다. 그러고는 신세계 아웃렛 블러스부터 랄프 로렌, 산타마리아 노벨라, 릭 오웬스, 에르메스 아틀리에, 313 갤러리, 호림미술관, 슬로웨어, 란스미어 아웃렛 세콘도 삐아또, 무이 아웃렛 스페이스 M, 샌프란시스코 마켓, 유니페어까지 두루 본다. 피아프에서 초코렛 마카롱 하나, 혹은 저스트 스테이크에서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를 먹을 때도 있다. 마무리는 10 꼬르소 꼬모 카페에서 마시는 까바. 박승근(에버랜드 해외 상품 사업부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01 반포집 메뉴는 딱 두 개. 수제비와 오징어덮밥. 당연히 둘 다 시킨다. 02 반포 종합운동장 반포천을 끼고 걷다 보면 넓은 운동장이 보인다. 저녁이면 농구장이 꽉 들어찬다. 03 몽마르뜨 공원 가까이는 서래마을, 멀리는 사당까지 보인다. 누에다리에선 남산을 마주한다.

방배동 흙길을 따라 rm360엔 점원이 따로 없다. 360 사운즈의 디제이, 연주자, 프로듀서가 직접 나와 가게를 지킨다. 스물 몇 살 때처럼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모두 오래된 친구들. 이것저것 묻다 보면 신통한 답변이 쏟아지고, 갖고 싶은 레코드가 생기고 만다. 골목을 빠져나와 효령대군 묘 쪽으로 길을 건너면 서리풀공원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녹지는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길게 이어진다. 요즘 공원에는 나무 바닥이나 나무 계단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서리풀공원은 여전히 붉은 흙바닥이다. 비라도 잠깐 지나가면 진한 흙냄새가 5월의 아카시아 향과 섞인다. 몽마르트 공원 잔디광장엔 사시사철 인적이 드물어 좀 오래 머문다. 시간이 좀 넉넉하다면 누에다리를 건너 국립중앙도서관의 연속 간행물실에 들른다. 그리고 시원하게 뻗은 반포천을 따라 구반포의 자랑, 반포집으로 향한다. 정바울(리테일러)

 

 

01 궁동근린공원 평화롭게 걸을 수 있는 공원.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높이에서 서울을 바라볼 수 있다. 02 여러 중국음식점 이화원과 매화를 비롯해 많은 중국집들이 연희동과 연남동에 있다. 갈 때마다 새로운 중국집에 도전해보면 자기 취향에 맞는 단골집이 생긴다. 03 하하 군만두도 괜찮지만, 유림기도 푸짐하고 맛있다. 군만두 5천원, 유림기 1만2천원. 04 플레이스 막(Place MAK) 플레이스 막은 언제든지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공간이다. 4월 19일부터 김구림의 < 사라진 아름다움 >이 시작된다.

연희동 탐방 연희동엔 아무 때나 간다. 그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그러다 성산동이나 망원동까지 가기도 한다. 시작은 연희문학창작촌. 소설가니까 그러려니 하겠지만, 오히려 연희동에 문학창작촌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작가들이 창작촌에 지원하면 심사와 추첨을 통해 입주가 정해지는데 한 두 달씩 머무르며 작품을 완성한다. 사실 연희동은 상류층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그래서 낡은 골목, 골목 사이로 성대한 집이 조화롭게 모여 있어서 아무렇게나 다녀도 집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런 곳에 화교들이 이주해왔다. 1950~60년대에 주로 북창동에 모여 있던 화교들이 재산권을 제안 당하자 연희동과 연남동으로 이주해왔다. 덕분에 연희동은 꽤 재미있는 동네가 되었다. 맛있는 중국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이 그 증거일까. 문학창작촌에 머무르다 끼니를 이화원에서 해결한다. 아니면 이화원 사장의 동생이 하는 건너편 매화도 좋다. 중식을 ‘코스’로 먹고 싶으면 이화원이 괜찮다. 짬뽕이 먹고 싶으면 매화를 주로 가는데 동파육도 즐겨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연남동까지 내려와 동진시장 쪽으로 향한다. 그곳엔 여러 커피숍이 모여 있다. 어디든 마음에 드는데,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아서 오랫동안 글을 쓴다. 옹기종기 개성 넘치는 가게와 공방을 구경하고 갤러리에 들러 어떤 전시가 열렸는지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러다 다시 출출해지면 하하에 들러 군만두를 먹는다. 기름진 음식은 한번 먹으면 계속 먹고 싶으니까. 다시 배가 차면 연희동 쪽으로 페달을 밟는다. 104고지를 지나 궁동공원까지 오른다. 궁동공원에 도착할 때쯤엔 해는 이미 한참 지고 있다. 언제나 노을이 질 때의 서울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요즘 공원에선 남산타워가 좀 흐릿하게 보인다. 봄이 지나 여름이 되면 좀 더 선명하겠지. 성석제(소설가)

