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DITOR’S LETTER – 고양이의 편지

2014.09.23이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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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 좋고도 무지한 삶 중에 이렇게 가을 냄새를 많이 맡은 적이 없습니다.

공원의 해가 빨리 지고, 서쪽 아파트 사이로 분홍색 구름이 흐릅니다.

저녁에 찍은 영화처럼 공기 입자가 거칩니다. 그리고 우묵한 은색 그릇 같은 하늘.

10월을 감지하기 위해선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뼈와 근육, 깊게 저항하는 어두움까지.

침묵도 필요합니다. 나와 종이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침묵.

풍경으로 만든 나라와 개인의 습득 방식 사이를 채우는 침묵.

이젠 아는 사람들과 여전히 모르는 사람 사이를 채우는 침묵.

안 보이는 선물에 감사하듯 꿈 몇 개가 사라졌습니다. 그걸 꿈이라고 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것들은 더 늘어났습니다. 기억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과거는 빨리 무르익었지만 더는 성숙하지 못한 관계. 현재는 갈망하면서도 물러서버린 순간.

미래는 아직 맛보지 못한 군더더기.

어떻게 숨을 쉬건 어떻게 사랑받건 시간은 변합니다.

빛이 변하듯이, 잎사귀가 변하듯이.

인정받기 원하는 침묵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에게 나는 좋은 친구일까. 비록 소수가 그렇게 부르지만.

나는 아름다움을 배웠을까. 비록 한가할 때 찾았지만.

별난 공포심 속에서 짧은 편지를 쓰곤,

모든 기억은 배경으로 다른 이의 얼굴을 원한다는 말로 맺습니다.

당신에겐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당신은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이.

10월은 고양이처럼 너무나 독립적이니까요.

    에디터
    글 / 이충걸(GQ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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