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을 하고 있네

한국말을 하고 있다. 한글을 쓰고 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가 그렇다. 그것에 대해 새삼 생각이란 걸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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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라는, 어떻게든 한글 체계로부터 엇나가는 듯한 이름의 밴드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한국말을 할 줄 아네 / 나 한국 말을 하고 있네 /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 나 냐너녀노뇨누뉴느니….” 제목은 ‘한국말’이다. 누구나 마찬가지, 모국어를 선택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저 노랫말처럼 우리는 (어쩌다 보니) 한국말을 할 줄 알고, 한국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울러 한글로 쓰고 읽으면서.

언어는 변한다. 자물쇠를 채울 필요도, 의무도 없다. 다만 요즘은 그 속도를 겉잡을 수 없게 됐다. 어느 날 누가 웃자고 ‘느낌적 느낌’ 같은 말을 썼다 치자. 온갖 미디어를 통해 유행어로서의 역할까지 두루 거치며 닳을 만큼 닳았다고 판단할 무렵, 어느새 그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회화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한 디자이너가 새로 바꾼 자신의 가게 인테리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쪽 코너는 느낌적 느낌으로 행어를 배치해보았는데요.” 누구 웃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고, 누구도 웃지 않았다. 그건 차라리 하나의 단어로 쓰이고 있었다.

어디 뜻밖의 속도뿐일까? 보이는 모든 전원을 끄지 않는 한, 우리는 세상의 모든 입술에 마이크를 댄 듯한 상황과 세상의 모든 자판에 돋보기를 댄 것 같은 광경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변화라고밖엔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다. 하면 말이고, 쓰면 글이다. 세심한 구분은 숫제 불필요해 보인다. 맞춤법, 띄어쓰기, 바른 말 고운 말, 정확한 한자, 오문과 악문, 품사와 문장성분, 언젠가 학교에서 들어본 말에 불과하지 않나? 문제의 중함을 아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언어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있다. 특히 문자와 글을 버리는 중이고, 말을 말법으로 다듬지 않는 중이다. “화장실은 나가서 오른쪽이세요”라는 말이 틀렸음을 알든 모르든 그저 상관없이 쓴다.

말하자면 언어가 오로지 회화에 국한되려는 양상이다. 콩글리시에 민감하든, 일본말이라며 배격하든, 북한말이라고 재밌어하든, 회화라는 맥락 속에서 모든 건 말이든 막걸리든 별 상관이 없어지고 있다. 알아들으면 그만. 때맞춰 ‘소통했노라’는 외침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말해 뭐 해, 말이면 다다.

얼마 전,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선생님의 의견인즉, 한글은 저 탁월한 세종께서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친히 만들어준 언어이니, 곧 ‘어리석은’ 백성의 테두리에서 쓰일 만한 언어라는 한계를 처음부터 가진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 언어의 어떤 우수성과는 별도로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한국말로 말하고, 한글로 쓴다. 국어사전의 절반이 넘는다는 한자를 옆으로 밀어 놓은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마침 시월 구일 한글날을 핑계 삼아 한글을, 한국말을 한번 다양하게 거들떠보기로 했다. 유난히 말이 말 같지 않은 시절의 우발적인 억하심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걸 읽고 쓰고 말하는 누구 에게나 책임이 있는 숙제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