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더 자세한 주원

2014.06.09GQ

주원에 대해 알려진 말은 9할이 칭찬이었다. 실패한 적 없는 배우이면서 요란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이렇게 마주 앉았을 때, 지금까지 몰랐던 어떤 얼굴이 갑자기 보이기도 했다.

검정색 수트는 돌체 앤 가바나, 검정색 반지는 뮈샤

검정색 수트는 돌체 앤 가바나, 검정색 반지는 뮈샤

 

파란색 수트는 산바토레 페라가모, 검정색 티셔츠는 앤 드월 미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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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럴 수 있나? 지금까지의 모든 인터뷰를 읽었다. A4 3백 장 정도 됐다. 어떤 기사 제목은 심지어 ‘주원, 이러니 복 받을 수밖에’였다. 그러고는 ‘반듯하고 성실하고 겸손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썼다. 하하. 다 그럴 거다. 아, 그런데 나만 그런가? 정말? 그러니까 그….

이 정도로 공통된 칭찬이 여럿이라면 그냥 사실이라 여겨도 좋을 것 같았다. 나를 꾸미거나 내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어찌 보면 애 같고, 달리 보면 순수한 생각들을 버리고 싶지도 않다. 끝까지 갖고 가고 싶다.

끊임없이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하필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뭘까? 인터뷰 할 때 대중에게 뭘 바라고 하진 않는다. ‘이 얘길 하면 대중이 좋아할까?’ 그런 생각 안 한다. 청자는 지금 마주 앉은 기자지, 그 이상을 보진 않는다. 그런 걸 바랐다면 조금이라도 꾸며졌겠지. 그런 건 똑똑해야 할 수 있다. 나는 못한다.

어떤 상을 정해놓고 그걸 향해 절제하면서, 스스로를 조각하듯 만들어가는 타입인가? 뭘 만들어 나가기보다 본래 모습을 지키고 싶다. 연예인으로 살았을 때의 어쩔 수 없는 노출, 한편으로는 가식도 부려야 되는 그런 걸 하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나도 편하고 보는 사람도 더 편할 거라 생각했다. 내가 꾸며지기 시작했을 때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도 없다.

2010년 <제빵왕 김탁구>부터 꾸준히, 성실하게 왔다. 최근 <굿 닥터>까지 결과가 나빴던 적이 없다. ‘주원 불패’라는 말도 있다. 이제 안정됐다고 느끼나? 이 모범생 같은 안정을 깨고 싶은 욕망은 없나? 그게 연기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다면 밤에 술도 마셔보고 클럽도 가보고 하는 식으로 깨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런 친구 많다. 예고 출신에 연기 전공한 내 친구들. “잘 놀아야 연기도 잘한다”는 말이 있다는 것도 안다. “야, 술도 마시고 여자도 만나봐야 돼” 그런다. 왜 굳이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꼭 그래야 된다고, 나를 막 깨고 암튼 뭐든 해봐야 된다고. 그런 생활을 했을 때 분명히 도움이 되긴 할 거다. 내가 모르는 걸 알게 되고 안 했던 걸 하게 되니까. 그런데 내 친구들을 보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냥 노는 것에 집착…. 하하. 쉴 때는 내가 좋아하고 편한 사람을 만나면서 좋아하는 걸 해야 된다. 쉴 때마저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내키지 않는 걸 하니까 이건 뭐 스트레스만 받는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오게 돼 있었다.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 한때는 하루에 소주 두 잔을….

꽃무늬 수트, 셔츠와 머플러는 모두 구찌.

꽃무늬 수트, 셔츠와 머플러는 모두 구찌.

한 잔 마시면 잠들지 않나? 취하긴 하나?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난다고 들었다. 일고여덟 시면 일어난다. 운동도 하고 TV도 본다. 정신력이 강하다는 소릴 많이 듣는데 술은 안 된다. 취해서 좀 흐트러지고 해야 되는데 난 그냥 잔다. 다음 날 머리도 아프고 목도 바싹 마르고. 아, 이건 할 짓이 아니구나…. 괴롭기만 했다.

