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 취했어, 이센스

이센스, 술은 좀 좋아해도, 인기에 취하진 않으려 한다.

가죽 재킷은 맥큐, 티셔츠는 휴고, 모자는 커뮤니티 54 by 분더숍.

예전에 클럽 브라운에 왔었죠? 예고 없이 번쩍 나타나 DJ 부스 앞에서 랩을 하다가 마이크를 냅다 바닥에 던지고 밖으로 나갔어요. 놀러 갔었는데 분위기가 진짜 좋아서 “하자!” 했는데, 두 곡째 할 때 술이 완전히 올라오는 거야. 식도에 술이 찰랑찰랑. 그래서 아, 못하겠다 싶어서 나가서 토하고 왔어요.

찾으러 나갔더니 밖에 누워 있었어요. 거의 눕다시피 했죠. 제가 술이 약한데 술을 좋아해요. 소주 세 잔이면 취해요. 한 병부턴 술이 술을 먹는 거죠. 마이크 집어던진 거 사장 형한테 사과해야 되는데.

신곡 ‘90s’에 “난 젊고 막나가 가끔”이라고 썼죠? 그 가사도, 그날 밤도 이센스답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건, 가끔이라고 표현했다는 거예요. 저도 참 불만 많은 놈이거든요. 근데 비정상은 아니에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뿐이에요. 살다 보면 돈이란 보스가 생기잖아요. 그런 채로 일하기 시작하니까 다 재미가 없는 거예요. 또 그렇다고 막나가다 보면 그냥 모난 돌로 저기 한쪽에 놓일 거란 것도 알아요. 그래서 그 둘 사이에서 시스템에 장난을 걸고 싶어요. 세상 썩었어, 그러는 게 아니라 좀 이죽거리기도 하고.

지난봄 ‘I’m Good’을 발매한 뒤엔 케이크샵 무대에 섰죠. 완전히 꽉 찼던 거 기억나요? 아,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 (관객 반응이) 안 터져도 상관없어요. 예전엔 그런 게 다 가격으로 매겨지는 거라는 사실이 싫으면서도 막상 공연장에선 내 공연 반응이 제일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고 X 같은 것보단 이기고 X 같은 게 낫잖아요. 지금은 이런 태도예요. 난 MC니까 DJ랑 무대를 준비해왔고, 보여줬다. 재미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중심이 다시 나로 돌아온 것 같아요. 브라운에서도 마이크 던진 건 미안한 일이지만, 제가 회사랑 일하고 있었으면 아예 그런 모습이 안 나왔을 거예요.

그렇다면 요즘 제일 즐거운 건 뭐예요? 얼마 전에 완성된 곡을 듣는데 진짜 좋았어요. 지금까지 이런 순간이 너무 적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최근 발매한 곡들을 제외하면 솔로곡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에요. 예전엔 그런 즐거움을 몰랐던 건가요? 강박이 좀 심해요. 작업하다 뭐가 탁 걸리면 넓게 못 보고 거기로 파고 들어가 버려요. 인기 같은 걸 신경 안 쓰고 싶다고 하지만 부담이 있었나 봐요. 이젠 느낀 게 평생 어쩔 수 없다. 세상은 돌아가고 있고, 난 거기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영합하겠단 얘긴 아니고. 그걸 받아들인 상태에서 사고를 해보자는 거죠. 이제 스튜디오 타임을 갖기로 했어요. 그리고 퇴근하기 전에 곡이 완성되어 있는 걸 듣자. 오로지 그거.

그럼 이제 출근하듯 스튜디오에 나가나요? 때를 정해요. 일주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똥이라도 그릇에 담겨 나올 때까지 있는다. 예전엔 불안하면 불안하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어요.

‘I’m Good’ 같은 노랜 꽤 여유로워 보여요. 뭘 좀 내려놓았구나, 하는 인상. 취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연예인들 일하는 걸 구경하다 보면 옆에서 엄청 띄워준단 말이에요. “아, 너무 잘해요, 멋있어.” 나중엔 대중들까지 그래요. 거기에 영향을 아예 안 받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취하지 않을 거예요. 나의 존재를 사람들이 아는 나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정신병이 온 것 같았어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난 그런 게 싫은데, 공연장 가면 환호해주길 바란다고. 그래서 새 음반 < Anecdote >를 만드는 과정은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 될 거예요. 원래의 나, 사람들이 모르는 나.

