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나 거기나

한국에 과연 ‘로컬’이 있을까? 국토를 여행할 때마다 질문이 따라왔다. 세 가지 키워드로 다시 생각해봤다.

Culture판형

“한국 뭐, 어딜 가나 거기서 거기지.” 한국관광공사에서 대번 반발할 소리겠지만, 정도껏 수긍하는 바는 있다. 경상북도 도청소재지든 경기도 소읍이든 눈앞의 풍경만으로는 분간이 쉽지 않다. ‘파리’ 어쩌구 하는 제과점 있고, 치킨집 피자집이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나오고, 3층에 PC방 있고, 뭐라 뭐라 빽빽히 써 붙인 이동통신 대리점 있고, 여기쯤이겠다 싶으면 대형 마트 나오고, 불빛이 요란하면 죄다 모텔촌이고(게다가 그것을 알리는 간판 서체는 거의 ‘통일’되어 있고)…. 패턴에 가깝도록 반복된다. 고장의 이름은 다를지라도, 풍경은 여기나 거기나 내내 엇비슷하다. 저렇게 생긴 다리를 분명 전라도 무주에서 본 것 같은데, 여기는 강원도 원주고…. 익숙해서 무감하다가도 안타까워 새삼 묻는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왜 이렇게 됐을까?

지방자치
한국은 1988년에 지방자치법을 개정했고, 1991년부터(KBS <6시 내 고향>이 방영되기 시작한 해) 지방의회를 구성했다. 본격적으로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지 이제 20년 조금 넘은 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 20여 년 동안 지금의 풍경이 새롭게 건설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치단체는 예산이 생겼고, 그걸 남지 않게 써야 했다. 길을 닦고, 다리를 세우고, 청사를 증축하고, 축제를 열고, 공원을 만들고, 가로등과 운동기구도 여기저기 설치했다. 잘사는 티가 역력했다. 그렇게 지방자치였다.

자치가 아니라 잔치라고 혹자는 말했다. ‘내 돈 내가 쓴다는데’라는 논리로 거칠 게 없었다. 이웃 도시에서 넓은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를 놓았다면, 실개천밖에 없을지라도 “우리도 다리 하나 놓자”고 진행하는 단순 명쾌한 행정 잔치. 부산에서 영화제를 열어 이미지도 좋아지고 막대한 수익도 올렸다니, 우리도 뻘건 카펫 깔고 배우 불러서 영화제 하자며 생긴(그리고 사라진) 영화제가 몇 개였던가. 유치한 영어 문구를 사용한 슬로건과 순수 한글이랍시고 생전 처음 듣는 말로 이름을 지은 마스코트는 아예 한 쌍이었다. 관광자원이 있으면 있는 대로 포장하고, 없으면 드라마 세트장이라도 새로 지어서 홍보자료를 뿌렸다. 말 그대로 국토가 ‘따라잡기’ 대회장이 되었다. 여기도 저기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시골도 서울처럼. 도대체 논 한복판으로 수십 개의 교차로가 있는 2차선 도로가 왜 생겨야 하는지, 멀쩡한 보건소 건물을 왜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지, 왜 학교라는 학교는 모두 똑같은 형태와 색깔로 생겨야 하는지(마치 급식의 메뉴와 맛처럼), 알 수 없는 채 순식간이었다. 그 고장만의 고유함? 그런 건 있어도 몰랐고, 알아도 무시됐다.

한번은 삼척시내에서도 꽤 떨어진 도계라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고지대라 그런지 한여름인데도 서늘한 공기가 냉큼 닿았다. 밤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보일러를 돌리는 집이 많다고 했다. 담장마다 연탄재가 탑처럼 쌓인 이유였다. 내가 본 도계는 그랬다. 여름에도 연탄을 때는 서늘한 탄광의 고장. 그런데 시장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칙칙한 탄광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도계로 거듭납시다.” 이 무슨 기이한 소린가? 진짜 탄가루라면 모를까, 탄광이라는 이미지라면 도리어 옴팡 뒤집어써도 시원찮은 게 아닐까? 탄광 도시가 왜 탄광 이미지를 벗어야 하는 걸까? 스페인 어디에서는 토마토를 던지고 뭉개며 난리를 치는 축제도 열린다는데, 서로의 몸에 숯검정을 묻히는 축제라도 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연탄불에 옥수수도 굽고, 돼지고기도 굽고, 감자도 굽고, 생선도 구워 파는 식당 골목도 어울리지 않을까? 다분히 거친 얘기지만 맥락만큼은 옳다고 믿는다. 도대체, 멀쩡히 있는 걸 없다고 감추면서 하려는 ‘자치’란 무엇일까?

‘1박 2일’
지방자치시대 이후, 국내 여행 붐의 한 시발점은 1993년에 나온 유홍준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부터였다. 그 책을 들고 여행하는 사람들로 해남이며 강진이며 남도 땅은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 시끄럽진 않았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책을 닮은 여행을 시도했으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새기고는 공부하듯 유유 자적 문화유산을 답사했다. 말하자면 그때까진 어떤 평화라면 평화가 있었다. 한국에 대대적인 ‘맛집’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VJ 특공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까지는.

