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젊은 피 – 1

2014.09.17장우철

여기 앳된 얼굴을 드러낸 소년 소녀들은 국가대표라서, 소위 한국 스포츠 꿈나무라서 모인 게 아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성적과 목표와 꿈으로부터 달린다.

최지혁 수영선수, 서울체중 1학년.

최지혁 수영선수, 서울체중 1학년.

 

 

 

 

2005년, 그러니까 당시 경기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박태환 선수는 꿈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요리를 좋아하거든요. 나중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응당 ‘올림픽’이며 ‘금메달’ 같은 말이 나올 줄 알았던 차에 꽤 당황스런 말이었다. 생각할 때마다, 그건 뭔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 아닐까 했다. 깡이니 정신력이니 하는 말로 시작해 마침내 올림픽 금메달과 애국가로 끝나는 한국 스포츠의 어떤 모형이 새로운 세대로부터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게 아닐까? 국토에서 열리는 수많은 경기를 관람하며 느낀 것도 내내 비슷했다. 선수들은 다만 즐기고 있다는 기운이 역력했다. 그걸 ‘승부욕이 없다’는 식으로 재단할 수도 있을까? 당초 과녁이 다른 말인데. 누구는 예선에서 탈락하고 누구는 태극 마크를 단 국가대표가 된다. 여지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꿈이 다른 누군가의 꿈과 겨루는 건 아니다. 각각의 이유로 여섯 선수를 만났다. 과연 여섯 명의 생각과 꿈은 여섯 개보다 많았다.

 

이훈, 유도선수, 덕현중 3학년.

이훈, 유도선수, 덕현중 3학년.

 

 

 

 

지혁이, 오늘 멋있다

“어떻게 최지혁 선수를 취재할 생각을 하셨어요?” 서울체중 신소희 감독이 물었다. 이유는 이렇다. 지난 5월 울산에서 열린 동아수영대회 남자중학 자유형 400미터 결승전에서 지혁은 9명 중 8위였다. 수영장에서 가장 늦게 물 밖으로 나온 지혁은 코치에게 거의 부축을 받다시피 하며 퇴장해 거기서도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면 저렇게 온몸이 땅으로 꺼질 수 있을까?

 

“지혁이는 재밌는 친구예요.” 신소희 감독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말하자면 지혁이의 꿈은 제2의 박태환이 아니에요.” 굳이 체육중학교에 들어가 밤낮으로 수영하면서, 더구나 그토록 경기 결과에 집중하면서, 수영선수가 되고 싶은 건 아니라는 말. 그럼 지혁의 꿈은?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해서 최대한 높은 게 장관이더라고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고 싶어요.” 오전 훈련을 끝낸 지혁이 식판에 고기를 가득 담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신 감독이 말한 ‘재밌는 친구’라는 말이 대번 떠올랐다. “체육중학교 와서 좋은 건 수영을 잘할 수 있어서. 안 좋은 건 아무래도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요.” 지혁에게 성적을 물었다. 왠지 운동하는 선수에게는 짓궂은 듯한 질문. “이번에 전체 1등 했어요.” 아니, 이건 ‘재미’치곤 좀 지나치지 않나? 여기까지 오니까 질문이 이렇게 바뀐다. 그럼 수영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는? “원래는 접영을 했어요. 근데 자유형을 한번 했더니 기록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자유형으로 바꿨어요. 자유형 장거리를 주종목으로 했어요. 근데 올해 한라배에서 200미터 1등을 했어요. 내년엔 단거리에 집중해볼 거예요.” 그러니까 지혁은 지금 수많은 가능성이 소용돌이치는 중이다. “지혁이는 태도가 좋아요. 애가 항상 웃는 얼굴이에요. 이해도 빨라요. 말로 설명하면 몸으로 익히는 게 체육인데, 지혁이는 머리로 알아듣고 몸으로 구현해내요.” 김현준 코치가 신나서 얘기한다. 그럼 혹시 지혁에게도 단점이라는 게 있나요? “아무래도 신장이….” 이번엔 신소희 감독이 거든다. “그래서 제가 기도를 해요. 키 작은 우리 아이들 무럭무럭 크게 해달라고요. 근데 지혁이 부모님 신장이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그 대답을 지혁에게 들었다. “아빠가 배구선수셨어요. 지금 아빠 키가 184인가?” 점입가경.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그 얼굴에 대해. “제 얼굴요? 네, 마음에 들어요. 엄마가 코가 멋지다고 하셨어요.” 마침 지나가던 수영부형들이 한마디 던진다. “지혁이, 오늘 멋있다.”

