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보다가

이 사진집을 보면 덩달아 생각나는 어떤 물건.

BOLLINGER

첫 문신은 youth라고 새길 참이었다. 뭐 청춘과 젊음을 영원히 갖겠다는 촌스러운 생각은 아니었다. 참 좋은 시절이자 찰나이고 아름답고도 슬픈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레그 골먼의 사진집 ‘In their youth’에는 어쩔 줄 모르던 디카프리오, 30년 전의 조니 뎁,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히스 레저, 수염 없는 브레드 피트, 더없이 아름다웠던 미키 루크의 젊음이 있다. 머리가 수북했고 피부가 팽팽하다는 이유로 젊음이 부럽다는 생각은 이 책을 보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오로지 갖고 싶은 건 그 시절, 마치 샴페인이 터지기 바로 전처럼 아슬아슬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그때. 박나나

VILEBREQUIN

<호텔 일 펠리카노> 사진집에 눈길이 간 건 순전히 슬림 아론과 유르겐 텔러란 이름 때문이었다. 지중해 포르토 에로콜 부두에 떠 있는 새하얀 요트 표지, 슬림 아론과 유르겐 텔러의 이름이 함께 적힌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 호텔의 주인은 존 스왑. <라이프> 매거진의 사진가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진을 찍었고, 파일럿이기도 했던 그가 찍은 사진도 이 책에 담겼다. 호텔의 골조를 만들 때부터 시작해 1965년 완성된 일 펠리카노의 사진은 모두 흑백이다. 일 펠리카노 호텔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전하고 안락한, 호화로운 사람들 특유의 밝은 낯빛, 깊은 바다 향과 짠물 냄새로 가득한 사진들로 꽉 채웠다. 이 사진들을 보면 빌브레퀸 어라운드 더 월드 슈퍼플렉스 수영복이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이탈리아 포르토 에로콜에서 차로 7시간을 달리면 빌브레퀸이 탄생한 프랑스 생트로페가 나온다. 둘은 완전히 다른 곳이지만, 왠지 닮았다. 김경민

BYREDO

소피아 코폴라가 친애하는 사진가 폴 재스민은 로스앤젤레스만 편애하기로 유명하다. 그가 본 로스앤젤레스는 볕이 따가워 생긴 여유, 대도시의 번민, 영화배우를 꿈꾸는 무모한 젊은이들의 열기가 엉성하게 뒤섞여 있다. 뭐라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애매모호하게 멋진 분위기. 사진집 ‘HOLLYWOOD COWBOY’는 촬영차 텍사스에 함께 간 사진가에게 빌렸다. 며칠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화보 촬영을 해야 했는데, 폴 재스민의 사진을 보니 뭐든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졌다. 반년이 다 되도록 돌려주지 않다가 어제서야 억지로 돌려줬다. 이 사진집의 거의 모든 사진에는 천국이 로스앤젤레스에게만 내린 축복, 은혜로운 태양빛으로 가득하다. 미스터 마블러스, 이 향기로 지금은 반납한 사진집을 추억한다. 오충환

LEVI’S

데이비드 암스트롱의 사진집 는 사진가의 집, 뉴욕 브루클린 제퍼슨 애비뉴의 번지수를 그대로 제목으로 썼다. 고성처럼 음침하고도 퇴폐적인 낡은 집에서 데이비드 암스트롱은 거의 매일 청년들의 초상 사진을 찍었다. 친숙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찍은 사진들은 모든 컷이 비밀스런 고백처럼 흠뻑 젖어 있다. 암스트롱은 비슷한 사진들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컷을 찾으려면 한 달도 모자란다고 말했다. 사진은 과학도 의학도 아니니까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그렇게 고른 포트레이트만 모았으니 를 볼 때마다 좋아서 한숨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요즘 패션 사진에는 사색적 순간이 결여되어 있다는 그의 말도 귓가를 맴맴 돈다. 사진집과 어울리는 옷으로 무릎 길이로 자른 청바지 말고 다른 건 생각도 안 했다. 암스트롱은 “청년들은 재미있고 가능성이 많고 융통성이 많다는 점에서 아름답다”고 말했는데, 이 바지야말로 바로 그런 옷이기도 하고. 강지영

SHAKASTICS

표지를 보자마자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멋진 집 앞에 저 정도로 아름다운 차가 있는데 카메라를 들지 않고 버티기는 정말 힘들 테니까. 비슷한 사진이 아이폰 사진첩이나 외장 하드에 꽤 저장돼 있다. 사진집 ‘HOME ALONE’의 작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독일인 사진가 팀 막사이너는 서퍼이자 스케이트 보더이기도 하다. 그가 로스앤젤레스 남쪽 작은 항구 도시 산 페드로에 정착한 건, 연어가 강을 거스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집 근처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찍은 집과 차의 조합 아흔아홉 개가 이 책 속에 있다. 가장 갖고 싶은 건 여든여덟 번째 집과 차지만, 일단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 따위 필요 없는 널따란 골목에 살고 싶다. 그런 동네엔 남편의 스케이트 보드 입문을 반대하는 아내도 없을 것이다. 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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