< Show Me The Money3 >봐요? 거기에 어마어마한 환호가 있는데. 하필 그걸 보면서 이센스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글쎄요. 저도 이런 생각을 해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힙합 뮤지션들이 가요계의 문제를 욕하는 포지션을 잡는 경우가 있잖아요. “너희들은 가짜다, 공장 음악이야.” 그런데 래퍼들이 거기 나가서 그러고 있는 게 좀 보기 싫은 거예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얼마 전에 발표한 ‘Everywhere’ 가사에서 전 걔들을 씹으면서 제 존재감을 확인시켰잖아요. 참 웃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출연했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꽤 궁금해지기도 해요. 저도 출연 제의 받았어요. 출연자 형들도 알 거예요. 이제까지 한국에서 방송으로 힙합 건드려서 어떻게 됐는지. 그런데 알면서도 나가는 거죠. 자기가 어떤 식의 소재로 팔릴지. 그것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일 거예요. 편집 어떻게 하든지 X발 모르겠고, 나 랩 잘한다고. 그런 태도만큼은 존중해요. < Show Me The Money3 > 욕하면 출연자들 전부 인정 안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에요. 프로그램이 계속 존재하고 인기를 얻는 것 자체가 한국의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래퍼들에게 경쟁심을 느끼기도 하나요? 당연하죠. 래퍼라면 경쟁심, 배틀 마인드가 마음속에서 계속 부글부글 하고 있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맘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죠. 전 딴 데서도 얘기했어요. 나는 기본이라고. 이제 느껴요. 아, 이제 기본들은 다 한다. 이제 자기 스타일로 발전시킬 줄 아는 애들이 좀 나올 것 같다. 여기서 전 경쟁심을 느끼고 기술적으로 앞서야 되겠다기보다 커리어가 없는 래퍼로서, 내 첫 음반으로 뭔가 보여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선후배를 떠나서 내가 힙합 좋아했고, 한국 땅에 살면서 랩을 이렇게 붙잡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 Anecdote >에는 스웨깅하고, 너희들 한 방 먹이고 이런 트랙은 안 넣고 싶어요.

잘 다듬은 한 장의 음반도 반갑겠지만, 이센스는 어쩐지 불쑥 곡을 발표하는 게 어울리는 래퍼예요. 작업하면서 느낀 게,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절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곡에 접근하는 태도가 바뀌었어요. 스튜디오 가서 비트를 듣고 어떤 느낌을 받았다면 그걸 풀어놓고 오자. 끝.

그런 태도가 있어야 음반을 낼 수 있는 거겠죠. 그렇죠. 성격상 빨리빨리 판단을 잘 못해요. 그런데 성의를 들이는 거랑 비효율은 다르잖아요. 음악을 잘한다는 말엔 판단력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 프로듀서가 두드러진 적은 없어요. 곡보단 랩을 기다리는 쪽이었어요. 기분 좋은 일이죠. 지금까지 허투루 랩을 하진 않았구나.

랩과 비트 모두 뛰어난, 이른바 한 곡의 ‘클래식’을 남기고 싶은 맘은 없나요? 그런 맘이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만들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클래식을 만들어야지, 하고 작업하는 건 마치 소개팅 잘하는 법 책 보고 나가서 여자 만나는 태도랑 비슷한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게 뭔지 모르고 잘해야 된다, 잘해야 된다만 하는 거죠. 생각해보면 저 몇 년 동안 일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그동안의 곡이 정말 좋았다는 얘기 안 나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 좀 부담이 돼요.

