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재촉하는 부츠

 

[PRADA]
마드라스 퓨메 비콜로레 슈즈

만약 미우치아 프라다가 시인이었다면 그녀의 소네트는 진지하고 비극적인 동시에 갑자기 등 뒤에서 의자를 확 빼는, 황당한 클라이맥스가 있을 것이다. 런웨이에 선 모델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하는 미우치아의 방식 또한 기습적이다. 2014 가을 겨울 프라다 컬렉션은 화려한 색깔들, 섬세한 장식들, 사치스럽고 우아한 제스처들로 가득했다. 벨벳 슬립온이나 색깔이 연한 스웨이드 첼시 부츠가 어울릴. 그러나 모델들이 신고 나온 건, 투박한 고무창의 커다란 구두와 70년대 웨스턴풍 부츠였다. 약간의 퇴폐적 무드가 있는 이 염소 가죽 부츠는 사각형 앞코와 넓은 발볼에 발목은 높고 좁다. 버클은 트리플 스트랩으로 숨겼고 패치워크로 빨강 가죽을 덧댔다. 여러모로 볼 때,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고 오히려 못생긴 축에 드는 용모다. 그런데도 끌린다. 놀랍도록. 이 구두에 대한 평을 하자면, 예상치 못한, 그러나 즉각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적겠다. 얘기는 어차피 이렇게 끝나게 되어 있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어떤 장르에 속하건, 거기서 가장 탁월한 이야기꾼일 테니까. 강지영

 

 

 

 

[ERMENEGILDO ZEGNA COUTURE]

악어가죽 부츠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의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가 만든 악어가죽 부츠. 이름부터 유달리 긴 이 브랜드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의 최상위 브랜드로 출발해, 소재와 세부 면에서 지구 최고를 추구한다. 올해 스테파노 필라티는 도시와 자연에 집중했다. 그래서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재만 고른 후 현대적인 인공 소재와 뒤섞어버렸다. 캐시미어, 비큐나를 가져다 나일론과 케블라와 함께 사용하거나 코듀라로 울과 실크를 짜는 방식으로. 그가 컬렉션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는 브로큰 수트(미묘한 방식으로 전형적이고 상식적인 디자인을 비껴간 수트)와 올해 그의 옷 중 가장 빛났던 우아한 스포츠 룩을 위해 이 악어가죽 부츠는 필수 항목이었다. 값비싼 악어가죽을 사용했지만 투박한 디자인과 기능적인 사이드 고어 부츠 형태를 선택했다. 매끈한 앞코와 날렵한 옆선 대신 하늘이 무너져도 발가락을 보호해줄 것 같은 굳건한 워크 부츠 형태. 게다가 열 접착 기술이야말로 정말 초현대적이다. 이 부츠는 새로운 제냐의 확증이다.오충환

 

 

 

 

 

[SAINT LAURENT]

록 생로랑 부츠

첫눈에도 생로랑이 분명한 자태, 이름 또한 록 생로랑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앵클부츠는 역시 ‘록’적인 요소가 가미돼야 제멋이 난다. 눈에 띄게 화려한 부츠라고 해서 누구나 에디 슬리먼이나 데이비드 보위가 될 필요는 없다. 그들처럼 하늘하늘하고 가느다란 몸을 만들려고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어설프게 흉내 내면 웃음거리만 될 뿐. 유스 컬처를 부활시킨 생로랑의 에디 슬리먼이 의도한 건 애초부터 전형적인 로큰롤이 아닌 캘리포니아식 하드코어다. 세상은 변했고, 록도 변했다. 에디 슬리먼이 만든 디올을 입고 약에 절어 기타를 부수던 피트 도허티 대신, 천진하고 밝은 표정으로 생로랑을 유연하게 소화하는 해리 스타일스가 등장한 것처럼.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은 여전히 빈틈없이 날씬하지만 분명 그 기분은 달라졌다. 그래서 매끈한 소가죽에 알알이 총총 박힌 이 부츠도 확실히 다른 로큰롤 무드의 구두와는 다르다. 게다가 단신들에게 희소식, 굽까지 높게 달렸다. 김경민

 

 

 

 

[BOTTEGA VENETA]
에스프레소 버클 부츠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가 독일 출신에 건축을 전공했다는 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담백한 소재와 담담한 장식, 그리고 구조적인 형태를 떠올리면, 꼭 패션이 아니었어도 그를 건축 잡지에서 자주 볼 수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보테가 베네타에서 남성복을 선보인 2005년부터, 마이어는 가을이면 늘 남자 부츠를 만들었다. 대부분 운동을 꽤나 한 것 같은 그의 몸처럼 단단했고, 가끔은 그의 희끗희끗한 수염처럼 오묘하고 낡아 보이는 워싱을 해놓기도 했다. 모두 사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계절마다 그의 부츠를 기다리는 사람도 생겼다. 쓸데없는 장식이나 괜한 겉치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밋밋하거나 지루하지도 않은 신발들. 이번엔 흔한 벨트 버클 대신 스키 버클을 단 앵클부츠다. 신고 벗을 때마다 어딘가에 쭈그리고 앉는 궁색한 행동은 하지 않아도 되고, 최상급 송아지 가죽이니 발뒤꿈치가 까질 일도 없다. 에스프레소라는 색깔 이름은 또 얼마나 멋진지. 박나나

 

[HERMÈS]
힘 앵클부츠

공항 수화물 트레이에서 시커먼 커버를 씌운 리모와 토파즈를 종종 발견한다. 아주 가끔은, 애써 제작한 투명 비닐 커버를 씌운 것도 보이곤 한다. 그들에게 흠집에 약한 토파즈 알루미늄 표면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보톡스를 맞는 피부 같은 건가? 좋은 가죽은 흔적을 간직한다. 그래서 에르메스 부츠의 매끈한 가죽을 보면, 굳이 아주 비싼 유화용 캔버스를 산 가난한 화가의 심정이 된다. 사진 속 신발은 에르메스의 힘 앵클부츠다. 아주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을 썼고, 정성껏 도금한 스테인리스 스틸 버클을 달았다. 이번 가을 겨울을 대비한 에르메스 코리아의 ‘샘플’ 중 하나다. 샘플이라는 걸 굳이 강조한 이유는 갑피에 드러난 갖가지 흔적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이 부츠를 촬영에 썼고, 그러느라 긁히고 비도 맞았다. 새것으로 서울에 도착한 이후의 모든 순간이 부드러운 가죽 표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포토샵’으로 지우거나 다듬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부츠는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멋진 물건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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