‘VJ 특공대’ 하면 곧장 생각나는 분위기가 있다. 당장 그걸 따라 하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식 말이다. ‘맛집’과 ‘대박’은 홍수가 났고, 여행은 한껏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흘렀다. 맛집을 표현하는 말로 “그 집 음식 맛있어”보다 “그 집 유명하대”가 훨씬 설득력을 갖춘 말이 됐다. 그러다 ‘1박 2일’이 인기를 끌면서, 여행은 곧 이벤트라는 트렌드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 떼지어 몰려다니는 출연자들은 사진 하나도 차분히 찍지 않았다. 하다못해 공중부양 미션이라도 수행했다.

매스미디어를 꽤나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풍토 속에서, 시청률 높은 TV 프로그램의 여파는 개인의 취향까지 패턴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마침 전국의 ‘부모님 패션’을 통일한 아웃도어 열풍까지 합세했으니 여러모로 조건이 맞기도 했다. 남들 가는 데 가서, 남들 먹는 거 먹고 오는 여행. 다른 것을 그저 다르다고 하지 않고 ‘튄다’고 싸잡는 곳에 딱 맞는 유행이었다.

여행지의 상권 역시 그렇게 몰려다니는 손님에게 적합한 구조로 바뀌기 시작했다. 식당의 경우, 정성 들인 한 그릇을 잘 만들기보다, 요란한 백 그릇을 빨리 만드는 집이 소위 ‘대박 맛집’이 되기 쉬웠다. 뭇 식당들이 규모와 메뉴를 뻥튀기하며 편의에 입각한 마케팅을 하는 건 당연한 순서. 그러면서 생겨난 한 가지 흐름이 ‘반찬 많이 주는 집’이었다.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켰는데 밑반찬이 열 가지가 깔린다”는 말로 상징할 수 있는 이 흐름은 지역을 불문하고 상다리를 부러뜨릴 기세였다. 결과는 이렇다. 굴비가 유명한 전남 영광에서, 좋은 굴비를 실하게 잘 굽는 집을 찾다 보면, 엉뚱하게도 불고기에 간장게장에 누가누가 반찬 많이 주나 경쟁하는 집만 수두룩하게 나온다. 그런 곳마다 ‘남들처럼’ 여행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고향
몇몇이 모여서들 혈액형이니 별자리니 시답잖은 얘기를 나눌 때,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도 제법 흥미롭게 보조를 맞춘다. 인천 출신인데 광양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온 여자와 줄곧 부천의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남자와 태어나 마산을 벗어나본 적 없으면서 사투리를 완벽하게 ‘고치고’ 작년부터 분당에서 선거하는 남자 등에 대해 별의별 시선을 겹치다 보면, 혈액형이나 별자리처럼 그 사람의 어떤 지점이 슬쩍 보이기도 하는 재미가 있다.

같은 서해안 항구도시라도 목포와 인천이 어떻게 다른 정체성과 기운을 뿜는지, 같은 충청도라도 서북쪽 서산 당진과 동남쪽 대전 논산은 어떻게 말투가 다른지, 경북과 경남이 서로를 대하는 미묘하게 다른 입장이란 어떤 것인지, 고향은 얘기할수록 다양한 면모를 드러낸다. 하지만 ‘고향’이라는 말 자체는 어쩐지 박제가 된 것 같다. 나훈아의 ‘고향역’이나 송대관의 ‘고향이 남쪽이랬지’를 어느새 따라 부르는 흥은 부모님 세대의 것, 초등학교 고학년 음악 교과서에서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하는 노래가 사라진 지도 한참, 행여 지금 고향이란 헬리콥터로 고속도로 정체를 촬영하는 명절 때나 간신히 살아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고향의 사전적 의미가 ‘태어난 곳’이라면, 정서적 의미는 ‘돌아갈 곳’이다. 이미 40년 전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인식으로 모티브 삼았던 얘기인데, 그건 혹시 여전히, 아니 지금이기에 더욱 유효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천편일률, 유명세를 따라 우루루 몰려다니기 일쑤인 여행 패턴에 넌지시 ‘고향’이라는 카드를 꺼내고 싶다. 어느 고장에 가서든, ‘여기도 누군가의 고향’이라는 정서로 풍경을 마주하는 것이다. 학교는 어떻게 생겼나, 마을까진 얼마나 먼가, 가족이 외식을 할 땐 어떤 식당에 갔을까? 제철에 나는 과일은 뭔가? 그렇게 그 고장 사람의 감각을 빌려 ‘여기가 내 고향이라면’ 마주 보는 것. 그런 태도나 생각은 마침내, 한 고장이 품은 역사와도 만나게 해줄 것이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진 걸까? 남아 있는 건 뭐고, 사라진 건 뭘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러는 동안, 우리는 한국을 좀 더 정확히 쳐다보게 될 것이다. 한국을 여행하는 한국사람만의 특권이라 할 만하다. 기꺼이 신나게 누려도 볼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