당신은 좀 이상한 배우다. 패배한 적이 없으면서도 소위 ‘스타’라는 사람들의 요란함이 없었다. 얼굴도 그저 말갛고 순할 거라 생각했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범생 같은 이미지와 성격 때문인 걸까?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항상 선생님들처럼 되고 싶다고 얘기한다. 지긋한 나이가 돼서도 연기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그 분들은 해내고 있다. 그때 비로소 즐기면서 하고 싶다. 지금도 물론 즐기지만, 아직 경험도 연륜도 없으니까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게 많다. 선생님들은 대사를 그냥 일상의 언어로 툭툭 하시는데 그 안에 삶과 캐릭터가 다 있다. 굉장히 부럽다. 내가 지금 그런 것을 할 수는 없다. 하려고 든다면 그냥 과장된 연기일 거다. 내 주변에 차분한 분위기가 있다면, 내 꿈이 그쪽에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타와 배우? 물론 배우의 수명 같은 걸 따졌을 때 그 둘을 동시에 가지면 제일 좋을 거다. 하지만 ‘두 가지 중 뭘 고를래?’ 묻는다면 배우를 고를 거다. 나는 일상의 나와 연기하는 내가 다르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좋다.

그런 모습을 스스로 보는 게 좋나? 그렇다는 소리를 들을 때 좋았다. 대학 때는 평범한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냐’ 그런 생각이었다.

제일 곤란했던 캐릭터는 뭐였나? 변태 할아버지. 아리스토 파네스가 쓴 <리시스트라테>라는 작품이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 얘긴데, 남자들이 전쟁을 하면 여자들이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전쟁에 반대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곤란한 상황이다. 할머니한테 자꾸 들이대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저년 성격은 지랄 같애도 상큼하다” 그런 대사들. “주원이가 연기할 때는 진짜 다른 모습이구나.” 이런 말 들을 때 굉장히 좋았다.

배우한테 연극 무대는 고향 같은 거라는 얘기가 있다. 지금 당신은 뮤지컬 <고스트>만 하고 있다. 당신한테는 뮤지컬이 고향 같은 걸가? 데뷔를 뮤지컬로 했으니까. 처음 무대에 섰을 때와 연습에 어떻게 임했는지를 확실히 기억한다. 무대에선 그때의 마음이 다시 생길 것 같다. 초심이라면 초심, 열정이라면 열정인 마음. 그때 정말 열심히 했다. 스무살 첫 프로 무대였다. 대본을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여유도 없었다. 절박했다. 정말 즐거웠다. 이번에 <고스트>도 진짜 열심히 했다. 잘하고 싶어서 정말 노력했다. 그때의 모습이 다시 나왔다. 승부욕도.

쉴 새 없이 달려온 와중에 <고스트> 무대가 당신한테 준 것과 가져간 것은 뭘까? 가져간 것? 진짜 솔직히 말하면 인지도. 하하. 아무래도 방송보다는 노출이 안 되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배우로서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하면서 무대에도 서는 사람이라는 데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큰 것 같다. 무대를 택한다는 것은 지키고 싶은 뭔가 있는 거다. 내가 더 멋있는 배우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뮤지컬 무대에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에너지의 강도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주고받는 에너지는 어떻게 다른가? 최정원, 아이비는 굉장한 에너지를 가진 배우 아닌가? 무대라는 공간 때문에 더 커지는 것 같다. 배우는 무대에서 기를 계속 뽑는다. 관객들은 그걸 흡수한다. 관객 수에 비례하는 기를 계속 뽑는 거다. 가장 중요한 건 소리든 몸짓이든 그걸 전달하는 것이다. 힘도 기도 많이 쓰게 된다. 가끔은 무대만 덩그러니 빠지는 느낌, 객석 쪽이 아예 없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무대가 실제 공간처럼 느껴지는 거다.

