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夏의 우성

서울에 여름이 온 날, 정우성은 한강에 있었다.

셔츠는 알레그리, 바지는 랑방, 벨트는 구찌, 로퍼는 보테가 베네타.
셔츠는 알레그리, 바지는 랑방, 벨트는 구찌, 로퍼는 보테가 베네타.
티셔츠는 마리야 by 10 꼬르소 꼬모.
청 재킷은 비비안웨스트우드, 티셔츠는 마리야 by 10 꼬르소 꼬모, 바지는 마우로그리포니, 샌들은 발리.
청 재킷은 비비안웨스트우드, 티셔츠는 마리야 by 10 꼬르소 꼬모, 바지는 마우로그리포니, 샌들은 발리.

오늘 꽤 덥다. 괜찮았다. 더 더울 거라 생각했는데.

일기예보에선 비가 온다고 했다. 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호우시절>를 다시 봤다. 어땠나?

처음 봤을 땐 허진호 감독 영화치곤 커트 수가 많아 낯설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까 주인공의 감정을 균형 있게 관찰한 영화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한 작품들 중 그 시대에 딱 맞는 건 하나도 없었다. <비트>를 좋아한 관객들도 주류를 이끌고 있던 대중이 아니었다. 상당히 앞선 작품이었고, 당시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였다. 난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편이다. <태양은 없다>나 <무사>도 그랬다. 미흡하지만 안 해본 걸 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큰 흥행을 하지 못해 아쉽다는 얘기를 듣지만, 1천만 명이 봤어도 지금 보면 후진 영화도 많다.

그런 의미에선 <빠담빠담>도 좀 아쉽지 않을까? 작품에 비해…. 어떻게 봤나?

정우성은 역시 하층계급을 연기할 때가 멋있는 것 같다. 하하. 불우한 십 대를 보내서인지, 낯설지 않다. 어려운 캐릭터를 바라볼 때 연민이 생기고, 감정도 자연스럽게 끄집어낼 수 있다.

반면 정우성의 이십 대는 누구보다 화려했다. 하지만 난 범상한 이십 대를 보냈다. 메마른 추억만 남았달까. 작품으로 대중에게 대리만족감을 줬을지는 몰라도, 난 늘 단조로웠다. 늘 더 외로워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항상 외로워야 한다고? 십 대 시절 외로움은 내게 친숙한 감정이어서 이십 대로도 이어진 것 같다. 삼십 대엔 좀 더 나은 사람으로 가는 과정이었고, 나다운 건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면 가장 익숙한 외로움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이젠 젊은 사람들에게 잔소리도 하는 마흔이 되었을까? 이십 대들은 시도를 겁내는 것 같다. 스태프들과 얘기해보면 실패할 걸 먼저 생각하고 걱정한다. 그건 완벽주의가 아니라 그냥 두려움이다. 청년정신이 상실되고 있다. 난 단 한 번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예전 작품을 지금 봐도 괜찮다. 하지만 그 작품을 선택할 때, 주변 사람들은 네가 그걸 굳이 왜 하느냐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새삼 당신의 이름이 흐릿했던 시기가 기억난다. 아마도 <중천>과 <데이지>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 사심이 끼면 안 된다. <중천>은 김성수 감독님의 조감독이었던 형이 입봉을 한다니까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도왔다. <데이지>는 제작을 내 매니지먼트사인 싸이더스HQ에서 했으니까, 결국 사심이 반영된 거다. 눈에 보이는 근거보다는, 사적인 감정으로 하면 결국 안일함이 생긴다. 두 작품 이후 글로벌 프로젝트와 감독 준비 때문에 한 5년 동안 한국영화를 등한시하다보니 꽤 멀어졌다. 그 이후 출연한 작품이 <호우시절>이었는데 사실 그것도 (허)진호 형과 한 번 꼭 하자는 약속으로부터 시작했다. 원래 단편을 장편으로 만드는 기획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전력투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티셔츠는 미스터 앤 미세스 by 1423, 바지는 미쏘니.
티셔츠는 미스터 앤 미세스 by 1423, 바지는 미쏘니.
셔츠는 지방시.
셔츠는 지방시.
셔츠는 알레그리, 바지는 랑방, 벨트는 구찌, 로퍼는 보테가 베네타, 비치 의자는 원웨이.
셔츠는 알레그리, 바지는 랑방, 벨트는 구찌, 로퍼는 보테가 베네타, 비치 의자는 원웨이.

<호우시절>에서 메이(고원원)와 동하(정우성)가 공항에서 재회하고 호텔에 들어간다. 둘이 사랑을 나누지만, 메이가 두려워하자 동하는 기다린다. 하필 그 장면에서 진짜 정우성이 보였다. 하하. 절대적으로 그 캐릭터에 동의했다. 실제로 연애할 때도 그렇다. 상대가 준비가 안 돼 있을 때 시도하면 실례니까.

