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라는 말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인도네시아…. 8월 말 동남아시아는 우기였고, 비수기였다.

‘콜로니얼’ 쿠알라룸푸르 마제스틱 호텔에 도착한 건 아침 여덟 시. 간단히 짐만 맡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걸, 1930년대에서 나타난 듯한 차림의 직원 셋이 짐을 나눠 들더니 아예 방으로 ‘모시고’ 가서는 소파에 앉혀놓고 체크인 절차를 밟았다. 그 방의 이름은 콜로니얼 스위트. 사실 ‘콜로니얼colonial’이라는 말은 이번 동남아 여행의 첫 번째 힌트이자 물음표였다. 건축양식과 서비스를 표현하는 말로, 서커스 공연의 테마를 설명하는 단어로, 툭툭에 앉으면 자연스레 나오는 자신의 포즈를 보면서, 그 말은 걸핏하면 튕겨나왔다. 정오를 조금 지나 로비로 내려오자 재즈가 태평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았을 것 같은 선풍기 소리가 리듬을 더했다. 지금 여기 나는? 그 질문은 동남아를 여행하는 내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차별, 계급, 인종 같은 위태로운 말이 미소와 화폐와 풍경 속에 야릇하게도 섞여들었다. 돌아온 후에야 알게 된 사실 하나. 동남아는 영토 때문에 전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낙원 낙원이라는 이미지는 늘 여름에 붙박인다. 반짝이는 잎사귀와 색색깔 생명들. 척박한 아프리카도, 미지의 아마존도 아닌 동남아는 여행으로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낙원의 이미지다. 루앙 프라방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 쾅시 폭포가 있는데, 주차장과 곧장 이어지는 아름다운 계곡은 오히려 신이 낙원이라는 이미지를 거꾸로 본뜬 것만 같았다. 거기서 노니는 남녀에게서 아담과 하와를 떠올리기란 어찌나 간편한지. 그런가 하면 타이 남서쪽 안다만 해를 품은 크라비에도 낙원은 쉬이 깃들었다. 흩어진 섬으로 떠나려 아오낭 해변에서 배를 타는 이들은 어디까지나 더 은밀한 낙원을 찾는 것이다.

남자들 이슬람 문화권 도시의 좀 번화한 곳이라면, 으레 남자들이 몰려 있는 광경을 본다. 대개는 카메라나 휴대전화 같은 전자기기를 취급하는 가게 앞인데, 뭔가 구체적인 일을 도모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쿠알라룸푸르 여느 가게 앞에도 남자들이 바글바글하다. 그들은 1링깃짜리 잎담배를 사서 씹거나, 뭘 좀 먹거나 할 뿐, 도무지 거기 왜 그러고들 모여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긴, 동네마다 한둘씩 있는 복권방에 가면 서울에도 그런 남자들 꽤 있지만.

 

불교 시엠립 타프롬 사원에 앉아서 멍해지길 반복했다. 엄연히 눈앞에 놓인 풍경을 오히려 허구로 인지하려는 감각이라니.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일출을 맞으며, 천 년 전과 천 년 후를 닿을 듯이 가깝게 느끼는 건 그저 여행자의 망상일 텐가? 주황색 장삼을 걸치고 루앙 프라방 길거리를 흐르듯 걸어가는 어린 승려의 리듬과 아직 가보지 못한 미얀마 바간의 수많은 사원들 사이엔, 무슨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불교를 몰랐다. 갑자기 석굴암이 보고 싶어 와이파이를 찾아다녔다.

솜탐 동네 사람들이 하도 맛있게 먹기에, 일단 시켜놓고 이름을 물었다. 절구에 라임을 빻던 여자는 웃기만 했고, 옆에서 우적우적 그걸 씹던 남자가 ‘솜탐’이라고 말해줬다. 그땐 파파야를 채친 것인지도 몰랐다. 이 기막힌 ‘겉절이’는 뭐지? 허겁지겁 맥주를 비웠을 뿐. 서울에서 ‘솜탐’을 검색했더니 ‘깔끔하다’는 방콕의 한 솜탐집 얘기로 가득했다. 방콕만 해도 솜탐집이 오백 곳은 넘을 텐데, 그저 ‘나도 거기 가봤노라’ 인증하는 여행법에 골주머니가 내후년까지 흔들렸다.

