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물건에 관한 아주 사적인 이야기

나를 닮은 강아지, 걔를 닮은 물건.

D.R. HARRIS&CO.

닥터 해리스의 물건은 단정하고 정직하다. 제품 패키지와 로고, 향과 촉감 전부 수수하지만 특유의 기품이 있어, 다른 무엇과 섞여 있어도 얼른 구별된다. 1790년 런던 부유한 거리의 약국에서 시작된 브랜드답게 잔 기술로 매혹시키는 대신 품질과 정통성으로 조용한 믿음을 준다. 작고 매끈한 꿀색 병에 든 아몬드 오일은 맛있는 향이 나는 호박색 액체로, 건조한 피부에 두루 바르면 곧 부드러운 윤기가 생긴다. 끈적이지도 향을 남기지도 않고, 스르르 몸에 감기듯 스며들면 그뿐. 한편, 시바견은 다른 강아지들이 애교를 부리는 걸 딱하다는 듯 쳐다보는 그 표정 때문에, 한 번 본 후 홀딱 반했다. 짧은 털, 쫑긋 선 귀, 동그랗게 말린 꼬리, 좌우 대칭이 분명한 얼굴. 소년 잡지 커버 모델을 해도 될 정도로 참 잘생겼지만, 예쁘다는 말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품위가 있다. 비위를 맞추거나 재주를 부리지 않되, 주인의 발치에 동상처럼 앉아 있는 충실함,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 용맹한 공격성. 게다가 또 얼마나 영리한지. 혈통의 힘이다. 강지영

LIMOUSINE

어떤 형상이나 인물의 닮은꼴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다.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닮은꼴을 얘기하다 보면 누군가에겐 서른이 넘어 새로운 별명이 생기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은 허리를 앞뒤로 꺾으며 신나게 웃기도 한다. 물론 데인드한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이유와 신봉선처럼 상투적인 닮은꼴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닥스 훈트와 리무진이었다. 각자의 무리 중에서도 유난히 허리가 긴 것, 네 발로 달린다는 것, 귀족적인 것, 공교롭게도 대부분이 검정인 것, 주인의 유난스러운 애정과 관심으로 늘 윤이 나는 것, 큰 울음소리를 내는 것. 닮아도 정말 기막히게 닮지 않았나. 아무리 그래도 <지큐> 에디터 중 한 명과 배우 고윤후의 닮은꼴을 따라가진 못하지만. 박나나

KITSUNÉ ‘AMERICA 3′

웰시 코기는 본래 영국 개지만 에디는 충무로에서 만났다. 마침 촬영차 에디 레드메인을 만난 김에 대충 에디라고 불렀다. 짧은 다리지만 질주할 줄 아는 활달한 소몰이꾼. 분명 극성맞은 강아지라 들었는데 에디는 순하고 수줍음도 많았다. 에디는 영특해서 매일 하나씩 기술을 익혔다. 앉아, 엎드려, 굴러, 고 홈, 댄스를 간단히 습득했다. 툭하면 먹을 걸 줄 때까지 배운 걸 연속으로 선보였다. 사람을 좋아해서 도둑이 들어도 문을 열어줄 게 분명했다. 이런 사교적인 에디와 어디든 가고 싶었다. 뛰놀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굴업도 해변이나 한강 잠원지구, 가끔은 미국을 횡단하는 상상도 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은 무섭게 더웠다. 기분 좋은 음악을 틀곤 방바닥에 누워 배를 ‘툭툭’ 울리면 에디는 그 위를 범고래처럼 뛰어넘었다. 며칠 전 차에 메종 키츠네의 새 앨범을 넣었다. 1번 트랙부터 마지막 14번까지 다 제각각이지만 묘하게 비슷하다. 신나지만 거슬리지 않고, 귀를 바짝 세우고 들으라고 몰아세우지도 않는. 이 음악을 틀고 에디와 기상천외한 여행을 떠나고만 싶다. 오충환

GUCCI

동글납작하고 매끈한 가죽 베레는 곱슬머리에 써야 제격이다. 친밀하고 명랑한 성격의 비숑 프리제도 곱슬머리에 구불거리는 털을 가졌다. 주인의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튼튼한 체질에 독립심이 강해 혼자 얌전히 집을 잘 지키는 것도 베레를 쓴 벨기에 군인들과 닮았다. 후끈한 기온 때문에 아직은 베레모나 코트를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계절은 찰나에 바뀐다. 가을이 되면 고불고불한 비숑을 꼭 껴안고 낮잠을 자거나 풀이 무성한 곳을 함께 걷고 싶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그 표정과 자태라니. 머리카락은 꼭 솜사탕처럼 부풀대로 부풀리며 빗겨줘야 한다. 김경민

BELGIAN SHOES

벨지안 슈즈의 세계는 경이롭다. ‘신세계’ 정도의 수식으론 부족하다. 그 속에서 두 발이 느끼는 안락은 신어보지 않고는 누구도 설명할 수 없다. 신어본다 한들 적당한 말이 떠오를까? 결국 할 말은 “일단 신어봐”뿐이다. 맨해튼 동쪽의 벨지안 슈즈 매장엔 주로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살 법한 지긋한 어른들이 있다. 평소 신던 사이즈에 맞춰 색깔만 골라 사가거나, 다른 나라에 사는 동생에게 사주려고 주인 아저씨와 치수에 관해 지난하고도 따뜻한 토론을 벌이다 간다. 가끔은 낡고 닳도록 신고 공손히 수선을 의뢰하는 건실한 인상의 청년을 만나기도 한다. 누구 말처럼 일단 신어보고 나면, 절대 빈손으로 나올 수 없다. 버건디 리자드 카프 모델을 사 들고 나왔는데, 뒤돌아 걷는 내내 다음엔 뭘 살지 고민했다. 그레이 플란넬과 블랙 벨벳으로 후보를 좁혔다. 언젠가 큰 집, 넓은 마당이 생긴다면, 그래서 꿈에 그리던 이탤리언 그레이하운드를 입양하게 된다면, 그를 기념해 둘 중 하나를 꼭 살 생각이다. 마침 유니페어가 벨지안 슈즈를 들여왔다. 블랙 벨벳도 함께다. 박태일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