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의 동물원

 

회기동 단편선은 기타 하나 들고 무대에 오를 때도 꽤 동물적이었다. 보컬은 맹수 같았고, 눈동자부터 발끝까지 가만히 두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굳이 음반을 기대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라이브에서 매번 새로운 모습과 연주를 보여주는데, 그런 음악과 공연을 음반에 묶어둘 이유가 별로 없어 보였으니까. 솔로 음반 <백년>과 EP <처녀>는 전환점이었다. 그는 이전부터 싱어송라이터였지만, 그보다 좀 더 큰 범위의 용어로 그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이를테면 프로듀서. 혹은 음반에 참여한 거대한 악단을 이끄는 지휘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 그는 스스로를 선장이라 칭한다. 그렇게 새로 조직한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이름으로 다시 공연장에서부터 시작했다. 혼자서도 동물 같던 단편선이 무리를 이뤄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타, 바이올린, 퍼커션, 베이스의 생소한 구성으로 <백년>과 <처녀>처럼 풍부하면서, 거기에 없던 소리들을 공연장에서 뿜어냈다. 악기들은 제 소리를 숨기는 법이 없었다. 연주는 자유롭게 확장되고, 때로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우당탕탕 부딪치는 와중에 각자 제자리를 찾았다. 서로 어떻게 지내야 한다는 규칙 없이도, 결국 으르렁대다 서로의 깜냥을 알아보고 질서를 찾는 정글처럼. 물론 정글의 위계보다는 각자의 역할을 이해하고 한 곳으로 배를 이끌고자 하는 에너지가 먼저 드러났다. 단편선과 선원들이 그동안 공연장에서 갈고 닦은 곡들을 바탕으로 데뷔 음반 <동물>을 발표했다. 동물적 음악가들을 조율하는 선장 단편선으로, 프로듀서 회기동 단편선이 다시 한 번 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