 

 

 

01 신성각 30년이 넘은 짜장면 집. 수타 짜장과 짬뽕, 탕수육이 다 맛있다. “지구촌의 어떤 사람이라도 단 한 그릇 먹어보고 눈물 흘려줄 음식”을 추구한다. 02 성 니콜라스 대성당 1968년, 한국정교회는 정동에서 아현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이때 지어진 비잔틴 양식의 웅장한 성당이다. 03 성우이용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이남열 씨가 운영한다. 30년된 빗을 쓰며, 손님은 하루에 10명만 받는다. 04 우주만물 레코드, 책, 사진, 수석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을 파는 가게. 5월 말 오픈 예정이다. 옷은 팔지 않는다. 05 백범기념관 아무런 장식 없이 지은 정갈한 건물. 선생이 말한 “강한 나라보다는 가장 진보된 문화국가”와 어울린다. 06 효창운동장 한국 최초로 건립된 국제 규격의 축구 경기장이다. 그라운드를 제외한 트랙과 관중석은 무료 개방한다.

우주만물부터 우주만물까지 집 앞도 아닌, 친구들처럼 문래나 홍대도 아닌 효창공원 앞에 작업실을 얻었다. 1층이고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뭘 보여주려는 건 아니었다. 효창동의 집들이 좋았고 밖에서 볼 때 이 작업실도 그중 하나였으면 했다. 5월부터 우주만물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열 예정이지만 변하는 건 없다. 이 동네를 정처 없이 돌아다닐 것이고, 우주만물로 돌아올 것이다. 정해놓은 산책 코스는 없다. 서울은 서울이라 몇 번을 지나쳐도 처음 보는 골목을 만난다. 갈림길 앞에서 길을 고르는 재미도 좋다. 그럼에도 우주만물 아래쪽 공터엔 자주 간다. 아파트 공사 현장만 보이는 공간이라서 그런가, 아늑한 곳인데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다. 사진 찍는 사람이 있다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빼고. 좀 더 내려가면 백범기념관이 나온다. 커다란 대리석 건물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괜찮다. 한참이나 앉아 있을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라서 앉아 있을 수 없다. 백범 김구 선생의 좌상이 있는 하얗고 커다란 방은 들어갈 때마다 압도당한다. 효창운동장에 가면 심심치 않게 열리는 어린이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주로 가장 먼저 보이는 선수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응원한다. 해질녘에는 오래돼서 여기저기 망가진 관중석을 한 바퀴 빙 돌면 좋다. 성우이용원은 동네를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사장님께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안 무너진 게 신기한 건물에, 이발소와 찹쌀순대 가게가 오랫동안 예쁘게 함께 있었던 것 같다. 벽도 창문도 지붕도 수직이 아니다. 효창동에는 오래된 음식점도 많다. 신성각, 용문해장국, 원조마포껍데기집, 맛있는 잔치국수가 추천할 만한 곳들이다. 청동색 돔이 수상하게 솟아 있어 찾아간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개종하고 싶게 만드는 공기를 띠고 있었다. 당분간 이사할 생각은 없으므로 좀 더 가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이윤호(사진가)

 

 

01 인왕산 정상 능선을 따라 오르기 때문에, 등산 내내 서울이 내려다 보인다. 먼지 없는날이면 가늠도 안 되는 곳까지 시계가 뻗는다. 02 부암동 인왕산에 올라갈 때도, 북악산에 올라갈 때도, 이곳이 시작점이 되곤 한다. 주말이면 도심의 한적함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03 자하손만두 2층 양옥집에 차린 20년 된 만두집. 철따라 참한 계절 메뉴도 낸다. 얼마 전 신세계백화점에 분점이 생겼다. 04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1976년에 문을 연 집. 원래는 십전대보탕, 녹각대보탕 등의 건강차가 주메뉴였는데 이제는 단팥죽 맛집으로 더 유명하다.

인왕산, 만두, 그리고 팥죽 최근에 부암동으로 이사한 친구네 집들이에 갔다가 갑자기 인왕산을 오르게 됐다. 등산화도 없이 오른 길이었는데 험한 산길이 아니라서 무리는 없었다. 매화를 봤는데, 새삼 매화가 참 좋았다. 그리고 꽃이 피는 순서가 엉켜버린 도심과는 달리, 산에서는 여전히 꽃이 피는 순서가 지켜지고 있었다. 내려올 땐 성곽을 따라 걸었다.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은 공원이나 동네 골목을 걷는 것과 참 달랐다. 산에서 내려와 허기도 달랠 겸, 부암동에서 호박고지를 넣은 시루떡을 먹었다. 뜨끈한 만두도 먹었다. 그러다 삼청동까지 가서 팥죽도 마저 먹었다. 정구호(디자이너)

 

 

 

01 을지로 도심 한복판에 이토록 극단적인 밀집 형태의 산업형 골목길이 있다니. 을지로 산책에는 어떤 정해진 방향이랄 게 없다. 02 충무로 인쇄골목 간판마다 적힌 단어들은 숫제 외국어처럼 낯설지만, 각종 기계들이 내는 정밀한 소리가 그곳을 걷는 걸음에 리듬을 더한다. 03 광장시장 빈대떡과 마약김밥 이전에, 광장시장은 수입 직물을 구할 수 있는 ‘패션’의 성지다. 지금도 패션 잡지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다.

