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양에게 – 1

태양이 새 앨범 <RISE>를 냈다. 타이틀곡 ‘눈, 코, 입’은 국내 음원 차트에서 오래오래 1위를 지키는 것은 물론, 해외 아이튠스 차트에서도 성적이 좋다. 일본에서는 곧 여러 도시를 도는 투어 콘서트가 이어진다. 솔로 활동으로 그 어느 때보다 성공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일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태양은 이렇게 말했다. “할 말이 별로 없어요. 될 수 있으면 이번엔 인터뷰도 안 하고 싶었어요.”

앨범이 온라인에 풀리던 새벽에 문자 나눈 거 기억해요? 네, 이렇게 했냐고, 축하한다고.

그 문자에 답한 건요? (웃음) 이렇게 한 게 아니라, 이렇게 됐다고 했죠, 제가.

거기부터 시작해볼까요? (지난 앨범인) 를 내고 나서, 다음 앨범을 어떻게 낼지, 딱히 생각조차 안 했어요. 그냥 여행을 많이 다녔죠. 앨범이라면 그저 내 멋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당시 제가 빠져 있던 음악이 굉장히 어둡고 차가운 언더그라운드 쪽 알앤비였는데, 그런 걸 하려다 회사랑 좀 부딪혔죠.

부딪힐 거라는 생각,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번 앨범은 완전히 내 멋대로 해도 되겠지? 그랬어요. 나한테까지 뭐….

YG가 태양 솔로 앨범까지 어떤 상업적인 기대를 하진 않을 것이다?
맞아요. 이전까지도 그렇게 해온 면이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제가 너무 멀리 갔나 봐요.

언더그라운드 쪽 알앤비 음악이라면 더 위크엔드 같은 걸 말하는 거겠죠? 지금은 또 그런 음악의 자리가 달라졌지만요. 맞아요. 그땐 정말 새롭게 들었고, 그게 제 방향이라고 느꼈어요. 사실 5년 전쯤부터 제가 줄곧 해오던 알앤비 음악이 좀 모호해졌거든요. 미디엄 템포에 멜로디로 풀어내는 노래들은 이미 정점을 찍은 것 같았어요. 당장 저부터도 시들해졌으니까요. 그런 마당에 이 새로운 음악을 얼른 한국에서 내가 먼저 내자고 생각했죠(웃음).

말하자면 프랭크 오션의 [Channel Orange]보다 먼저 내고 싶었던 거네요. 네, 맞아요(웃음).

근데 회사는, 그러니까 양현석 대표의 생각은 좀 달랐고요. 회사는 제 노래가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쪽으로 가길 바란 거죠. 처음엔 납득이 안 됐지만, 이렇게 고집을 부리다간 아예 앨범이 못 나올 거라는 자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했던 생각이, 시간이 흐를수록 내 고집이나 성향은 점점 진해질 텐데, 하기 싫은 걸 점점 더 하기 싫어할 텐데,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을 때 해보자, 그렇게 내려놓게 됐어요. 앨범을 만드는 방식을 바꾼 거죠. 한 곡 한 곡 정말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들어가며 만든 것 같아요.

하필 YG는 여타 회사들보다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고 분방하게 뭔가를 표현한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말이죠. (웃음) 오해를 좀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밖에서 보는 것과는 차이가 나겠죠. 어찌됐든 이곳 또한 메이저 음악을 다루는 곳이고, 대중을 상대로 하니까요. 비유하자면, 갬블을 하는데 정작 어떤 수를 보고 배팅을 하는 건 제가 아니라는 거죠. 수를 만드는 건 저지만, 그 수를 보고, 될 것 같다거나 안 될 것 같다거나 배팅을 하는 건 회사죠. 규모가 커지면서 음악적인 색깔도 다양해졌고요. 가끔은 악동뮤지션 같은 팀이 회사에 있다는 게 피부로 안 느껴질 때도 있어요. 어쨌든 앨범이 이렇게 나오고 난 지금 드는 생각은, 이게 지금 나에게 맞는, 어울리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제 만족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하기 싫은 걸 한 건 없어요. 어떻게 들으셨어요?

음악이 대체로 그렇다지만, 들을수록 좋은 부분이 들리는 앨범이에요. 김연아 선수의 경기 장면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전혀 모르던 동작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것과 비슷해요. 곳곳에 뭔가를 감춰둔 건 아니겠지만, 공들여 만들었구나, 그냥 지나친 부분이 없구나, 이 발음은 뭐지? 가사에 어떻게 이 단어를 썼지? 그런 생각이 들죠. 그런 말을 들으니, 제가 애써 표현하려고 했던 것들이 그래도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티셔츠는 발망.
티셔츠는 발망.

