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종의 마지막 승부

문태종은 인천 아시안게임 농구 대표팀의 주포였다. 뚝 끊겼던 한국 농구의 슈터 계보가 다시 말끔히 이어졌다.

헤드밴드는 NBA by 소품.

며칠 전 프로농구 개막전에서 8득점에 그쳤다. 아직 몸이 좀 무겁나? 농구 월드컵부터 아시안게임까지 비시즌 동안 쉴 틈이 없었다. 좀…. 4개월 정도 엄청 힘들게 훈련했다. 아직 피곤하다.

아시안게임 농구 대표팀은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이 이끌었다. 작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소속팀 LG는 모비스의 변화무쌍한 전술에 꽤 고전했다. 확실히 다른 감독과 좀 다른가? 꽤 엄하다. 개인 시간이 많이 없고, 대부분 팀원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밥 먹을 때도, 연습할 때도. 그게 나한테는 제일 어려웠다. 훈련도 힘들었지만 막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전술도 좀 배워왔나? 감독님이 대표팀에선 모비스가 쓰는 전술을 좀 감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하. 감독님은 게임 중에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다. 예를 들어 1쿼터에서 경기가 준비한 대로 풀리지 않으면, 2쿼터에 선수를 교체한다거나 다른 전술을 가동하는 식으로 적절한 지시를 내린다. 많은 감독이 경기 중엔 그렇게 잘 못한다. 시합이 끝난 뒤에 잘못된 점을 지적할 뿐이다.

아시안게임에서 스타팅 멤버는 아니었지만, 중간에 투입되어 분위기를 확 바꿔놓곤 했다.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벤치에서 경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면 뭔가 보인다. 어떤 부분을 내가 메워야 되는지.

그런데 대표팀은 농구 월드컵에선 한 경기도 못 이겼다. 5전 전패. 월드컵 직전에 경기를 치르지 않아 경기감각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뉴질랜드와 세 번의 평가전을 치르지 않았나? 거의 월드컵 한 달 전의 경기였다. 그러다 보니 첫 경기 앙골라전을 졌다. 이겼어야 하는 경기인데,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연습이랑 진짜 경기랑은 완전히 다르니까.

어쨌든 세계 수준에선 통하지 않았다. 한국 농구의 취약점은 뭘까? 키. 스피드나 기술은 좋은 편이다.

키보다 힘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키가 커도 힘에서 밀리면 리바운드를 잡을 수가 없다. 아니다. 힘이 세도 키가 작으면 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한편 아시안게임에선 승승장구하며 금메달을 땄다. 전환점이 있었나? 월드컵에서 진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 우리는 월드컵을 어느 정도는 연습이라 여겼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팀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아시안게임이 우리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2점 차로 이긴 이란과의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마지막 자유투 네 개 중에 세 개를 넣었다. 대표팀의 마지막 득점이기도 했다. 그럴 땐 긴장하기도 하나? 약간? 골을 넣었을 때의 감각을 계속 머릿속에 그린다. 종료 직전의 자유투는 부담스럽지만, 엄청 떨리진 았았다.

8강 필리핀전에선 38점을 넣었다. 수비를 달고 던지는 ‘터프 슛’도 꽤 많았다. 유재학 감독은 그런 모험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이른바 ‘그린 라이트’를 허용받은 건가? 혹은 자신의 판단이었나? 그 경기 끝나고 한 동료가 말해줬다. 막 슛을 잘 넣고 있을 때도 감독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고. 보통 슛 감이 좋다 싶은 날은 약간의 공간만 생겨도 슛을 던진다. 게임에서 던진 첫 번째, 두 번째 슛이 연이어 들어가면 자신감이 붙는다. 이후엔 실패할 거란 생각이 들질 않으니 계속 쏘려고 한다.

학생 때부터 슈터가 되고 싶었나? 199센티미터는 작은 키가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 난 3점 슈터가 아니었다. 오히려 돌파를 즐기고,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대학에서 슈터에 가깝게 변했다. 나보다 큰 선수들이 많았고, 매번 돌파를 할 수 없었다.

