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애플렉을 찾아줘

벤 애플렉은 세 번째 연출작 <아르고>로 작년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배우로서 그런 평가를 받은 적은 없었다. 벤 애플렉은 이제 배우가 되고 싶다.

 

 

논란이 심했다. 벤 애플렉이 새로운 배트맨으로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불만을 쏟아냈다. 대부분 그의 연기력에 대한 우려들. 하지만 벤 애플렉은 자신 있어 했다. 자신 말고 제작진에 대한 신뢰였다. “<배트맨 V 슈퍼맨>은 <아르고> 의 각본을 쓴 크리스 테리오가 썼어요. 연출은 잭 스나이더가 해요. 그는 마법 같은 화면을 만드는 감독이에요. 실패할 확률이 적죠.” 과연 그럴까? 잭 스나이더는 <새벽의 저주>와 <300>으로 한때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떠올랐지만, 이후 <써커펀치>, <맨 오브 스틸>로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을 얻었다. 그러니까 벤 애플렉이 배트맨을 맡는 것만큼이나 잭 스나이더가 DC 코믹스를 영화로 만드는 것도 안심할 문제가 아니다. 

사실 벤 애플렉은 한동안 새로운 미적 성취나, 평단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감독과 영화를 찍지 못했다. 그가 맷 데이먼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굿 윌 헌팅>에서 구스 반 산트와 작업한 이후 (물론 그의 선택이겠지만) 블록버스터나 상업적 성공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감독하고만 만났다. 마 이클 베이와 <아마겟돈>과 <진주만>에 출연하면서 그는 지적인 이미지와 점점 더 멀어졌고, <데어 데빌>과 <페이첵>에서 연달아 주인공을 맡으며 라즈베리 ‘최악의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 게다가 당시 연인인 제니 퍼 로페즈와 <갱스터 러버>에 함께 출연하며 연기 못하는 배우라는 이미지에 ‘비호감’까지 더해졌다. 제니퍼 로페즈와의 약혼과 파혼, 그것을 둘러싼 스캔들과 온갖 가십은 영화 흥행에서 참담한 결과를 낸 벤 애플렉을 구석으로 몰았다. 그가 헤매는 사이, 여덟 살부터 많은 걸 함께 시작한 맷 데이먼은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되었다. 맷 데이먼이 제이슨 본을 연기한 <본 아이덴티티>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방향을 바꿨고, 이후 출연한 본 시리즈 2편과 3편에서 폴 그린그래스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가장 이상적인 성공-비평과 흥행 모두에서 성공을 거뒀다. 더 놀라운 건 <굿 윌 헌팅> 이후 맷 데이먼을 선택한 감독들의 면면이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 라, 스티븐 스필버그, 카메론 크로우, 스티븐 소더버그, 마틴 스콜세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코엔 형제까지. 배우에게 “어떤 감독과 일하고 싶나요?” 라는 질문에 답변으로 떠올릴 수 있는 대부분의 보기들.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감독의 명성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는 도대체 뭘까?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의 수상? 만약 여기에 동의한다면 지난 10년 동안 벤 애플렉을 캐스팅한 ‘좋은’ 감독은 테렌스 맬릭이 유일하다.

하지만 벤 애플렉은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다. 게다가 그 영화의 주인공. 그는 영화 <아르고>가 2013년 아카데미에서 수상함으로써 신뢰 받는 감독이 되었다. 단지 상을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아르고> 이전에 연출한 두 영화, <가라, 아이야, 가라> 와 <타운>, 모두 미국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그동안 벤 애플렉이 배우로서 함께 일한 어떤 감독보다 안정적인 연출력이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안목은 아쉬움이 남았다. 혹시 감독들이 그의 오만하고 거만한 이미지가 부담스러웠던 건 아닐까? 그래서 벤 애플렉에겐 기회조차 없었던 건 아닐까? 하필 이런 생각을 해본다. 배우에게 이미지란 과연 뭘까?

