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말을 거는 방법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은 쌓여만 갔다.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지만 벽이 높아 보였다. 전한다 해도 바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은 있을 것이다. 알아야 하는 것도.

Society판형

“정말 모르겠다. 일을 하면 할수록 모르겠어. 이젠 말도 잘 못하겠다.” 그는 올해로 8년 차인 사회부 기자다. 세월호 침몰 직후 2주 이상 팽목항에 머물렀다고 했다. 우린 아파트 앞 벤치에 캔 맥주를 들고 앉아 있었다. “그 거대한 슬픔, 통곡, 흐느낌. 괴로웠지, 너무 괴로웠어. 취재고 뭐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랬어.” 그 감정엔 과연 물리적인 실체가 있었다고 그가 말했다. 거대한 울음소리가 와서 머리고 가슴이고 퍽퍽 치는 것 같았다고, 하지만 힘들다 말하는 것도 부끄러웠다고 했다. 현장엔 미처 기사로 쓸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확인할 수 없는 것들, 의심만으로는 할 수 없는 말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들, 알면서 시치미 떼고 있는 것들.

6월엔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대학생, 교수, 문인, 4대 종단이 한 목소리를 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60년대가 이랬을까 싶었다. “1950년대는 무기력, 체념, 암울, 불안, 이런 키워드로 상징된다. 그야말로 희망이 안 보이는 시대였다. 4.19 선언문에 담긴 것처럼 캄캄한 밤이었다.”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프레시안>과 진행하는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절반 정도만 위급해 보였다. 연관 검색어엔 ‘시국선언 뜻’ 같은 말들이 있었다. 한국은 몇 개의 다른 세계로 쪼개진 것 같았다. 6월 4일 <한국대학신문>에 실린 르포 한 꼭지는 참고할 만했다. 제목은 “거리에서도 ‘힘 잃은’ 교수들… 시국농성현장을 가다”였다. 농성 현장엔 세월호 대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을 촉구하는 전국 대학교수 시국선언이라는 노란색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행인이나 언론마저도 이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기사의 골자였다.

언론은 알고 싶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알려주는 것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될 판이다. 기사는 종종 ‘알 권리’라는 오래된 말을 방패 삼아 그들의 돈을 방어하는 데 쓰인다. 종편이 출범했을 때의 논란은 지금 좀 이상한 방식으로 모호해졌다. 공중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친 대신 jtbc <뉴스 9>에 대한 믿음은 거의 유일하다. 손석희 앵커는 매일 오프닝을 세월호 소식으로 전했다. 한 사람의 힘이라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의 결기가 <뉴스 9>에는 있다. 어쩌면 언론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성실과 신뢰를 jtbc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칭찬하는 마음은 그대로 다른 언론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져야 옳다.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은 7월 11일 <MBC 뉴스데스크>를 6월의 나쁜 방송 보도로 뽑고 광고 불매 운동에 나섰다.

기자들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여기고 싶지만, 그저 방식이 좀 더 교활해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기자 개개인의 마음 안에서 이미 차단되는 말이 있다는 뜻이다. “그걸 내가 쓸수 있을까? 못 써, 써도 안 나가.” 벤치에서 맥주를 마시던 또 다른 사회부 기자가 말했다. 서울역 앞 고가에서 분신한 남자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던 중이었다. 그가 분신하기 전 어떤 현수막을 펼쳤는지, 왜 그랬는지, 유서에는 뭐라고 쓰여있었는지에 대해 MBC, KBS, SBS는 외면했다. 그 기자의 매체에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이 가만히 벌어지는 시대, 알아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는 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렵다는 푸념도.

이렇게 막혔으니 밖으로 나서는 수밖에. 지금은 피켓을 들고 서명을 하는 일이야말로 절박하게 느껴진다. 의견이 대중을 만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광화문에는 아직도 매일 몇 시간씩 피켓을 드는 ‘엄마’들이 있다. 4월 28일 이후 매일 네 시간씩 40일간 피켓을 들다 몸져 누운 주부 오지숙 씨가 최초였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산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바로 옆방에 단원고 남학생 빈소가 있었다. 영정 앞에 엄마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다시 조문을 하러 들어갔다. 그분이 고맙다면서 그러셨다. ‘안타깝지만 어쩌겠어요. 늘 그랬듯 잊히겠죠’ (중략) 그날 나도 모르게 그분께 약속했다. ‘제가 뭐라도 하겠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 안 되면 광화문에 나가 피켓이라도 들고 서 있겠다’라고.” 지금은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약 1백80명의 다른 엄마들이 같이 하고 있다.

