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은 제발

예민하거나, 까다롭거나. 그래도 정말 침대에서 마주하기 싫은 순간이 있다.

어떤 날은 사정을 하지 못했다.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하루 종일 앉지 못한 통에 다리가 후들거린 밤이었다. 사정에 실패한 건 나의 쾌락에 관한 일이지만, 어쩐지 그럴 땐 상대에게 미안한 맘이 생긴다. 한 번 더 할까? 또 똑같을 수도 있을 테니, 내일 아침을 기약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아침엔 좀 더 씩씩하니까. 그러다 다시 벌떡 일어서게 된 건, 레코드를 바꿔 얹은 뒤였다. 내 레코드 더미에서 여자가 고른 노래였다. 라이브 음반을 들으며 섹스를 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 대부분 소리가 정갈하지 않으니까. 되레 그런 음반이 야외에서 섹스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내는 놀라운 효능이 있다는 건 그 날 밤 알았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잔디밭, 어쩌면 공연장 화장실. 두 번째 섹스는 다음 날 아침을 지울 만큼 길었다. 레코드 한 면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바늘이 공회전할 정도로 넉넉했다.

섹스를 할 땐 서로의 취향이 곧 섹스의 시청각적 배경이 된다. 어떤 침대 시트를 쓰는지, 어느 정도로 빛을 낮추는지, 무슨 음악을 고르는지. 그런데 그런 취향의 일부가 섹스를 거부하거나, 섹스에 집중할 수 없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라이브 음반이 신통한 발기 약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반면, 소리 때문에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도 온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텔레비전. 요즘 나온 한 ‘야동’의 이름은 <아빠! 어디가?>라고 한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영상 속 남녀가 섹스를 하는 동안 <아빠! 어디가?>를 틀어놓고 있어서다. “야동이 ‘국산’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서 찍은 사람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거야. 텔레비전 크게 틀고, 조간신문 등장시키고.” 그 분야에만큼은 전문가적 식견이 있는 한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지만, 어떤 이유로건 <아빠! 어디가?>를 틀어놓고 섹스를 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꼭 그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예능이 섹스에 썩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듯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 틀어놓은 예능이 활기찬 친구 같다면, 섹스를 할 땐 정반대다. 그 반갑던 친구가 웃고 박수치며 발가벗은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인상이랄까.

무슨 속옷을 고르는지, 몇 밀리미터 두께의 콘돔을 쓰는지는 분명 그날의 섹스를 좌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섹스가 예상되는 경우를 대비해 적절한 채널을 골라놓는 것 또한 중요한 준비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침대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곧바로 섹스에 이르는 확률은 꽤 높다. 누구의 집이 아닌 숙박업소에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무작정 끄는 것이 상책이라 말할 순 없다. 상대방이 신음소리가 밖으로 새는 걸 꺼려하거나, 삽입 중 불가피하고 불필요한 어떤 소리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경우 텔레비전은 쏠쏠한 도움을 줄 수 있으니.

다행히 이런 부분은 둘 중 한 명이 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채널 좀 돌렸다고 특별히 맘 상할 일도 없다. 설득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상대에게 지적하기 어려운 결함은 섹스를 더욱 망설이게 한다. 가장 보편적으로는 악취가 섹스를 방해하는 경우다. 집으로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날은 보통 외출 전 방향제를 뿌리거나, 창문을 활짝 열고 나간다. 제아무리 청소를 단단히 하고 쓰레기를 내다 버려도 해결이 안 될 때가 있으니까. 무엇보다 쌓인 체취는 쉽게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체취는 텔레비전 채널처럼 쉽게 바꿀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너 냄새나”라는 말을 할 바에야 차라리 그날 섹스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빡빡 씻으면 그만인가? 씻고 닦고 말리는 동안 화르르 불붙은 몸이 냉랭하게 식을 수도 있다. 청결한 비누 냄새는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점에서 안전하지만, 한편으로 은밀한 감각이 잘려나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한다. “맘 같아선 침대 옆으로 세면대를 옮기고 싶다니까. 딱 필요한 부분만 씻고 바로 하게.” 또 다른 친구는 모닝 섹스에 대한 열망이 언제나 굴뚝같지만, 도무지 아침에 키스부터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비위가 강한 사람’은 어쩌면 섹스를 할 때 꽤 유리한 지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이것저것 잘 먹는 사람을 보며 야한 생각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지 않나? “입 큰 여자가 좋다”는 말을 놓치지 않고 ‘색드립’으로 받아치던 신동엽의 농담은 이제 텔레비전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수위가 되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곤란한 경우.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해도 도저히 특별한 준비 없이는 하룻밤 새에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왁싱을 안 한 남자는 더 이상 못 만나겠다”거나, “발뒤꿈치에 각질이 뭉친 여자를 보면 도저히 성욕이 안 생긴다”는 페티시즘에 입각한 섬세한 취향에 관한 문제는 섹스를 더욱 멀어지게 한다. 그렇다고 그런 취향이 확고한 사람을 마냥 까다롭다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남자의 체모가 원활한 오랄 섹스를 방해한다거나, 정상위에선 여자의 다리를 높이 들어 발목을 잡고 지지해야 페니스가 깊숙히 들어간다는 식의, 나름의 근거가 확실하곤 하니까.

어쩌면 “있는 그대로 사랑해줬으면 좋겠어”라는 주장 혹은 변명이야말로 이기적인 말일지도 모른다. 옷을 벗거나 몸을 마주했을 때 정이든 욕정이든 뚝 떨어져 나간다면, 그걸로 관계를 그만두는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체모의 상태를 미리 일일이 확인하거나, 발뒤꿈치만 쳐다보고 다닐 수도 없는 일. 결국은 서로의 예민한 정도를 가늠해가며 상대를 찾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인 걸까? 예민할수록 자신의 단점은 더 잘 감출 테니,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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