연애할 때도 예의가 제일 중요한가? 예의는 언제나 중요하다. 불필요한 자존심 때문에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한두 번 보고 나이 많다고 ‘야자’하는 사람들은 정말 별로다. 나는 인격을 바탕으로 평등하게 대한다. 원래 좋은 건 따분하다. 다들 왜 좋은 역할만 하느냐고 묻는데, 좋은 게 진짜 좋은 거 아닐까? 좀 재미없어도, 나쁜 걸 멋지게 꾸밀 필요는 없다.

그럼 당신에게 진짜 멋진 건 뭘까? 당신만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 취향은 중요한데, 나는 모든 걸 다 좋아하는 사람이다. 차 욕심도 많지만….

이번에 당신이 연출한 영화 <킬러 앞에 노인>에선 구형 재규어 XJ가 중요한 소재다. 하지만 나를 규정짓는 건 싫다. 오디오도, 와인도 좋아하지만, 싸면 싼 대로 좋다. 뭐든 다 좋다. 술이든 차든.

지금까지 안 타본 차가 있나? 람보르기니? 페라리?

오늘은 레인지로버를 타고 왔다. 그 차 홍보대사다. 다른 차도 갖고 있다. 애스턴 마틴 라피드.

좋아하는 시계는? 롤렉스 데이토나도 있고, 여러 가지 시계가 있지만,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신분에 맞게 걸치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 당신 신분에 맞는 건 뭘까? 품위가 있어야 한다. 새벽에 열심히 청소하시는 분을 보면 순결해 보인다. 최선을 다하면 품위가 저절로 생긴다. 매일 오메가 시계를 아끼며 차는 건 멋이 있다. 품위가 있는 거다. 물론 여유로우면 브레게부터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행동이 품위를 만든다.

집에 혼자 있을 땐 주로 뭘 하나? 아무것도 안 한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집에서 혼자 한 말도 세상이 알아듣는다”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혼자 있을 때는 ‘오늘 뭐 했지?’ ‘오늘 누구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섭섭할까?’ 그런 생각뿐이다.

청 재킷은 비스빔 by 10 꼬르소 꼬모, 바지는 미쏘니, 신발은 돌체&가바나, 흰색 의자는 김정섭 작가 작품.
청 재킷은 비스빔 by 10 꼬르소 꼬모, 바지는 미쏘니, 신발은 돌체&가바나, 흰색 의자는 김정섭 작가 작품.

자주 듣는 노래는 있나? 다 좋아한다. 노래도 가리지 않고 듣는다. 하나만 꼽자면 예전에 자주 듣던 팝송이 있었다. 노 다웃의 노래를 여름부터 가을까지 들었나? 가장 좋아하는 건 가만히 주변 소리를 듣는 거다. 사실 난 갖고 싶은 게 정말 많다. 하지만 옷이 좋으면 뭐 하나. 집에 보관할 멋진 옷장이 없는데. 내 안의 옷장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럴 나이도 아직 아니고. 애스턴 마틴 갖고 있으면 뭐 하나? 만날 배터리 방전시켜서 점핑해서 시동 건다.

이렇게 다 좋은데 싫은 것도 있을까? 안일함. 소명의식 없이 사는 사람들.

요즘 그런 사람들이 뉴스에 참 많이 나온다. 유언비어와 관료주의, 직급에 연연한 사람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총대를 메는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시야가 넓은 사람도 없다. 대신 눈치만 본다. 게다가 누군가는 이렇게라도 문제가 대두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행? 이게 다행이라고? 이건 씁쓸한 거다. 진작 알고 지켰어야 하는데 기자는 기자랍시고 바쁘고,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한답시고 바빠서 이렇게 됐다. 그 바쁜 이유가 각자 영리만 추구하기 때문 아닌가? SNS나 댓글에 “나라에 어른이 없네요”라고 하지만, 우리가 외면하고,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반항 없는 시대일까? 누구에게나 반항심은 있는데 그걸 사회가 가로막고 있다. 사회가 건전하게 표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비뚤어진 화만 남았다. 그 탓에 무책임한 폭탄 발언이 온라인에 쏟아진다. 지금 대한민국 기성세대들이 반항을 용납하지 않고 사람들의 숨을 죽여놓았다. 불안한 시대정신 속에서 비뚤어지게 성장한 증거다.

최근에 한 가장 큰 일탈은 뭔가? 매일이 일탈이다. 감정을 즉흥적으로 둔다. 오늘 클럽에 가서 노는 건 계획된 놀이지 일탈이 아니다. 일탈은 사소한 감정이 매일 뿜어져 나오게 놔두는 거다. 하지만 계획적인 삶도 중요하다. 매일 운동을 하는 건 멋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야 할 소명의식이기 때문이다.

벚꽃 무늬 티셔츠는 돌체&가바나, 바지는 유밋 베넌 by 10 꼬르소 꼬모.
벚꽃 무늬 티셔츠는 돌체&가바나, 바지는 유밋 베넌 by 10 꼬르소 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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