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제적 종이 10 가지

 

 

01 1985년, 우표를 모았다. 어떤 우표는 다른 어떤 우표보다 더 예쁘다는 사실, 더 귀하다는 정보, 더 비싸다는 문제, 결국 뭘 고를 것이냐는 판단이 (그땐 몰랐지만) 다 있었다.

 

02 1988년, <포토뮤직>이 창간했다. 당시 스타를 다루던 3대 잡지인 <하이틴>, <여학생>, <주니어>와의 차별점은 이름에 나와 있듯이, 사진이었다.

 

03 1991년, <배철수의 음악캠프> 토요일 코너는 ‘아메리칸 탑 40’였다. 빌보드 싱글 순위를 일주일 후에 알려주는 식이었다. 미국도 아닌 한국에서, 서울도 아닌 논산에서 나는 뭐라도 읽고, 모으고, 붙들어야 했다. <핫뉴스>는 EMI/계몽사가 무료로 배포했다.

 

04 1999년, 서울 일각에서 ‘테크노 파티’라 불리는 이벤트가 시작됐다. <아우라소마>는 한 달에 한 번 열렸는데, 거기에 어떤 ‘태도’로 입장하는가,라는 질문이 늘 따라다녔다. 어떤 음악을 어떻게 좋아하는 것이 어울리며, 심지어 옳은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05 2000년, 대학에서 사진 수업을 들었는데, 가만 보니 내가 찍는 모든 사진엔 어떤 식으로든 인물이 필요했다. 저기 사람이 누워 있어야 할 것 같으면 타이머를 누르고 얼른 뛰어가 누웠다. ‘셀카의 왕’ 이라느니, 친구들과 낄낄대다가도 어쩔 수가 없었노라 끝내 변명한다.

 

06 2001년, 처음 유럽에 갔다. 그 후 모든 게 달라졌다 말할 수도 있으려나? 그때 쓴 유레일패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이름, 볼프강 틸먼스.

 

07 2002년, 이런 식으로 생긴 노트를 여러 권 샀다. 낙서도 하고, 필기도 하고, 확 뜯어 편지도 쓰고.

 

08 2009년, 혜원 신윤복에 빠졌다. 온통 미궁 속인 그를 생각하면 조선과 일본과 근대와 예술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꼬집는다.

 

09 2011년, 멀티숍 램LAMB의 쇼핑백을 친구들이 만들었다. 그걸 만든 게 친구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서울에서 예쁜 것, 하면 대번 이게 떠오른다.

 

10 2014년, 도쿄에 갔다가 1980년에 나온 잡지를 봤다. 놀라웠다. 그것으로부터 다시 새로울 수 있다는 이 순진하고 어엿한 기쁨이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