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번역가의 한국어

2014.10.07손기은

번역가는 매 순간 드넓은 언어의 광장을 헤맨다. 정말이지 드넓은 광장이다.

Book판형

한글로 번역하는 일은 어렵다. 언어가 장벽이라면 번역은 장벽을 부수지 못한 채 힘겹게 뛰어 넘는 쪽이다. 공식이 명쾌해 기계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한 문장을 백 명의 번역가가 번역 했을 때,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없다. 한글이 우수해서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외래어 발음 표기를 정확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번역을 수월하게 해주진 않는다. 폴란드어의 오묘한 발음 cy(쯰), ci(치), czy(취)를 구분해서 쓸 수 있다고 한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치’ 로 통일시켜야 하는 문제와 맞닥뜨리고 만다.

한글에서 한국어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는 영어에 비해 문장 안에서 명사의 비중이 높아지면 유난히 딱딱해진다. 영어의 명사를 그대로 명사로 번역해 ‘군림에 대한 욕구’라고 쓰면, 원문이 ‘군림하려 들고’의 느낌을 냈을지라도 그보단 엄격하게 느껴진다. 영어의 of나 일본어의 の를 ‘~의’로 그대로 바꾸는 것도 어딘지 어색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보다 ‘내가 살던 고향은’이 덜 어색하다. 원문 그대 로 ‘책상의 길이’라고 번역해도 틀리지 않지만, 사실 ‘책상 길이’만으로 충분하다. 이런 장벽들이 한국어 번역의 현재를 설명하는, 혹은 해명하는 자료가 될 수 있을까? 결론을 먼저 끌어오면, 그렇지 않다 쪽이다. 한국어는 죄가 없다.

<번역과 번안의 시대>의 저자이자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박진영 연구교수는, 한국어 번역의 문제는 언어에서 시작한다기보다 경험과 역량의 문제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종종 중국이나 일본이 한자에 의존하기 때문에 각 한자를 조합해 새 어휘를 만드는 조어 능력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번역 경험과 역량이 충분히 축적된 덕분입니다. 우리에겐 한글로 번역하려는 노력, 한글로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내는 경험이 충분하지 않을 뿐이죠. 수학, 화학에서 쓰는 전문용어, 학술어도 물론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효율성이나 국제화라는 미망에 갇혀 번역하려고 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을 현대 한 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까닭 역시 한자에 담긴 의미와 뉘앙스를 한국어로 이해하고 변환시켜 한국어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창조적인 노력을 홀대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번역 강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서구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번역어’가 일본의 근대 개념과 어휘의 뼈대를 받치고 있다. 지금 우리도 자주 사용하는 ‘사회’, ‘개인’, ‘연애’, ‘근대’, ‘존재’와 같은 단어들은 거듭된 일본어 번역을 통해 서서히 정립된 새로운 어휘다. 야나부 아키라가 1982년에 쓴 책 <번역어의 성립>을 통해 그 과정을 꼼꼼히 추적했다. 예를 들어, 1862 년 편찬한 <영화대역수진사서>라는 영-일 사전에는 society가 ‘동료, 교제, 일치’로 나와 있다. 그 후 ‘회사’라는 의미가 추가되기도 했다가 1875년에 들어서야 ‘사회’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유럽과 미국을 통째로 번역해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만의 번역어는 그대로 한국어 에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개화기에 유행한 번안 소설은 초창기 한국어 번역의 특별한 사례로 꼽힌다. 번안 소설은 서구 문학의 줄거리를 가져와 우리식으로 개작한 소설이다. 박진영 교수가 말한다. “1910 년대의 번안 소설은 지금의 고등학생이 읽기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지금의 어휘와 문체를 닮아 있습니다. 의외로 서양 소설의 냄새도, 일본 소설의 냄새도 전혀 안 나요. 한국어의 개성이라고 봐야 하고, 그 말은 반대로 우리가 글로 쓰는 한국어는 번안소설을 통해 기틀이 잡혔다고 생각해볼 수 있죠.” 그때 그 어린 문자였던 한글은 번안과 번역(특히 성경)으로 성장했고, 근대적 언문일치체도 자리 잡혔다.

그렇다면 지금의 번역은 한국어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 여전히 어려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는 한 가지. 번역은 ‘번역가 개인의 한국어’라는 사실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표현은 어딘지 무뎌진 것 같지만 의미는 팔팔하다. 매 순간 번역가가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책장을 넘어 밀려오고, 머릿속과 몸속에 축적된 한국어를 골라가며 그만의 리듬과 에너지를 번역에 쏟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창작 한 번역가의 한국어는 다시 우리의 한국어에 영향을 미친다. 만들어진 공식에 따라 문장을 옮기는 일이 번역의 전부라면, 뛰어난 번역가 열 댓 명이 책 한 권을 나눠서 번역하면 그만인 일 일 테다. ‘번역가 고유의 한국어’를 인정할 때 새로운 어휘나 문체가 탄생하고, 지금까지 없었던 한국어 발전의 움직임이 생길 수 있다.