그럼 정치는 어디 갔지? 여의도? 이런 절박함과 답답함, 냉소, 분노 같은 온갖 감정들이 국회를 향하는 순간 회의는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거긴 마음을 대변해 해결책을 도출하는 곳이 아니니까. 다만 그들의 권력과 권력이 충돌하는 곳, 그걸 보는 누군가는 또 다른 차원의 치욕을 견뎌야 하는 곳, 국가가 (감히) 개인을 얼마나 미미한 존재로 만들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곳이다. 지금 엄마들이 서 있는 광화문에서 선거철에 도움을 청했던 국회의원들이 다시 그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것을 보고 견뎌야 하는 곳이다. 마이크는 그들 앞에 있고, 그렇게 증폭된 목소리는 세월호를 조류 독감에 비교하는 식으로 치졸하기만 했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이미 우리 사회에 있었던 환멸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라 말했다. 이걸 한국의 ‘민낯’이라 표현한 사람도 있다. 마침내 확인한 당신의 민낯이 이렇게 안팎으로 추한데, 누군들 사랑할 수 있나?

모든 고리가 다 끊겼다. 목소리는 묻힌 것 같았다.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이젠 지겹다는 말이 한 공간 안에 있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과 그걸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다른 마음이 같이 있었다. 분노, 무기력, 미안함, 책임감, 냉소가 아무렇게나 섞여 있었다. 문인과 사회 원로, 종교 단체가 모두 나섰지만 미미하게 여겨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모자랄 것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꽤 있었을 것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만은 편할 정도였으니까. “각자도생의 핵심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 <GQ>와의 인터뷰에서 엄기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자꾸만 생각났다. 청운동에 모였던 학생들이 끌려가던 밤이 생각났다. 세월호 유족들이 모였다가 밤을 지새우고 청소 후 해산한 바로 거기였다.

지금은 알고 싶은 것과 알 수 있는 것, 알려진 것과 알아야 하는 것이 아무 맥락도 없이 흩어져 있는 시대다. 우리는 이미 많은 걸 알 수 있다. 더러는 알고 있기도 하다. 정보와 의견은 텍스트와 이미지로 손바닥 위에서 범람한다. 그래서 풍요로워졌나? 더 똑똑해졌나? 윤택해졌나? 그랬다면 좀 낫겠지만. 어쩌면 알고 또 알다가 그냥 말아버리는 것 같은 마음에 휩싸이기도하는 것이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그의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단절과 거부에 대해 말한다. 거부하는 사람은 후회하지 않으며, 지금은 너무 많은 것에 접해 있어서 정작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시대라는 진단도 덧붙인다. 거실에 장식으로 꽂아놓은 대백과사전 같은 사회인 것이다. 정작 아는 게 없으니 서툰 말을 들을 때마다 ‘헛똑똑이’ 같은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다. 이런 싸움판에서 누군가 혼자 이겨봐야 별 것 없다는 회의가 자꾸만 드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치인의 흠에 대해서, 권력의 뻔뻔함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각자가 선 곳에서 지치고 또 지쳐가면서, 우리는 다만 버티고 있다. 엄기호는 지금이야말로 ‘더 나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라고 말했다. “원래 그리스식으로 보면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토론하는 거 있잖아요? 그게 정치예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국가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게 뭐냐? 그게 ‘좋은 삶’이에요.”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이건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의 말이다. 21세기의 한국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까지 언급하는 건 부끄러운 일일까? 하지만 우리는 이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을 역사의 시작이라고 여기는 게 옳지 않을까? 그럼 이 수상한 시대에 대해, 다분히 개인적인 차원의 책임감이 조금은 생길까? 말하고 또 말하는 것, 나누고 또 나누는 것, 그 안에서 단단해지는 각자의 생각만이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옆에 있는 사람과 더 나은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정치의 시작이라는 말은 그래서 혁명과도 가깝다. 우리가 지금부터 나누는 거의 모든 것이 역사의 일부라는, 가장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실은 가장 공적인 일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목소리가 모이고 또 모였을 때라야 우리는 좀 다른 차원의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는지. 정치란 여의도에서 이뤄지는 일, 고작 3백 명이 좌지우지하는 일, 파란 지붕 밑에서 누구 모르게 하는 그런 일이 아니다. 정치야말로 개인적이다. 당신의 모든 것이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