 

 

 

 

연세민, 체조선수, 경기체고 1학년.

연세민, 체조선수, 경기체고 1학년.

 

 

 

훈아 훈아 푸르른 훈아

올해 소년체전 유도 경기가 열린 경인교대 체육관은 객석이 한쪽에 몰려 있는 터라 마치 무대를 대하듯이 경기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따라 유난히 드라마 같은 장면이 많았다. 경남 대표로 나온 안민중학교 정인성 선수는 내내 뒤지다가 마지막 2초를 남기고 뒤집기 한판승을 거뒀다. 그러고는 곧장 객석을 향해(아마도 부모님이 계셨던 듯) 큰절을 넙죽 올렸다. 한판과 큰절이 거의 동시였다. 땀이 포도송이처럼 맺힌 앳된 얼굴에 눈물까지 줄줄 섞였다. 객석이 갈채로 요동쳤다. ‘스포츠’ 혹은 ‘현장’이 주는 감동이란 경기의 규모나 인기 선수의 활약만이 아니라는 게 여실한 순간이었다. 그런가 하면 경기 대표로 나온 덕현중학교 이훈 선수는 경기장 밖에서부터 ‘이상하게’ 시선을 끌었다. 밤송이처럼 솟은 까까머리를 하고서 훈이는 돗자리 구석자리에서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여느 선수들이 삼삼오오 까르르 몰려다닌다거나, 부모가 준비한 음식을 헐레벌떡 먹는다거나, 동료 선수 응원하느라 객석을 들락거리거나 하는 동안, 훈이는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다. 노래를 듣는 것도, 요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느낌이 들었다. ‘쟤가 이기겠다.’ 결과는 우승, 금메달이었다.

그런 훈이의 태도를 어머니는 다소 아쉽게 본다. “애가 내성적이에요. 경기장에서 뭔가 빠릿빠릿 기가 안 죽어야 되는데, 경기할 때나 안 할 때나 항상 똑같아 보여요. 들어갈 때 기합도 좀 넣으라고 늘 얘기하는데….” 덕현중학교 박상훈 코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훈이는 믿음이 있어요. 지고 있어도 안정감이 있어요. 애가 묵직해요. 군소리 하나 없이 정말 열심히 했다는 걸 아니까 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엊그제 전남 영광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8강에서 졌다. “속상하죠.” 훈이는 답이 짧다. 하지만 모자라진 않는다. 유도를 하는 이유? “1등 하고 싶어요.” 앞으로는? “잘할 것 같아요.” 장점은? “업어치기요.” 단점은? “발기술요. 연습을 더 해야 돼요.” 그렇게 단정하다가도 웃는 모습이 귀엽다며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이 귀까지 빨개진다. 발목을 타고 오르려는 개미를 무심하게도 떼어놓는 훈이에게 무서운 게 뭔지 물었다. “제가 이런 개미 같은 건 괜찮은데요, 날아다니는 건 좀 무서워요. 밤에요, 훈련하는데 이렇게 나방이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정말…. 어, 집중이 안 돼요.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잡아야겠다가 아니라? “네, 피하게 돼요.”

 

올해 훈이는 체급을 올렸다. 라이벌 선수와의 경쟁을 피한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다.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한창 클 때라서다. 천상 ‘유도 소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훈이에게 유도를 하지 않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물었다. “친구들이랑 시내 돌아다녀요. 여기 고읍동요. 뭐 막 먹으면서. 딱히 하는 건 없어요. 그냥 막 돌아다녀요.” 그 말이, 그 천진난만한 에너지가, 내일 온다는 태풍보다 시원하게 귀로 불어왔다.