그 움직임의 공간을 만드는 데는 편집자의 역할이 크다. 워크룸 프레스의 김뉘연 편집자는 말했다. “편집자가 번역 전체의 틀을 보지 않고 문장 하나하나를 교정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번역가는 원작을 연구하고 원작자의 전체적인 작품세계에서 원문이 어떤 위상인지 파악하죠. 그런 다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체와 어휘 안에서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편집자가 교정 기준에 따라 몇 가지를 지적하고 수정할 수 는 있겠지만, 그것이 맞는 교정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그 번역가의 언어 안에서 더 어색하게 튈 수도 있습니다. 언어의 최극단에서 어휘를 확장해나가야 되는데, 대중이라는 혹은 독자라는 막연한 실체를 두고서 교정하는 것 역시 언어를 제한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번역가 최세희도 보탠다. “좋은 번역을 위해선 어떤 편집자를 만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면서도 “번역가가 원문의 분위기를 포착하지 못하면 아무리 유능한 편집자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걸 어떤 식으로 옮겨야 그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건 번역가만의 능력이다.

발전은 어느 방향에서든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직역, 의역과 상관없이 번역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을 의식할 때 이뤄진다. 번역가 김희재는 <번역의 탄생>의 머리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원문에만 얽매이는 직역이 ‘낮은 포복’이고 원문보다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중시하는 의역이 ‘고공 비행’이라면 나는 아슬아슬 한 ‘저공 비행’이 좋다고 생각했다. (중략) 이미 외국어에 많이 물든 한국어에 외국어 문체의 흔적을 더 남기려고 애쓰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원문에서 멀어 지는 고공 비행의 길로 날아올랐다.” 김희재는 토박이말의 사용으로 한국어를 캐내는 데 몰두한다. 그는 지금 옥스퍼드 대학에서 ‘동아시아 영어 사전의 역사’를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은 지난 5월 고려대에서 열린 ‘번역대담 프로젝트: 번역을 묻다’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외국어에 맞춰 번역하다 보면 우리 말의 숨은 힘들을 낡은 창고에서 기구 꺼내듯 해야 합니다. 적당히 번역(의역)하려고 하면 우리말이 가진 힘을 다 이 용할 수 없어요. 우리말의 ‘묵은 힘’을 찾아내 충격을 주고 골격을 흔드는 것이 번역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경계 없이 넘나들고 번역된 텍스트를 급진적으로 소화하는 지금은, 순화하거나 다듬지 않고 오히려 번역의 기운을 살리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번역일지도 모른다. 배수아나 정영문 작가처럼 번역투의 문장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정착시킨 문학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 번역투나 어휘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한국어 화하는 것은 이미 자연스럽다. 번역가 김희영은 최근 번역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 간을 찾아서>의 역자 후기를 통해 외국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낮섦성’에 대한 체험이고, 번역 느낌이 나는 조금은 생경한 표현은 다른 세계로의 침잠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전의 김창석 번역과 달리 첨삭과 첨언을 배제 하고 원문의 미세한 떨림을 그대로 포착하고자 했다. “매끄럽게 하기 위해 문장을 짧게 끊을 수 도 있지만, 원작자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이 의미에서 저 의미로 넘나드는 끝없는 의미의 미끄러짐을 전할 수 있을까요?” 김희영이 선택 한 번역도 그만의 한국어다.

워크룸 프레스의 김뉘연 편집자는 문학총서 ‘제안들’의 일환으로 장 주네의 시 번역에 착 수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다. 프랑스 정형시인 알렉상드랭을 번역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운율과 자수를 포기하고 시가 읊는 정확한 뜻을 옮기기로 했다. “번역이 불가능한 영역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번역의 최전선에 있다고도 하는 분야가 시입니다. 어차피 장 주네 시의 특성을 살릴 수 없다면 기존 번역을 바꿔보는 게 어떨 까 생각했습니다.”

풍성하다면 풍성하고, 넘친다면 넘치는 번역의 시대다. 누구의 한국어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언어 사이를 끊임없이 가로지르는 번역가의 고유한 한국어는 제한이 많은 만큼 치밀하게 농축된, 지금의 한국어다.

    에디터
    손기은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