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공기와 함께 떠오르는 영화 네 편

 

 

 

<언더그라운드> 

이 영화는 전쟁을 오직 ‘환상’적으로만 다룬다. 참혹한 학살, 존엄성, 반성과 희망 대신 흥겨운 음악과 감정을 못 이겨 온몸을 비트는 춤, 황금빛 조명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언더그라운드>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로 이전 해, 1994년엔 <쉰들러 리스트>가 아카데미를 휩쓸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홀로코스트 속에서 핀 인류애를 찾았다. 끔찍한 학살 속에서 찾은 아름다운 빛. 하지만 에밀 쿠스트리차는 의심하고 묻는다. 전쟁 속에서 사람은 도대체 어떤 것에 빠지나? 이 영화는 내내 질문만 한다.

 

<순응자>
<몽상가들>로 유명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서른한 살에 만든 초기작. 스크린이라는 공활한 평지 위에 어떻게 쇼트를 세우고 펼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성취를 다른 말로 포기와 몰입이라고 한다면 <순응자>는 오직 아름다움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빼곡하게 이뤄낸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눈이 침침할 때 한 번씩 좋은 장면만 꺼내서 봐도 눈이 트인다. <그레이트 뷰티>를 통해 “도대체 이탈리아 영화는 뭘까?” 하는 질문이 생겼다면 더더욱. 물론 답은 찾을 수 없다.

 

<피오릴레>
작년 <시저는 죽어야 한다>로 오랜만에 이름을 비춘 타비아니 형제의 1993년 작품. 형제의 이름은 줄긋기처럼 <파드레 파드로네>와 <로렌조의 밤>을 향하지만, 우아함만 따지자면 <피오릴레> 쪽이다. 영화의 구조는 일종의 환상 체험이다. 2백 년 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자동차로 통과한다. 10년 전(영화가 개봉된지 12년 후)에 국내에 선보였을 땐 좀 낡고 촌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아름다운 결이 보인다. 하필, 지금 세련된 것들이 20년 후에 어떨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음식남녀>
공활한 맘을 지금 당장 채울 수 있는건 역시 음식밖에 없다. <음식남녀>는 그 유명한 도입 신부터 식욕을 자극한다. 반전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그건 처음 봤을 때뿐, <음식남녀>를 다시 보면 침부터 고인다. 홍상수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모른 소주의 맛’을 기대하듯이 <음식남녀>를 보면 대만의 음식은 ‘내가 전혀 모르는 중국음식’일 것 같다. 게다가 힘을 뺀 이안이 드라마에 집중했던 초창기 영화. 뛰어난 화가는 드로잉을 잘하듯이 이안의 모든 영화는 차진 이야기부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