 

 

 

세민은 떨지 않는다
연세민 선수를 경기장에서 세 번 봤다. 그런데 세 번 모두 같은 인상이 남았다. ‘참 야무지구나.’ 처음 한 번을 제외하고, 아니 세 번 모두 ‘팬’이 되어 그 경기를 본 셈이다. 세민의 경기를 보면서 작은 새 한 마리를 떠올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무엇보다 세민은 겁이 없었다. 떨어질 것 같으면 날아가면 되잖아, 그러는 것 같았다. “심판 선생님들도 세민이 연기하는 걸 보면, ‘어머 쟨 어쩜 저렇게 예쁘게 하니’ 그래요.” 경기체고 체조부 최정아 감독이 말한다. “마루운동을 해도 그렇고 세민이는 동작 하나하나가 참 뚜렷하고 예뻐요. 근데 실수가 있어요. 비교하자면 구효빈이라는 선수는 세민이처럼 한눈에 쏙 들어오진 않지만 훨씬 안정적인 경기를 해요. 점수는 효빈이가 높게 나오죠.” 여자 선수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종목이 평균대다. 대회를 치르는 동안 거기서 안 떨어진 선수가 없을 정도다. 인상이 갈리는 건, 어떻게 맞서느냐는 문제. 세민은 과감하고 거침이 없다. “연습할 때는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큰데요, 막상 대회에 나가면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나를 이쁘게 뽐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 말이 참 예뻤다.
세민은 아홉 살 때 체조를 시작했다. “처음 체육관에 갔을 땐 남자 선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물구나무를 서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세민은 금세 기술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공중돌기나 백핸드 같은 걸 하루 만에 배웠어요.” 옆에 있던 최정아 감독이 화들짝 놀란다. “진짜? 세민이 다시 봐야겠네.” 세민이 그치지 않고 말한다. 졸졸 시냇물처럼. “저 들어오기 전에 있던 언니들은 남자 선수들 따라서 체력운동을 하는 정도였는데, 제가 운동하면서부터 학교에 여자 체조 기구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땐 제가 잘하는 건지도 몰랐어요. 그냥 시키니까 했죠.” 세민이 체조선수라는 자각 혹은 체조로 표현하고 싶은 뭔가가 생긴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다. “평균대랑 마루운동에서 1등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신기했어요.” 세민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하지만 이내 개미소리를 냈다. “하지만 도마는 힘들어요. 제가 탄력이 없어서.” 이게 무슨 소린가? 그렇게 야무진 동작을 하면서 탄력이 없다니. “세민이가 가장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탄력이에요. 탕탕탕탕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거. 양학선 선수가 도마 하는 거 보세요. 탕탕탕탕 달려가서 탁 차고 샤샤샥 돌고 착 서잖아요. 세민이는 탄력이 부족하니까 잘하는 평균대에서도 착지가 불안하죠. 그리고 세민이가 지금 무릎이 안 좋아요. 그래서 이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에서 빠졌어요.” 순간, 세민의 얼굴이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것 같았다.

 

“부상 때문이니까 이번엔 어쩔 수 없었지만, 꼭 대표팀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모든 대회에 나가보고 싶어요.” 희망사항과는 별도로 자신을 냉정히 평가한다면? “저는 될 것 같아요.” 이번엔 그 대답을 들은 최 감독의 눈이 동그래졌다. “세민이가 이렇게 조잘조잘 자기 얘길 잘하는지 몰랐어요. 세민이 다시 봐야겠네.” 세민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모두 많다. “일단 무릎 부상이 있으니까 재활운동을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10월 전국체전에서 꼭 마음에 드는 결과를 내고 싶어요. 얼마 전 무릎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이단평행봉 한 종목이라도 해보자 맘먹고 대회에 참가했는데, 착지하다가 넘어졌어요. 분해서 눈물이 막 났어요.” 말하자면 세민은 도전자다. 그것도 아주 매콤한 도전자. 세민은 떨지 않는다. 평균대가 떤다면 모를까.

    에디터
    장우철
    사진
    목정욱, 안하진, 이강혁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