< Anecdote >란 단어엔 일화, 숨은 얘기란 뜻이 있죠.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에 대한 가사가 들어 있나요? 이 게임 자체에 대한 얘기, 내가 너보다 위라는 얘긴 피하고 싶어요. 가요계, 저작권, 인디 문화의 방향… 그런 게 구리다는 게 아니라, 이 음반에서만큼은 그냥 사는 얘기.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한국이 보여야 돼요. 꾕가리 소리가 나와서 한국인 게 아니라. 힙합에 관심 없는 사람들한테 힙합 음반을 들려주면, 사람들은 그 음반을, 비유하자면 ‘교포’라고 받아들여요. 어느 정도는 맞죠. 힙합은 미국 거니까. 그런데 그 주인공이 한국 사람 같아야 흥미가 생기지, 미국에서 잘나가는 사람 흉내 내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경산에 내려갈 거예요. 거기서 어릴 때 걷던 길 걷고, 학교 가보고. 우리는 살면서 훈련을 받기 때문에, 그런다고 갑자기 스물한 살 때의 초심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기억은 해야 된다는 거죠. 촌스러운 초심 얘기가 아니라 내가 왜 이걸 사랑했고, 어떤 경로로 빠지게 되었고. 그런데 전 서울에 있으면 전투하는 자세로 살아요. 경산에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서울에선 스튜디오 가서 끝내야 되는 ‘일’로 생각해요.

그렇다면 ‘컨트롤 대란’이나 대마초 사건에 대한 얘긴 없나요? 솔직히 내놓았을 때 심하게 피곤해질 얘기는 안 할 듯해요. 굳이 막 대마초 사건 갖다가 당시 감성을 노래로 만들거나 하고 싶지도 않고요. 이미 ‘독’에서 다 얘기했어요. 나의 쥐어짜는 그 X같은 모습. 난 이제 밝아지고 싶고, 진취적이고 싶은데 사람들은 제가 오래 쉬고 회사랑 계약도 안 하고 그러니까 “뭔가 있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You Can’t Control me’와 ‘독’으로 다 털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저는 그래요. 다시는 얘길 안 하고 싶은데, 가끔 문득문득 해요.

흰색 티셔츠는 아딘 by 샘프라스, 바지는 푸시버튼, 신발은 나이키.

솔로로 독립한 이후의 인터뷰를 전부 찾아봤어요. 그런데 다이나믹 듀오, 대마초란 직접적 단어는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피했어요. 얘기하기 싫다고. 다 물어봤죠. 근데 그걸로 뉴스거리가 됐을 때, 내 음악이 그 뉴스거리와 얽힐 것 같았어요. 진짜 싫었어요.

이를테면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같은 래퍼가 높은 평가를 받는 데는, 가사의 구체성도 큰 몫을 하고 있어요. 자신이 겪은 일화를 구체적인 단어를 거론해 늘어놓으니 얘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들리죠. 근데 좀 피하고 싶었어요. 이런 것도 있어요. 뭐 예를 들어 투팍에겐 ‘Hit’em Up’,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에겐 ‘Who Shot Ya’ 같은 살벌한 노래가 있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Dear Mama’ 같은 곡, < Ready To Die >같은 음반도 있단 말이에요. 어떤 존재인지를 음악으로 보여준 뒤에 싸움이 난 거죠. 나는 지금 그냥 싸움하는 놈인데, 자꾸 그걸 얘기하면 불쌍한 사람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전 제 노래지만 ‘독’을 별로 안 좋아해요. 안 들어요. 기억나니까. 떠오르니까요. 막 카페에서 저 왔다고 틀어줘도 좀 싫어요.

이센스는 처음부터 혼자가 어울렸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쌈디Simon D 형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둘은 원래 그걸 인정하고 만났던 것 같아요.

동료들의 평가라면 어때요? 스윙스는 지난 3월 한 인터뷰에서 “이센스는 예전에 독기 있을 때가 좋았다”는 유의 말을 했어요. ‘꽐라’나 ‘개뼈다귀’ 같은 신나고 못된 가사를 쓰던 이센스가 떠올라요. 이제는 내가 지쳐요. 내가 뜨거워요. 뜨거워서 속이 불편하다고. 그 시기엔 앞뒤 안 가렸어요. 진짜 ‘조까라 마이싱’이었으니까. 근데 아까도 얘기했듯이, 싸움만 걸고 다니면 이센스는 뭐냐는 거죠. 그러니까 넌 누군데?