나온 후로 앨범을 들어봤어요? 냉정한 마음으로 듣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때 다시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올지 모르겠네요.

냉정해지지 않은 채로도 얘기는 할 수 있잖아요. 아직까지는 뭐랄까, 우선은 이 앨범을 그냥 놓아두고 싶어요. 그저 들으신 분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요. 할 말이 별로 없어요. 될 수 있으면 이번엔 인터뷰도 안 하고 싶었어요.

저런…. 그럼 원래 하고 싶었다는 그 음악을 따로 공개하는 방법도 있잖아요? 사실 그런 생각도 하긴 했는데, 그렇게 하는 건 정말 최후의 방법이잖아요. 나 혼자 이렇게라도 낼 거야, 하는 식은 결국 제가 원하지 않을 것 같아요. 설득하는 과정이든 인정받는 과정이든 그걸 거친 후에 정식 앨범의 형태로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까지 솔로로 발표한 곡 중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지금 이 인터뷰는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걸까요? 그러게요(웃음). 그래서 말을 많이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다 말하고 있네요(웃음).

제일 먼저 만든 노래는 뭐예요? ‘Intro(Rise)’예요. 처음 만들었을 때, 정말 이거라고 생각했어요. 듣자마자 트랙 구성이나 음반 패키지까지 다 떠올랐어요.

인상적으로 들었어요. 소리가 세련되기도 했지만, 꿈에 부풀어 있달까, 품고 달려가는 공간감도 좋았어요. 가사에 나오는 “풋 유어 핸즈 인 디 에어”라는 말은 그야말로 여행의 감각이고요. 근데 인트로가 끝나면 곧장 ‘눈, 코, 입’과 ‘새벽 한 시’가 나와요. 여행은 갑자기 사라지고, 지금 여기 합정동 어디쯤으로 장소가 바뀌죠. 맞아요. 이 앨범엔 그렇게 꿈과 현실이 공존하고 있어요(웃음).

‘눈, 코, 입’ 가사를 테디와 둘이 썼죠? 앨범이 계속 엎어지고 지연되면서, 테디 형과 많은 얘기를 했어요. 우리의 결론은 “쟤 정말 노래 잘한다”는 노래를 만들자, 였어요. 그래, 사랑 노래를 하자, 지난 4년 동안 사랑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고, 그러면서 제 노트에 끄적였던 것들이 이 노래가 됐어요. 그냥 제 얘기예요.

첫 무대였던 <인기가요>에서 이 노래를 정말 잘 불렀죠. 그래요?

몰랐어요? 아무래도 이제까지는 퍼포먼스를 내세우다 보니, 태양의 목소리나 가창에 관해선 찾아 듣는 사람들끼리 즐기는 부분이기 쉬웠어요. 근데 이 노래는 하다못해 코러스와 주고받을 것도 없이 통째로 다 부르잖아요. 네, 이번에는 그래야 돼요. 사실 저는 퍼포먼스를 할 때 노래를 막 잘 불러야 한다는 식의 강박은 없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또 “쟤는 노래를 뭐 저렇게 대충대충 해” 괜한 노이즈가 생기니까 신경을 쓰긴 쓰죠. 그래서 이번엔, “오케이, 그럼 내가 노래만 한번 잘해볼 테니까 어떤가 한번 봐라” 그런 생각이 있었죠(웃음).

공들여 부른다는 걸 느꼈어요. 오디션 심사위원처럼 따박따박 설명할 순 없을지라도, 결국 그건 느껴지는 거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죠. 실연한 남자가 노래하는데, 지금 저 수많은 귀고리는 뭐고, 저 모자 각도는 뭘까? 저렇게 멋부리다가 차였다는 얘긴가? 하하, 근데 그게 경험해보니까, 정말 헤어지고 났을 때 유난히 가꾸게 되던데요? 사이가 좋을 때는 오히려 ‘칠렐레팔렐레’ 하고 다니는데, 헤어지고 나면 가꿔요. 정말 되게 가꿔요. 그게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자기가 무너지는 걸 못 봐주겠어서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럼 파리 패션쇼에 공작새처럼 멋을 부리고 갔던 때가… (웃음) 파리 패션쇼 얘길 하자면, 사실 쇼를 보는 건 정말 재밌어요. 하지만 제가 거길 갈 때 그저 사진 찍히려는 연예인처럼 보이는 건 내내 불편했어요. 초대 받은 쇼에 그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정성을 다한 차림으로 가는 건 어떤 예의 같은 건데…. 사실 처음엔 도피하는 식으로 갔던 것도 있어요. 앨범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맨날 제자리,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타이밍에 가서 기분 전환을 한 것도 있죠. 근데 두 번째 가고 나서 알았어요. 이게 뭔지 알겠다, 앞으로는 아마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드실 거예요.

