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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2014.07.03유지성

에로 영화는 죽지 않는다. 다만 변할 뿐이다.

“한번 해보고 싶다는 환상이 있잖아요? 촬영장에 가보면 와장창 다 깨져요.” A는 남자 에로 배우였다. “최하 하루 여섯 편을 찍어요.” 그렇다고 A가 에로 영화 제작 시스템 자체에 진절머리가 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직 업계에 남아 있다. 업계에선 이제 에로 영화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성인영화라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 성인영화는 더 이상 비디오 가게에 없다. 케이블 TV 채널, VOD 서비스, 성인 콘텐츠 전문 웹사이트에 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많다. 비디오테이프라는 규격이 없으니, 영상의 종류도 제각각이다. 웹사이트에선 짧고 즉각적인 영상이, 케이블 TV와 VOD 서비스에선 다소 전통적인 성인 영화가 소비된다. 하루에 여섯 편, 일곱 편을 찍으면 그 중 몇 편은 TV로, 몇 편은 웹사이트로 향하는 식이다.

촬영은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된다. 새벽 여섯 시에 모여, 자정까지 촬영이 진행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배우들은 일당을 받는다. 남자는 30만원, 여자는 85만원. “아침에 모이면 일단 섹스 신을 찍어요. 자세 당 10분, 15분씩 촬영하니까 나중엔 거의 운동이죠. 애무 신이 길어지면 나중엔 침이 안 나와요.” 학창 시절 1교시 체육시간, 군대에서의 아침 구보가 썩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진 않다. 모닝섹스라면 환영이지만, 모닝섹스는 삽입까지의 빠른 전개가 핵심이다. 성인영화 현장에서 삽입을 기대하긴 어려운 법. 하지만 제작자 입장에선 힘이 남아 있을 때 찍어야 역동적인 장면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A는 촬영장에서 흥분할 겨를 같은 건 없다고 했다. “그래도 여자 배우들은 나아요. 현장에서는 여자 배우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촬영을 진행하거든요. 스타가 된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죠.” 그래서 업계엔 항상 남자 배우가 부족하다.

대본은 간단하다. 주로 감독이 작가 역할도 같이 해낸다. 반면 모든 동작은 감독의 연출에 따른다. 어디를 먼저 애무할지, 어떤 체위에서 어떤 체위로 넘어갈지는 이미 카메라가 돌아가기 전 낱낱이 정해져 있다. 배우가 능숙하지 않으면 10분, 15분의 운동은 30분, 40분으로 길어진다. “한 페티시 웹사이트용 영상 촬영에선 대본에 그냥 ‘개’라고 적혀 있었어요. 대사는 당연히 없었죠. 지문만 딱. ‘개처럼 따라간다’.” 그런 특별한 취향의 남자를 위한 영상일지라도 시작부터 끝까지 섹스만 주야장천 나오진 않는다. 즉, 배우에게 필요한 것은 기묘한 체위나 성감대를 잘 찾는 유의 섹스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감독의 일에 가깝다. 오히려 ‘애드리브’에 강한 작가형 배우가 현장에선 더욱 환영받을 수 있다. 특히 여자 배우에 비해 이야기를 이끄는 역할을 맡을 확률이 높은 남자 배우라면.

물론 성인영화의 성패는 여자 배우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다. 진도희, 하유선 같은 몇몇 이름은 아직도 많은 남자가 기억할 만큼 파괴력이 있었다. 실장, 매니저라 불리는 성인영화 종사자는 업계의 얼굴이 될 만한 여자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를 쓴다. “일반인 비공개 촬영이란 콘셉트가 있어요. 얼굴이 안 나오는 촬영이죠. 그런 것부터 설득해요. ‘요즘 누가 성인영화를 보냐. 어차피 출연해도 아무도 모른다’고 말할 때도 많고요. 장점만 부각시키는 거죠. 실제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해요.” A는 배우로 활동하며 여자 배우를 섭외하기도 했다.

