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해

섹스로 시작한 연애를 목격했다고 눈부터 부릅뜰 필요는 없다.

“언제부터 만났어요?”란 친구의 질문에 우물쭈물댄 건 둘의 사이가 애매해서가 아니었다. 섹스를 한 순간부터 남자와 여자의 연애는 시작됐던 걸까? 손을 잡고 키스를 하는 것 같은, 이른바 중간 과정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섹스 중 절정의 순간에 손을 깍지 껴 꽉 잡았고,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둘은 임의로 친구의 질문 속 “언제”에 해당하는 날짜를 정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혹시 속도위반 아니냐는 식으로 물어오는 쪽에 대답하기엔 그렇게 하는 편이 나았다.

첫 섹스가 우발적이라기엔 둘은 좀 치밀했다. 남자는 청소와 설거지, 쓰레기통까지 싹 비워놓고 집을 나섰다. 여자는 가방에 칫솔을 챙겼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라기엔, 그날 밤은 이미 남녀가 짐작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다. 하지만 언제 처음 잤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은 잘 없었다. 둘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그 질문이라면 대답이 좀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혼자 있을 때였다면.

섹스와 연애의 순서는 음악을 들을 때 앰프를 먼저 켜느냐, 스피커를 먼저 켜느냐 정도의 문제에 가까워 보인다. 앰프를 먼저 켠 뒤에 스피커를 켜는 것이 장비를 오래 쓰기 위해 권장된다. 하지만 스피커를 먼저 켠다고 해서 음악이 안 나오거나, 본래와 다르게 들리는 건 아니다. 단, 권장 순서를 무시하고 앰프를 켜지 않은 채 갑작스레 스피커 전원을 넣으면 스피커에서 “퍽”하고 스파크가 튄다. 잘 고장이 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안전하다고 말할 순 없다. 섹스는 그런 스파크 같다. 굳이 앰프를 미리 켜지 않아도 제 스스로 내는 소리 같은. 몸에 전류만 흐르고 있다면 말이다. 좀 극단적으로 말했을 때, 순서를 지키다 스피커를 늦게 켜서 기가 막힌 도입부를 놓쳤을 경우 노래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리는 쪽이 즐거움의 총량을 따지자면 좀 더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편 섹스로 시작한 연애의 “고백할 게 있어”란 말은 설렘보다 놀람에 가까운 듯하다. 스파크가 튀어 연애 비슷한 만남을 갖게 된 남녀에게 고백의 절차가 썩 반가울 가능성은 낮으니까. “네가 좀 더 좋아졌어” 이외의 좋은 예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보단 “우린 무슨 사이야?”라는 서로 민망한 질문, “이건 아닌 것 같아” 유의 도덕적 회의일 확률이 좀 더 높다. 따지고 보면 고백은 일종의 일방적 통보다. 한 명이 감정을 표현하면 상대는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한다.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거나, 관계 자체가 끝난다. 잘못된 시점의 고백, 잘못된 방식의 고백은 애써 그간 공들인 감정의 탑도 무너뜨릴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밀당’을 잘하면 되는 걸까? 가끔은 꼭 그렇게 뭔가 확실히 해둬야 서로의 사이를 확인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섹스 뒤에 남자는 둘 중 한 가지 감정을 갖게 될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더 만나고 싶다, 또는 좀 아쉽다. 좀 아쉽다는 쪽이라면 일찍이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더 만나고 싶다 쪽이라면, 남자는 시종일관 볼륨을 끝까지 올린 스피커의 자세 또는 열의로 여자를 대할 것이다. 서서히 올라가는 크레센도라기보다 스타카토에 가깝다. 방점은 확실히 찍힌다. 섹스. 하지만 섹스에 얽힌 모든 관계가 섹스 파트너나 원 나이트 스탠드로 귀결되진 않는다. 아니, 섹스 파트너라면 나쁜가? 그리고 순전히 섹스가 환상적이라 어떤 여자와 연애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섹스로 시작한 연애를 옹호하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무작정 환영이라 말하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섹스가 끝나면 남자는 연애에 흥미를 잃는다는 말은 틀렸다. 여자에겐 분명히 두 번째 섹스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한 번 섹스를 했는데 다음 번엔 거절한다면 남자는 처음부터 거절당한 것보다 더욱 달아오를 것이다. 그런 재미라면, 서서히 박자를 올리며 흔히 말하는 ‘진도’를 나가는 식의 연애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극적이지 않나? 크레센도 이후 찾아오는 데크레센도가 아닌 연속적 스타카토 상태. 축구의 승부차기에서 파란불과 빨간불이 교차되다 실축을 뜻하는 빨간불이 연속 두 번 들어오면 키커의 몸에 급격한 긴장감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잔인하다지만 승부차기는 큰 대회 토너먼트에서만 즐길 수 있는 굉장한 묘미다. 섹스로 시작한 연애 역시 일견 마찬가지다. 연애로 시작한 섹스가 등산에 가깝다면, 섹스로 시작한 연애는 물에 곧장 첨벙 빠져드는 것 같다. 꼭대기에 올라야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게 아니라, 들어가자마자 곧장 시원하다. 게다가 지금은 뜨거운 여름이니까. 꼭대기가 궁금해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일단 발부터 담그고 싶은 게 여름 아닌가? 야외에서의 섹스, 처음 만난 사람과의 섹스, 여행지에서 길을 묻다 마주친 사람과의 섹스…. 모두 겨울보단 좀 더 여름에 가까운 일들이다. 물론 그런 섹스가 연애로 이어지느냐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이 또 연애가 아니라면 어떤가? 그 여름이 끝나도록, 어쩌면 특정 도시만 떠올려도 그 날의 섹스가 계속 생각날 텐데. 그렇다면 긴 시간 동안 같은 도시에 살며 평온하게 만난 연인보다 더 임팩트가 있지 않나? 사실 어떤 식의 연애든 매일이 그렇게 충격적이라면 가장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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