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서시오

당장 계약해도 기다려야 살 수 있는 차가 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다. 대개는 인기의 방증이다.

돈이 있어도 당장 살 수 없는 차가 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금 쌍용 코란도 C를 사려면 한 달 반은 기다려야 한다. 쌍용차는 코란도 C를 내수용으로 월 1천7백여 대씩 생산 중이다. 그런데 수요가 2천5백여 대에 달한다. 코란도 스포츠 역시 지금 계약해도 한 달 후에나 받을 수 있다. “계약에서부터 출고까지 3주 정도가 걸립니다. 그런데 현재 코란도는 미리 만들어놓을 여유도 없이 팔려 수요를 못 맞추고 있어요. 내수뿐 아니라 수출 물량까지 소화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2교대로 바꾸기엔 또 수요가 부족해 주중 잔업과 주말 특근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쌍용차 홍보팀 차기웅 차장의 설명이다.

신차 출시 직후 수요가 몰리면서 대기 기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현대 LF쏘나타의 경우 현재 한 달 반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경쟁 모델이 마땅치 않은 차종도 수요가 공급을 꾸준히 앞선다. 현대 포터(4개월), 기아 모하비(2개월)와 봉고(2개월)가 대표적이다. 현대 제네시스의 경우 사륜구동 모델의 인기가 급증하면서 대기 기간이 3개월까지 늘어난 상태다.

수입차 시장에선 더 흔한 얘기다. 아우디 A3 세단은 한 달 대기가 기본, 흰색은 두 달이다. 아우디코리아는 올해 A3 세단 판매를 1천 대로 예상했다. 그런데 3월까지 3백30여 대가 팔렸다. Q5도 두 달이다. 기다리다 지쳐 한 체급 작은 Q3을 사기도 한다. 지난해 Q3은 안 팔려서 특별 옵션을 붙인 한정판까지 내놨다. 올해는 재고가 바닥났다.

수입차의 수요와 공급에 유독 엇박자가 잦은 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국내에서 갑가지 예상을 웃도는 수요가 생겼을 때 본사에서 빠르게 대처하기 어렵다. 정교하게 짠 생산 계획에 따라 전 세계 시장에 차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수출할 물량을 무턱대고 한국으로 보낼 수도 없다. 국내 법규에 맞춰 만든 차여야 하기 때문이다. 아우디코리아 상품기획팀 공현상 부장은 “범퍼 속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국내 규정에 맞춰 만든 차를 들여온다.

동시에 여러 나라에서 공급을 요청했을 때 아우디 본사는 기여 가격(소비자 판매 가격과 공장 출고 가격의 차액)이 높은 나라에 우선권을 주는 경향이 있다. A3 세단의 경우 한국은 기여 가격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한 곳”이라고 말했다.

르노의 스페인 공장에서 전량 수입하는 르노삼성 QM3도 비슷한 경우다. 올해 목표는 2만 대였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출시 이후 계약이 1만 8천 건을 넘어 대기 기간이 5개월에 달한다. 르노삼성 홍보팀 김종혁 매니저는 “QM3의 공급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유럽 내 수요가 많아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라고 밝혔다.

핵심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경우도 어려움을 겪는다. 말리부 디젤이 대표적이다. 엔진을 독일의 오펠 공장에서 가져온다. 한국지엠은 말리부 판매 가운데 디젤 비중을 20~30퍼센트로 내다봤다. 그러나 현재 판매의 절반이 디젤이다. 유럽에서 같은 엔진을 얹어 파는 오펠 아스트라와 인시그니아의 인기가 높아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렉서스 ES300h도 부품 공급의 영향을 받는 경우다. 현재 한 달 정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ES300h의 인기가 예상을 웃도는 데다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한 탓이다. 렉서스의 기함인 LS600hL 역시 한 달 대기가 기본. 이유는 좀 다르다. 한국토요타자동차 홍보팀의 김성환 차장은 “전량 주문 제작 방식으로 출고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류 방식도 공급에 영향을 미친다. 수입차는 대개 선박으로 수입된다. 그만큼 운송시간이 길다. 이 과정에서 변수가 생기기도 한다. 지난 2월, 국내 렉서스 판매는 2백72대로 1월보다 23.6퍼센트 줄었다. 그런데 3월엔 5백93대로 판매가 껑충 뛰었다. 2월 말 한국 도착 예정이던 배가 안개와 미세먼지 때문에 공해 상에서 발이 묶여 3월 초 입항했기 때문이다.

차를 선적한 선박이 들어오는 횟수는 수입차 업체마다 다르다. 자주 들어올수록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좋다. 지난달 25일 출시된 시트로엥 C4 피카소는 지금 계약해도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 공식 수입원 한불모터스의 한승조 팀장은 “대기수요를 최대한 빨리 줄이기 위해 5월엔 배가 두 차례씩 들어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객 특성상 수요 예측이 어려워 대기 기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당장 계약해도 인도까지 7개월 이상 걸린다. 랜드로버코리아의 조주현 마케팅 이사는 “맞춤 주문이 많아 미리 만들기 어렵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었다. 지난해 랜드로버 판매는 34만 8천3백83대로 전년보다 15퍼센트 늘었다”고 말한다.

수입차 업계는 수요와 공급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공급 적체와 재고 어느 쪽이든 손해인 까닭이다. 수입차 업체는 연간 판매 계획을 세워 본사에 보낸다. 여기엔 딜러의 의견, 전년도 동급 시장의 판매 내역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된다. 그러면 본사 해외영업팀이 자체적으로 예측한 각 시장별 수요를 반영해 공급량을 결정한다.

물론 이 계획은 유동적이다. 수입차 업체가 판매 현황에 맞춰 수정한 수치를 꾸준히 본사로 보내기 때문이다. 소단위로 판매 계획을 다시 반영하는 기간은 브랜드마다 다르다. 일본처럼 운송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곳에 공장이 있을 경우 3개월, 미국이나 유럽에서 차를 보내는 경우 6개월 단위로 계획을 수정한다. 본사가 수입원에게 “더 많은 물량을 받으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연간 3만 대 규모로 생산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 차인데 시장별로 취합한 판매 계획이 여기에 미치지 못했을 때다. 세대교체를 앞두고 판매가 서서히 떨어지는 차종을 놓고 본사가 수입원을 압박하는 사례도 있다. 이럴 경우 수입원은 프로모션을 걸어 무리한 판매 계획을 짜기도 한다.

인기 차종을 기다릴 땐 보통 계약금을 건다. 대기하다가 마음이 바뀌어 계약을 포기할 경우에는 계약금을 100퍼센트 돌려받을 수 있다. 그래서 영업사원들은 특이한 옵션의 계약을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계약이 어긋났을 때 새 주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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