‘눈, 코, 입’과 ‘새벽 한 시’는 이어지죠. 근데 왜 한 시예요? 사실 제가 생활하는 기준으로 하자면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쯤 될 텐데.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한 시가 맞지 않을까 했어요. 평소보다 좀 늦게 집에 도착하는 시간, 어차피 막차 시간이라는 게 있잖아요. 술에 취했으면 취한 대로, 조금 깼다면 깬 대로 집에 들어가는 시간.

과연 가사란 그런 거겠죠. 진짜 경험과 생각으로부터 썼으니 마음에 닿는 거겠고요. 그렇게 두 개의 사랑 노래가 앨범의 시작이죠. 두 곡을 처음에 배치한 건 그저 타이틀곡이기 때문인가요? 그렇죠. 아무래도 트랙 순서가 음원 판매에 역할을 하니까요. 원래 제 아이디어는 ‘Intro’ 다음에 바로 ‘Love You to Death’를 붙이는 거였는데, 앨범에 겨우겨우 들어간 노래를 처음에 넣자고 하는 건…. 결국엔 ‘Intro’ 와 ‘Love You to Death’, 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음악과 가까운 두 곡이 앨범의 처음과 끝에 자리 잡게 됐죠.

두 노래가 끝나면, ‘Stay With Me’ ‘아름다워(Body)’ ‘링가 링가’ 세 곡이 이어지죠. 템포가 빠르고, 클럽 느낌이 나는 게 두드러지는 대목이죠. 우선 ‘Stay With Me’는 이제까지 지드래곤과 했던 작업 중에 가장 잘 빠진 노래라고 생각해요. 둘 다 잘 나온 사진이랄까.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노래가 어떻게 시작됐냐면, 원래 만들려던 앨범엔 피처링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실은 그것도 회사에서 볼 땐 뭔가 지적사항이었어요(웃음). 생각해보다가 ‘버리고’라는 노래를 조용필 선배님과 함께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추진했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성사되진 못했어요. 선배님께 찾아가서 들려드렸더니 음악은 좋다고 하셨는데 노래를 하는 건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다고 하셨죠. 그분이 뭐 하나 허투루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그 거절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어요. 저 역시 그런 일을 급하게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요. 어쨌든, 피처링을 해야 한다면 스튜디오에서나 어디서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권)지용이예요. 지용이는 참 능숙하잖아요. 가장 가까운 친구지만, 쟤는 어떻게 저렇게 능숙하게 다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식대로 잘 풀어내는 걸까, 새삼 지용이 모습을 보면서 영향을 받죠.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면서도 자기 색깔을 내잖아요. 지용이와는 진짜 속 얘기를 해요. 제가 작곡가 형들한테 투정을 부릴 수는 없잖아요. 뭔가 안 풀릴 때도 아티스트인 제가 다시 잘해보자고 위로를 건네야 하는 입장이 되잖아요. 그럴 때 지용이한텐 정말 제 나이에 맞는 방식으로 얘기를 하죠. 막 치밀어 오르는 대로 말하면, 지용이도 그걸 받아줘요. 여자 얘기, 연애 상담도 많이 하고요. ‘Stay With Me’는 전체 앨범 진행으로 보면 아주 나중에 나온 노래예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근데 작년에 먼저 공개된 ‘링가 링가’는 좀 달라요. “여자들은 내 몸매에 울어” 같은 가사를 태양이 직접 하니까, 미안한데 좀 민망해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 스타일이며 안무며 퍼포먼스는 여태까지 한 것 중에 가장 강렬한 걸 보여줬죠.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가사 부분은 제가 공감하는 단어들이나 내용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노래는 어떤 타이밍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타이밍상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막 파리 패션쇼 가고 이러다가(웃음), 한껏 멋을 부린 클럽 튠 같은 걸 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봤어요. 가사는 저와 좀 다른 느낌이 있지만, 그 노래를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것만큼은 자신 있게 했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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