온통 뒤섞인 듯, 하나씩 또렷한 을지로 사진, 타일, 밸브, 금속, 공구, 직물, 인쇄…. 대학 때부터 20년 넘게 다닌 골목들이다. 어떤 곳이 특별하다기보다, 그저 그렇게 뒤섞인 듯 하나하나 뚜렷한 게 매력이다. 수표교 쪽 골목에서는 저녁이면 하나둘 탁자를 내놓고 1천원짜리 노가리 안주에 시원한 생맥주를 마신다. 그 풍경은 5월쯤 되면 절정을 이룬다. 증권회사 부장님 과장님도 있고, 공구가게 사장님과 기사님도 있고, 나 같은 딴따라도 있다. 화장실에 가면 남자 소변기가 열 개씩 있다. 여기가 진짜 서울의 ‘펍’이구나 한다. 한낮이라면 그때그때 발길 닿는 대로 간다. 점점 쇠락해가는 골목문화를 생각해보건대, 과연 내년에도 이 길을 걸을 수 있을지…. 방산시장 거쳐서 광장시장에 가기도 하고, 광장시장 먼저 들렀다가 방산시장에 가기도, 느닷없이 광희동 러시아 골목을 걷기도 한다. 장민승(아티스트)

01 봉원사 한국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봉원사에서 열리는 영산재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전각을 볼 수 있다. 02 안산 서울 동쪽을 제외한 경치가 훤하다. 낮은 산세, 수많은 오솔길과 샘터가 인왕산이나 북한산보다 친근하다. 정상에는 외적의 침입을 알리던 봉수대가 있다. 03 선유도공원 신축이 능사가 아님을 증명하는, 서울시의 가장 성공적인 공원 조성 사례다. 기존의 정수 처리 시설을 그대로 이용해 자연 친화적인 공원을 완성했다. 04 이리카페 이리는 홍대 인근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소위 ‘이리 골목’부터 당인리발전소로 이어지는 사뿐한 길도 좋다. 05 절두산 순교 성지 김훈의 소설 < 흑산 >의 영감이 된 절벽이나 한국 교회 건축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순교박물관이나 박해 당시의 역사적 유물들을 통해 숭고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다.

봉원사에서 선유도공원까지 언젠가 친구들과 절 앞에 서 있는데 스님이 내게만 염주를 주고 간 적이 있다. 그 뒤부터 염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봉원사에서는 대웅전 말고 사람들이 오지 않는 법당으로 간다. 나만 받은 염주를 돌리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봉원사 뒤쪽은 안산이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등산로 말고 샛길이 많다. 사람들 피해 다니기 좋다. 며칠 전에는 나무를 찧고 있는 딱따구리과의 새를 마주쳤다. 꽤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가 그 모습을 한 시간 정도 지켜봤다. 집을 짓는 것까지 다 보고 싶었지만 딱따구리로서는 며칠이 걸리는 일이니까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안산을 배회하다가 홍대로 간다. 대부분은 아무 일이 없는데, 얼굴이 노란, 병색이 짙은 중년 남자를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만 있었다. 마음이 이끌려 따라갔다. 특이한 사람을 만나면 따라가곤 한다. 그가 집에 들어가는 걸 보면서, 얼굴이 노란 가족이 모여 그들만이 아는 언어로 대화하는 상상을 했다. 절두산 성지는 합정동에 살 때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지금도 종종 간다. 서울에 있는 공동묘지 중에 가장 예쁜 곳이 그 안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 묘지다. 나는 주로 밤에 갔고, 밤에 가야 좋다. 그곳에서 서성대면서 묘지에 묻힌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선교사 묘지 풀밭에는 키우던 물고기 두 마리가 묻혀 있다. 사료 주는 걸 깜빡하고 외국에 나갔다 왔더니 마른 멸치처럼 바싹 말라 죽어 있었다. 그걸 먹어야 마땅한가 했는데, 마음이 아파서 그러지 않았다. 갈 때마다 걔네들도 잘 있기를 바란다. 선유도공원은 아주 잘 조성된 공원이다. 독일인 친구가 그쪽에 산다. 한 번은 그의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을 나갔다가, 개들이 토끼를 쫓아 뛰면서 좋아하는 걸 봤다. 다섯 마리 정도의 토끼가 개든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고 풀을 뜯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태연하게, 흔히 있는 일이라는 듯이. 정영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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