국내 성인영화에선 삽입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웹사이트든, 케이블 TV든, VOD든 마찬가지다. 잘 알려져 있듯 ‘공사’라 불리는 작업을 남녀 공히 마치고 촬영에 들어간다. 페니스를 발기시킨 후 테이프를 배꼽 쪽에 붙이는 걸까? 그렇다면 여자는 세로로 붙이나? ‘공사’의 개념이야 상영관용 영화의 ‘베드신’에도 해당되는 사항이라 익숙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여배우의 사생활만큼이나 오리무중이었다. A의 설명에 따르자면, 흔히 상상할 수 있는 ‘테이프 공사’는 2000년대 초반쯤까지의 방식이다. 요즘엔 남자는 페니스에 스타킹을 씌워 고무줄로 봉하고, 여자는 근육 테이프 안에 부드러운 뭔가를 잘라 붙이는 정도다. 즉, 페니스가 배꼽이든 허벅지든 몸에 밀착되어 있지 않아, 삽입 신에선 덜렁덜렁한 채로든 빳빳한 상태로든 계속 여자의 성기와 접촉하게 된다. 그것은 영상이 최대한 실제 섹스에 가깝게 보이게 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페니스가 배꼽에 달라붙어 있는데, 삽입 자세가 진짜 같을 수는 없다. 물론 카메라는 성기를 비추지 않는다.

오럴 섹스 장면에선 ‘공사 중’인 페니스 대신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화면엔 나오지 않지만 페니스를 잡은 손의 모양, 오럴 섹스 중의 소리 등을 더 살리기 위해서다. “장난 같지만 진짜 소시지를 쓰기도 해요. 큰 프랑스 소시지. 아니면 딜도를 벨트에 매달아 허리에 찬다거나.” 이런 방식은 해외 ‘야동’의 오럴 섹스 장면에서 유독 자주 사용되는 트릭이기도 하다. 화면의 모자이크 처리된 부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부 진짜라고 믿었다면, 이제껏 속아온 것이다. 해외 ‘야동’의 삽입 장면도 마찬가지다. 마술 쇼에서 쓰이는 칼을 생각하면 쉽다. 쿡 찌르면 칼이 칼집 안으로 쑥 들어가는 그런 칼. 이른바 가짜 페니스다. “가끔 아침에 촬영장 가면 감독님이 거기서 뭘 끓이고 있어요. 풀이에요. 가짜 정액으로 쓰는 거죠.” 인터넷 웹사이트의 경우 TV용 성인영화에 비해 수위가 높은 편이라 간혹 이런 과감한 연출도 가능하다.

A는 이제 더 이상 배우로 활동하진 않는다. 현장에 가는 일도 줄었다. 최근 성인영화 업계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았다. 인터넷 방송이다. A의 새로운 직장이 바로 그곳이다. 누구나 어떤 주제로든 방송을 할 수 있고, 당연히 모든 방송이 성인 콘텐츠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인영화 업계에서 배우 수급 능력을 인정받은 실장, 매니저들은 현재 대거 인터넷 방송국과 관련을 맺고 있다. 자연스레 인기 있는 여자 진행자들은 방송사와 계약이 되어 있는 경우가 꽤 많다. 방송사는 진행자에게 콘셉트를 짜주고 접속자 정보, 시간대별 트래픽 등을 제공한다. 인터넷 방송의 수위는 성인영화에 비해 낮을지 모르지만, ‘리얼리티’의 측면이라면 그 어떤 형태의 콘텐츠보다도 앞선다. 생방송인 데다 진행자와 얘기를 나눌 수도 있으니까. 결국 성인용 영상에 대한 남자들의 들끓는 수요는 형태와 매체만 바뀔 뿐이다. 본질은 결국 가장 진짜 같은 경험을 찾는 것일까? 진짜 같아 보이는 섹스, 그리고 당장 나가면 진짜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자. 일단 거기까지 왔다.

    에디터
    유지성
    일러스트
    이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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