캐릭터에 테두리를 정확히 그어놓아야 그 안에서 놀 수 있는 배우인가? 프로파일러 역할을 하려고 관련 서적 30권을 먼저 사서 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알 수 있는 건 최대한 알아야 되고, 그래야 내 생각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 캐릭터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줄줄줄 풀어놓을 수 있을 정도가 돼야 자신감이 생긴다. 내가 맡은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다른 사람 말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을 거다.

순탄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런 느낌이 소파인 것처럼 딱 앉아버리는 사람이 있고 그 느낌 자체를 경계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둘 다 아닌 것 같다. 일단 경계는 안 한다. 받아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좀 다르게 이해하고 싶다. 지금은 순탄하지만 언젠가 꺾일 때도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 연기든 뭐든 굴곡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순탄한 편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고민과 역경이 있었다. 남들은 잘 모른다. 앞으로도 당연히 있을 거다. 지금처럼 주연을 하다가 아버지 역할을 할 때. 당연한 거지만 그것 또한 굴곡일 수 있다.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이 당신한테 ‘굉장한 전략가’라고 말했다. 여자는 뱃살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다 나온 얘기였지만 농담 같지 않았다. 당신은 독하게 스스로를 통제하는 사람 같다. 어떻게 표현하면 독한 거고 다르게 표현하면 바라는 게 강한 거다. 하나는 확실하다. 이쁨 받길 원한다. 누구나 날 좋아했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이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싶으면 그 사람한테 물어본다. “절 왜 싫어하세요? 왜… 어떤 것 때문에 그러세요?”

상대는 뭐라고 하나? 대부분은 그냥 나한테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싸우면 이기는 편 아닌가? 결국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는 식으로. 싸움을 거의 안 만든다. 그래도 싸우면 이겼었나? 하여튼 좋게 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긴 한다.

언제가 제일 편한가? 일을 하고 하지 않고의 차이는 별로 없다. 일할 때도 즐거우니까. 한동안은 ‘특별한 거 뭐 없나?’ 이런 걸 고민했다. 결론은 그냥 친구랑 낮에 가로수길 카페에 앉아서 커피 마시고…. 그게 좋다는 걸 알았다. 겨울에 시작한 촬영이 봄까지 넘어가면 ‘와, 봄이다’ 그러면서 또 기분이 좋다.

당신은 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 늦기 전에 다른 세계를 보고 싶지 않나? 사막, 백야 같은 것들. 놀러간 적은 없다. 근데 여행을 하든 뭘 하든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이 크다. 가족, 친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 열심히 일 하면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진 않는다. 배우는 것, 얻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더 크다.

스스로 성취해냈다는? 선생님들이나 동기들이 “넌 이렇게 될 만 한 이유가 있어”라고 말해줄 때 정말 고맙다. 내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그들이 다 아니까. 1년 365일 학교 가서 선배 도와주고, 연기 연습했던 걸 그들은 아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쟤가 어떻게 저렇게 된 거야?”가 아니라 “주원이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라고 말해줄 때. 나는 지금 내 생활에 불만이 없다.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나중에 결혼해서 그 사람하고 여행하고 싶다. 그때는 지금처럼 작품을 많이 할 순 없을 거다. 지금 내가 일궈놓은 것들을 기반 삼아 좀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도 가고 싶다.

물욕이 없나? 세속적으로 욕망하는 것들. 어렸을 때부터 무조건 집이었다. 정원도 있고, 그 옆에는 부모님이 살고 그 옆에는 우리 형 가족이 살고. 그런 주택 단지 같은 것. 가족들이 있을 때 모여서 밥 먹고, 바비큐 파티 같은 것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똑바른 걸까, 이 젊은이는? 하하, 글쎄…. 굉장한 전략가라서?

흰색 수트는 김서룡 옴므.

흰색 수트는 김서룡 옴므.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유영규
    스탭
    어시스턴트 / 이채원, 스타일리스트 / 김민정, 헤어 / 영희(컬처 앤 네이처), 메이크업 / 파니(컬처 앤 네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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