KBL에 오기 전, 전성기를 보낸 유럽에서도 3점 슛 하나는 끝내줬다. 특히 2006년 유로컵 기록을 살펴보면 3점 슛 성공률이 무려 48퍼센트에 달한다. 웬만한 선수의 야투 성공률과 맞먹는다. 경기당 슛은 10개 정도밖에 던지지 않았는데, 그중 절반이 3점 슛이었고. 효율적이랄까? 그게 내가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다. 유럽 리그는 효율적인 선수를 선호한다. 그러면서 난 중요한 순간에 클러치 슛도 많이 성공시켰다. 흔치 않은 타입이었달까? 어릴 때부터 이기적인 플레이를 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혼자 슛 20개를 던지고 그러는 건 별로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그런 방식이 더 잘 맞나? 점점 나이를 먹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미국 스타일은 좀 힘들다. 어릴 땐 언제나 내가 득점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했고. 지금은 패스, 리바운드, 아니면 리더십으로도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유독 적극적으로 리바운드에 가담했다. 우리 팀 멤버들이 키가 작았으니까. 월드컵부터 리바운드는 우리 팀의 과제였다. 아시안게임에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스몰 포워드가 리바운드에 가담하면, 속공이 약해지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컨디션이 좋아야 한다. 리바운드에 가담하고 나면 훨씬 빨리 뛰어서 공격 코트로 넘어가야 한다. 유재학 감독님은 모든 선수에게 잘 달릴 수 있는 몸 상태를 요구했다. 2킬로그램 정도 빠졌다.

전태풍은 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뛰면서 이건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돈은 잘 벌었지만 계속 실패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난 아니다. 돈도 잘 벌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속했던 팀의 연고지가 싫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 4학년 때 성적을 보면 경기 평균 19득점, 야투율 50퍼센트, 3점 슛 성공률 47퍼센트를 기록했다. NBA를 기대할 수 있는 성적이다. 그해에 NBA 직장폐쇄가 있었다. 시즌이 해를 넘겨 1월쯤에나 시작됐던 것 같다. 그래서 일단 프랑스로 건너가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다음 시즌을 앞두고 몇몇 NBA 팀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는데 잘 안 됐다.

4학년 때 모교인 리치몬드 대학교는 NCAA 전국 토너먼트에 진출했고, 1라운드에서 당시 강팀인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을 꺾었다. 경력을 통틀어 미국에서 뛴 경기 중 가장 큰 경기였을 텐데, 무려 24득점을 올렸다. 그런 상황을 즐기는 편인가? 지금도 ‘4쿼터의 사나이’라든가, ‘타짜’라고 불린다.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그런 평판이 있었다. 센 팀이랑 붙거나 큰 경기에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때부터 중요한 날이면 왠지 더 잘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많은 농구 전문가들은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득점을 넣는 능력, 이른바 ‘클러치 능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글쎄. 슛은 심리적인 문제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도 슛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본다. 나도 그렇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가 슛을 던져야 한다면, 난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미 그런 순간을 많이 지나왔으니까.

올해 우승하면 은퇴할 건가? 음, 어쩌면?

노장 선수로서 안정적인 2년 계약을 맺을 수 있었지만, 1년 계약을 택했다. 왜 그랬나? 난 마흔이고, 장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올 시즌 끝나고 내 몸 상태를 다시 보고 싶다. 또 시즌 중엔 가족들과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창원 LG의 훈련시설은 이천에 있는데, 집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쉽지 않다.

에너지를 비축하며 뛰는 것처럼 보인다. 어슬렁거리는 것 같다가도 어느새 슛을 쏘고 있다. 나이가 들면 그게 중요하다. 팀의 공격 패턴이나 전술을 잘 숙지하고 있으면, 언제 열심히 뛰어야 하고 언제 조금 긴장을 풀어도 되는지 알 수 있다.

전술적으로 꽉 짜인 팀과 선수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장려하는 팀 중 어느 쪽이 잘 맞나? 전술적인 팀. 그게 효율적이니까. 그리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마찬가지로 동료들이 뭘 할지도 예측할 수가 없다.

올 시즌 KBL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다. 유럽에서 제일 잘 벌 땐 얼마나 벌었나? 많이 벌 때는 두 배 정도?

그때 한국에 왔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선수였을까? 오히려 나이가 들고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들이 내 의견을 잘 받아들여준다. 젊을 때 왔으면 나한테 더 많은 부분을 요구했을 것이다. 규율 같은 부분도 그렇고. 좀 더 힘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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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 피처 에디터] 레코드와 농구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