벤 애플렉은 이번에 데이비드 핀처의 신작 <나를 찾아줘>에 출연했다. 그는 닉 던을 연기하기 위해 그의 차기 연출작 <라이브 바이 나이트>를 10개월 미뤘다. 그가 연기한 닉 던은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나쁜 놈 이 되고, 살인 용의자를 넘어 근친상간을 의심받는 파렴치한이 된다.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닉 던은 애를 쓴다. 그건 벤 애플렉 그 자체다. 데이비드 핀처는 벤 애플렉의 안 좋은 이미지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닉이 받는 대중의 비판을 이해하고 동시에 대중의 인식과 싸우려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벤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 같았어요.” 끝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메소드 연기. 영화 원작 소설인 <곤 걸>에서 닉 던의 얼굴은 항상 부어 있고 숙취가 있다. 벤 애플렉은 술에 빠져 사는 얼굴과 몸을 유지한다. 그는 닉 던 그 자체로 영화 안에서 살아간다. 성기까지 노출하며,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나를 찾아줘>에서 닉의 가장 인상적인 대사. “나를 싫어하더니 이젠 좋아한다. 나를 증오하더니 이젠 사랑한다.” 벤 애플렉이 지금 스스로 얻고 싶은 답. 그건 닉 던의 목표와 맞닿아 있다.

 티셔츠는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바지는 구찌, 부츠는 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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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하고 거만한 이미지를 제 스스로 만든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자동차 딜러가 롤스로이스를 마음대로 빌려주겠다고 했어요. 진짜 좋은 기회잖아요. 하루 종일 이 차를 몰고 다니면서 친구들도 태워줄 생각에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타겠다고 했죠. 하지만 젊은 남자가 롤스로이스를 몰고 다니는 게 안 좋게 보였나 봐요. 지금 생각해보면 욕 먹을 행동 이었어요. 하지만 그땐 그런 유혹을 뿌리칠 만큼 똑똑하지 못했어요.” 벤 애플렉은 그동안 자신이 미디어에 엉성하게 대처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들었을 땐 엄청 놀랐다. “영화 쪽에서 일하는 한 여자가 저를 만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당신 좀 멍청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똑똑하네요.’ 그 말 듣고 엄청 충격 받았어요. ‘모두가 날 이렇게 바라보는 건가?’하고 걱정했죠.” 그가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행동한 건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그는 조지아 주에 있는 집에서 오랫동안 고민했다. “앞으로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으려면 뭘 할 수 있을까?” 그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영화 연출.

“첫 영화 <가라, 아이야, 가라>는 흥행은 별로였지만, 괜찮은 평가를 받았어요.” 하지만 그의 두려움은 계속됐다. 미국 영화감독협회에 속한 80퍼센트의 감독이 단 한 작품만을 연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는 어떻게든 두 번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타운>은 그가 두 번째 연출한 영화이자 주연과 연출을 동시에 한 첫 번째 영화다. “<타 운> 촬영 첫날은 제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날이었어요. 두 번째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되었으니까요. 제 영화엔 현란한 장식이 없어요. 시나리오를 열심히 쓰고, 연기에 집중하고, 꼼꼼하게 편집할 뿐이죠. 문제가 있다면 지나치게 열심히 했다는 거예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으니까요.”

배우들이 연기 경력을 쌓은 후 연출이나 제작에 도전하는 경우는 많아도, 스물다섯 살, (아무리 아역부터 연기했어도) 신인 시절, 각본가와 배우로 동시에 이름을 알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손 웰스가 유일할 까? (공교롭게 오손 웰스도 스물다섯 살에 <시민케인>을 만들었다.)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장르 영화에 두루 출연한 후 자신이 연출한 영화가 작 품상을 수상한 배우 겸 감독도 로버트 레드포드, 클린트 이스트우드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사람들은 벤 애플렉이 <나를 찾아줘>로 내년 아카데미에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한다. 혹시나 수상 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한다. 감독 벤 애플렉은 이제야 배우로서 기대받기 시작했다. 각본상을 받은 각본가가 감독이 되어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후, 마침내 다시 배우로 상을 받는 일? 그건 완벽히 새로운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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