그럼 이센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자기 음반인가요? 제 음반을 완성하는 동시에 나를 기억해내는 거죠. 이번 음반의 목표는 무조건 내 만족이고 내 작품이에요. 그리고 내 영혼을 울려야 돼요. 만약 내가 1백 퍼센트 만족했는데 반응이 별로예요. 그러면 에라 모르겠다 뭐든 해볼게,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전까진 뒤를 생각 안 할 거예요. 나 강민호, 경산에서 태어나 열일곱 살 때 랩 하겠다고 올라와서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고, 대마초 걸리고, 진짜 사람한테 나태라는 게 어떤 건지도 경험해봤고, 그런 사람이에요. 절대 화려하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아요.

게으르단 평에 대해선 동의할 수 있나요? 어떤 기준으로 보면 무조건 게으른 건데, 한 가지는 확실히 얘기할 수 있어요. 이 새끼들아, 난 12년 동안 머리에서 이게 떠난 적이 없다고. 이 주제에 대해서. 그러니까 좀 닥쳤으면 좋겠어요.

이 주제요? 힙합이요. 내가 랩을 하고 음악을 만들면서 내 음악이 힙합으로 들릴까, 에 대한 고민을 가사 쓰면서도 하고 녹음하기 전에도 하고 지금도 해요. 요즘은 진짜 재밌는 거 해 보고 싶어요. 말로만 재밌는 거 말고. 장난을 걸어보고 싶어요.

누구한테요? 어떤 관념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뭔가가 있잖아요. 형이나 나나 우리는 프리랜서에 가깝다고 해도 스테레오 타입이 생겼을 거예요. 그런 관념들. 예를 들어서 맥클모어의 ‘Thrift Shop’ 같은 노래는 현대 힙합 스웨거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볼 수도 있으면서, 위트가 있었잖아요. 티셔츠에 60달러 쓰는 거 비꼬고 막 그러니까. 맥클모어랑 똑같이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 재미있는 게임이 항상 하고 싶죠. 왜냐하면 시스템을 욕한다고 쳐요. 그럼 시스템 다 고치면 난 뭐 할 건데? 그러니까 혁명가로서 싸움을 하자는 게 아니라 시스템에 장난을 걸어보자고요.

“우리나라처럼 진입 장벽이 낮고 저변도 없고 래퍼가 연예인 놀이하기 좋은 힙합 신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죠? 무슨 윗사람 입장에서 일갈하는 것 같은데, 사실 맞는 말이잖아요.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 번 올리고 조던 좀 찍고. 솔직히 몇몇 그런 짓거리를 하는 래퍼들의 랩을 들으면 화날 정도인 것도 많아요. 제 가사 중에도 있어요. “니들이 홍대에서 하는 짓? 니가 TV 안 나온다고 다 Raw한 건 아니지.”

그렇다면 래퍼에게 필요한 기본은 뭔가요? 기본이요? 자기에게 몰두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남들 하는 거 똑같이는 다 하죠. 그런데 힙합이라면서요. 똑같은 옷, 똑같은 얘기, 똑같은 춤 싫다면서요. 그런데 자기가 누군지는 몰라요. 남들 기준에 좀 달라 보이는 정도일 뿐이에요. 다른 옷 입고, 오렌지캬라멜 안 듣고 딴 거 듣는 것 정도. 그러면서 랩 한다고 앉아 있는 애들이 맘에 안 들어요. 기술은 한국 래퍼 열 명 정도 카피하면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어요. 그러면 자기를 찾아야죠. 사람마다 사는 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데.

이센스의 랩에는 이른바 ‘레퍼런스’의 흔적이 없어요. 네. 전 돈 얘기 안 해요. 돈으로 1등 못 찍으니까. 그렇게 따져보면 제가 1등 찍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근데 1등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모두에게 통하는 방법이 있죠. 오리지널리티. 다들 거기에 먼저 집착했으면 좋겠어요. 평생. 갑자기 거물인 척하는 래퍼의 노래를 들을 바에 제이 지를 듣죠. 나는 그냥 술자리에서 다른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랑 만나서 얘기하는 게 내 인생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래퍼들 트위터에서 얘기하는 것 보고 있는 것보다.

