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데카당스

톤 헤켈스가 크림색 실크 스카프를 매고 휘파람을 불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 미소년의 현현 같은 표지에서 짐작했겠지만, 다섯 번째 <GQ STYLE>의 주제는 ‘벨 아미BEL AMI’입니다. 벨 아미는 아름다운 친구를 뜻하는 불어이자, 기 드 모파상이 쓴 프랑스 탐미주의 고전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벨 아미>의 주인공 조르주는 모든 사람에게 벨 아미라는 칭송을 듣는 드물게 아름다운 친구입니다. (아름답다는 품사로 남자를 형용하는데 뭐 그렇게 민망하지 않네요.) 이 작품 이후, 유럽에선 댄디와 리옹에 이어 벨 아미가 성층권에 떠 있는 멋진 남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지큐 스타일>의 핵심은 예쁜 것이 아닌 아름다운 것입니다. 단순한 외양이 아닌 의상을 고르는 기준, 그것을 착용하는 방식, 취향과 취미, 습관과 태도가 포함된 더 넓은 범위, 아주 현대적이며 이 시대에 적합한 것…. 수행해야 하는 남자로서의 임무, 강요된 남성성 같은 낡은 얘긴 더는 하고 싶지 않아요. 중요한 건 링컨 자동차의 경적처럼 요란한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미스터리와 차분하고도 생경한 가능성이죠. 사실 아름다운 친구의 팔레트는 무척 흔합니다. 당신의 상상, 당신의 내면에서조차 그들과 소주 파티를 벌일 만큼 흥청망청한 비율로 존재합니다. 부정할 수 없도록 눈부시고 현기증 나는 스펙트럼입니다.

벨 아미를 발음하자니 잇따라 몇 가지 것들이 생각납니다. 먼저 <벨 아미> 문고본입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펴냈지만, 펭귄 클래식 출판본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표지엔 검정색 프록코트에 실크 애스콧 타이를 매고 수염을 다듬은 남자가 빨간 벨벳을 씌운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퇴폐적이거나 천진하거나 여위거나 야행성 무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연스럽습니다.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은, 그냥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 같은 룩은 세상에서 조명 받지 못할 무미한 순간은 없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편안함은 그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지요. 하긴 누군들 그 좁은 버스 안에서 내장이 터지고 싶겠어요?

그 사람의 우아함을 시기하려고 해도, 벨 아미의 한 문장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파리에선 수트가 없는 것보다 침대가 없는 편이 낫다.’
<벨 아미>라는 영화도 있군요. 데클란 도넬란 감독은 왜 조르주 역할로 로버트 패틴슨을 택했을까요. 코와 하관이 따로 노는 뱀파이어만 생각나는데도요. 젊은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리버 피닉스정도면 그런대로 적역 같지만, 이젠 어쩐지 그들에게서 상처받기 쉬운 얇은 피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 가죽 소파 냄새와 파우더 향이 나는 에르메스의 벨 아미 향수를 잊을 뻔했습니다. 마리아주 프레르의 벨 아미 차는 녹색 찻잎에 빨간 꽃잎이 섞인 듯한 화려한 블렌딩 때문에 코끝에 참 오래 남습니다. 첫 맛은 부드러운 바닐라 향이되, 끄트머리엔 쓴맛이 확 달려들지요. 과연 아름다운 것들은 가시를 숨기고 있다는 말이 한 점 틀리지 않네요.

파리 생 제르망 데프레의 벨 아미 호텔에 묵을 땐 캐러멜과 소금이든 초콜릿이 매일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침 식당에 잼과 버터가 그렇게나 많은 호텔은 생전 처음이었어요.
이제 이야기해봅시다. 왜 하필이면 지금, 벨 아미일까요?
2014년 가을 겨울 남자 패션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찬양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해 숭배로 고개 조아리며 끝났습니다. 얼마 전까지 서핑 룩과 아메리칸 스탠더드 룩, 보이 룩이 창공을 울리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광경입니다. 화려한 색깔, 섬세한 장식, 사치스러운 제스처, 프라다의 잠자리 날개 같은 셔츠와 스카프, 루이 비통의 풍성한 숄칼라 빅코트, 드리스 반 노튼의 여우털 목도리와 마리아치 블라우스, 랑방의 섬약한 실크 팬츠, 하이더 아커만의 잎맥 같은 실크와 벨벳.
18세기 프랑스 귀족이 현세로 이사 온다면 미와 데카당스가 결합된 이런 옷을 입지 않을까요? 망토와 판초, 스톨과 토가가 이렇게 지천인 계절이 언제 또 다시 올라나요?
그런데 제이 더블유 앤더슨이 만든 하이웨이스트 팬츠를 입으려면 다이어트부터 해야 할 거예요. 물론 누군가를 따라잡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럴 필요도 없죠. 하지만 데미안 허스트가 앤디 워홀의 회사에서 같은 작업을 하거나, 케이트 모스가 트위기를 모방하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당신에겐 다이어트가 필요하단 말이에요.
우선 ‘조촐한’ 디올 옴므 브로치로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릴리 오브 밸리라는, 다정한 발음이 혀 위로 굴러가는 은 브로치요. 하지만 잊으면 곤란해요. 변화하라고 유인하는 패션의 힘이 강렬하게 되살아날때도, 무덤 같은 도시의 익살맞은 후광 아래 바람 요정처럼 캣워크 하진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아름다움에는 어느 순간에라도 관념적이고도 정제된 성향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왜냐하면…, 풍자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삶에는 ‘디테일’이 모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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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편집장] 2001년부터 GQ KOREA 편집장을 맡고 있음. 잡지를 통해 문화와 스타일을 다루어온 그 시간 동안, 정작 자신이 얼마나 세속적인지 허무하게 깨닫게 됨. 그래도 잡지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해서 해보지 않은 ‘여타의 것’들에 대한 어떤 아쉬움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