우기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말에 길들여진 이에게 건기와 우기는 어쩐지 고통스런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말라 비틀어지거나, 홍수가 철철 나거나. 8월 말 동남아시아는 우기였다. 그래서 드라마틱했다. 갑자기 짧게 쏟아지는 비는 그 자체로 거역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게다가 비 그친 뒤 미친 듯 쏟아지는 햇살이란! 시엠립 타프롬 사원엔 비 오는 아침에 한 번, 햇볕 쨍쨍한 오후에 한 번, 두 번 갔다. 전혀 다른 곳이 있었다. 새도 다른 새가 울었다.

 

메콩강 흙탕물. 그 속에 무엇이 살긴 사는지, 온통 휩쓸려 떠내려갈 뿐인지, 이렇게 보기나 할 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티베트에서 발원해 남중국해로 흘러나가기까지 무려 4천 킬로미터를 흐르는 강. 상공에서 내려다본 메콩강은 뱀도 저런 뱀이 없을 듯이 꿈틀거렸다. 루앙 프라방에서 해질 무렵 배를 탔다. 사공은 상류로 천천히 배를 몰다가 불현듯 강 한복판으로 배를 꺾더니 엔진을 껐다. 그러고는 흘러간다. 유유히. 강의 리듬, 강의 시간. 해가 졌다.

아이 동남아를 여행기에 으레 등장하는 눈 맑은 아이들. 하필 거기서 어떤 ‘폭력’을 느꼈으니 절대 사진 찍지 않겠노라 새삼 다짐을 했더랬다. 날 좀 찍어달라며 막무가내 팔을 당기는 아이들을 만날 줄 모른 채. 한편, “사바이디”하며 풀섶의 귀뚜라미 같은 데시벨로 인사하는 여자애를 만나기도 했다. 시장 한쪽에서 원피스를 팔던 그 여자애의 얼굴 위로 대전에 사는 조카 얼굴이 오버랩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눈물이 왈칵 났다. 그러도록 줄줄 내버려두었다.

두리안 거기서 두리안을 먹으니 대번 목포 금메달식당에서 홍어를 먹은 일이 생각났다. 막연히 ‘나는 홍어를 못 먹는다’ 여겼던 마음이 한낱 헛것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된 때, 여전히 홍어를 즐겨 먹진 않지만 적어도 그걸 먹을 수 있으며, 어떤 맛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때. 곳곳에서 두리안을 봤고, 그럴 때마다 한두 점 탐구하듯 시식했다. 그렇게 알게 됐다. 두리안은 이런 맛이구나. 내게 두리안은 과일 모양 고기다. 그것은 육식과일이다.

 

방콕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 수직도 수평도 아닌, 어쩌면 그것을 포함한 필시 만다라와도 같은 세계인 동남아. 거기서 자본주의의 거대한 꽃을 피운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밤에는 거침없이 섹스를 파는 거리를 봤고, 한낮엔 입이 떡 벌어지도록 공을 다루는 동네 청년들의 세파타크로를 봤다. 닭다리를 얹은 국수, 바나나를 넣은 부침개, 수박을 갈아 만든 주스, 배추와 같이 먹는 소시지, 온갖 채소를 따로 수북이 퍼주는 별의별 국수…. 하루 열두 끼를 마다 않고 먹었고, 공중으로 길을 낸 BTS가 만들어낸 흥미진진한 도시의 입체를 어쩔 줄 모르고 바라봤다. 이유랄 것도 없이, 그저 홀린 듯이, 방콕에 다시 오는 건 시간문제가 됐다.

짐 톰슨과 신라 때로 문화는 어떤 필터를 거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기도 한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통해 조선의 민예에 눈뜨듯이, 수많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뒤섞인 동남아 여행 마지막에 만난 짐 톰슨이라는 필터는 아름답고 강력했다. 박물관으로 단장한 짐 톰슨의 집에 들어가, 그가 벼리고 벼린 눈으로 걸러낸 것들을 체험하는 시간은 가히 쾌락의 정수를 선사했다. 동남아를 여행하며 겪은 온갖 시각적 경험들이 비로소 어떤 틀을 갖추어 정돈되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한 갈래겠지만 말이다. 서울로 돌아와 <동남아 문화산책>이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인 신윤환 박사는, 그 자신 동남아라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아예 그곳에 빠져버린 사람으로, 뜻은 뜨겁고 문장은 간결했다. 동남아 여행을 전후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소중할 줄로 안다. 그리고 신라를 생각했다. 가야를 떠올렸다. 일찍이 우리가 그들과 직접 바다로 통했던 시대, 천 년 전 경주에서는 이미 바다 멀리 서쪽에서 온 아름다운 유리 그릇이 쓰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