스스로 어느 정도 자기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나요? 어느 정도는요. 지금은 진짜 인정해요. 흠이 많구나. 전 하도 어릴 때 시작해서 실력이 좀 는 뒤에는 몇 살 많은 형들보다 훨씬 잘했어요. 그러니까 애늙은이 병이 생겼는지, 제 또래보다 많이 알아야 된다는 식의 생각이 있었어요. 요즘은 그런 생각 안 해요.

후회 같은 것도 하나요? 많이 하죠. 지금도 후회들이 쑥쑥 올라올 때 너무 힘들어요. 예전엔 강박이 있어서 그런 걸 붙잡아놓고 일의 원동력으로 삼기도 했는데, 이젠 좀 지쳐요. 늙고 병든 느낌이라기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 가치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가치인가요? 호주 갔다 와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전 플랜 B가 없었어요. 랩이 제 생업이에요. 관두고 싶어도 한국에선 내가 먹고사는 제일 유리한 방법이기도 해요. 그렇지만 완전히 재미있진 않아요. 눈치 봐야 될 것도 좀 있고. 호주는 사람들이 진짜 여유로운 거예요. 그러니까, 거긴 사람이면 살 수 있게 해놨더라고요. 우리도 살 순 있죠. 숨을 쉴 수 있다는 거지, 살아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부품이 돼서 사는 것 같단 말이에요. 위험한 얘기죠. 시스템을 욕해서가 아니라, 내 친구들이 그렇게 살고 있어서 맘 아파할 것 같아서. 근데 사실이잖아요. 호주에선 아, 내가 랩을 관둬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랩 관두면 나 여기 와서 살아야지. 사람답게. 근데 또 정작 거기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참 심심한 나라라고 하더라고요. 상대적인 것 같아요. 전 그게 너무 편했고요. 어떤 느낌이었냐면, 단칸방에 살다가 골든 리트리버 기르는 60평 마당 딸린 집에서 살다 온 기분.

요즘 벌이는 어때요? 먹고는 살아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예전 같진 않죠. 일 활발히 안 하니까.

잡지 < Wired >를 창간한 케빈 켈리는 “창작자는 천 명의 골수 팬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다”고 했어요. 제 가사 중에도 있어요. 3천 명 정도가 날 안다고, 나 이제 적당히 유명하다고. 앞으로 저를 상품화시켜서 진열장에 꺼내놓을 때도 있겠죠. 제 노트에만 간직하는 얘기도 있을 거고. 하지만 스스로 좋은 자리에 놓이고 싶어서 애쓰진 않을 거예요. 당시에 3천 명이란 얘기를 왜 했냐면, 난 홍보 수단은커녕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에요. 근데 팬클럽에 그 정도 인원이 있었어요. 그래서 아, 이것이 절대로 아이돌 10만 팬덤에 비해 적은 숫자가 아니구나, 만약 그 3천 명이 내 음악을 듣고자 하는 맘이 정말 진심이라면 난 성공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지만, 여전히 경험하고 싶은 게 남아 있나요? 여행이요. 외국 가면 별천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호주랑 덴마크라는 다른 환경을 봤으니까요. 다른 환경을 보는 것만큼이나 저한테 영감을 주는 게 없어요. 그런데 산전수전 다 겪었단 이미지 자체가 부담스러워요. 어떤 분은 아르바이트를 일곱 개 하고, 어떤 분은 목욕탕에서 자고 그러는데 절대로 제가 제일 힘들었다고 얘기할 수가 없거든요. 전 어떻게 보면 편하게 살았던 거예요. 어느 순간부턴 음악으로 버는 돈으로 먹고살고 있고. 이런 얘기도 음반에 담고 싶어요. “난 지금 스스로 사기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독’이란 노랠 내놓고 저작권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것 아니냐.” < Anecdote > 전후는 없어요. 지금 제 머릿속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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