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혜원 신윤복

혜원은 숫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라는 말조차 없던 때, 혜원은 무엇을 어떻게 왜 상상하는가?

치콘느 유스Ciccone Youth. 1986년에 록 밴드 소닉 유스 멤버들이 결성 해 앨범 한 장 달랑 내고 끝낸 프로젝트. 그뿐이다. 무대에서 연주 한 번 하지 않았다. 조선의 화가 혜원 신윤복을 떠올리면서 뜬금없이 치콘느 유스를 들먹이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2013년 3월 종로구 견지동 동산 방화랑에서 혜원의 그림을 보던 장면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날 바람이 차고 매웠다. 커터 칼날을 뺨에 대면 그와 같을까? 바람은 길이 꺾이는 모서리에서 특히 사나웠다. 간신히 화랑 유리문을 밀고 실내로 들어서자 안경에 오리무중 김이 서렸다. 나는 방금 내려놓은 가마니처럼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전시명은 <조선 말기 화조도전 – 꽃과 새, 풀 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 조금씩 김이 가시자 나는 빨려가듯 혜원의 그림을 찾아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혜원의 그림이 있었다. 1809년에 그렸다는 정확한 기록이 있어 더욱 값진 <화조도첩>은 총 10폭의 그림이 수록된 화첩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한 폭씩 떼어 나란히 놓은 참이었다.

 

흑고니 두 마리가 물살을 가르는 그림이 첫 번째였다. 두 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헤엄치는데 뒷놈은 고개를 위로 꺾었다. 먹이를 삼키느라 그랬는지 다만 종의 습관이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쓱쓱 길게 그린 물살과 수면 아래로 슬쩍 보이는 휜 발로 짐작하건대, 제법 속력을 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윽고 놈들의 눈을 봤다. 혜원의 그림에서 눈을 찾는 건 불가결한 일. 나는 보았다. 앞놈의 눈이 나를(화가를) 쏘아보고 있음을. 고개를 쳐든 뒷놈 또한 시선만큼은 나를(화가를) 향하고 있음을. 말하자면 혜원은 흑고니 두 마리가 한가로이 노니는 장면을 멀리 떨어져서 본 게 아니라, 방심하고 헤엄치다 갑자기 인간과(자신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 1초도 안 될 타이밍을 지척에서 낚아채 그렸다. 다음 장면은 뭐였을까? 돌연 나타난 인간에 혼비백산한 두 놈이 생난리를 피우며 수면을 박찼을까? 혜원이구나. 당신이군요. 나는 떨렸다. 좋아서 웃었다.

혜원의 그림은 언제나 장면의 앞뒤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마치 동영상의 정지화면처럼. 그의 그림에서 눈을 찾는 이유는 시선을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그림 속에서 서로 오가든, 그림 밖으로 뻗어 나오든 그 시선을 잇다 보면 회화라는 평면이 어느새 입체로, 영상으로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가 그림에 눈동자를 찍는 순간은 언제일까? 혹시 맨 마지막은 아닐까? 거참 유치한 줄 알면서도 호기심은 꿀처럼 달라붙었다.

다섯 번째 그림에서 나는 머리칼이 곤두섰다. 그림 중앙에 매가 한 마리 있다. 매는 나뭇가지에 앉았는데, 뒷발톱이 슬쩍 들려 있다. 먹잇감을 발견한 모양이다. 무게중심은 응당 앞으로 기울었고, 눈동자는 뚫어져라 표적을 겨누고 있다. 놈은 지금 공중에 몸을 내던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혜원의 시선은 어디인가? 매보다 위다.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표적을 내려다보는 매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개구린지, 들쥐인지 매의 표적은 그리지 않았다. 그건 매나 볼 수 있는 것. 표적과 매와 화가를 잇는 선이 대번 생겨난다. 직선이다. 황홀할 정도로 빠른 직선이다. 기가 쭉 빨리는 건지, 기운이 쑥 들어오는 건지, 도망치듯 그림 앞을 떠나려 했다. 그때 다른 게 보였다. 이파리들. 일정한 방향으로 쏠린 연두색 선들. 마치 카메라로 움직이는 피사체를 장노출로 찍을 때 생기는 잔상 같은. 그것은 곧 사진적 표현이었다. 나뭇가지에 앉아 미동도 없는 매와 바람에 떠는 이파리, 전혀 다른 속도인 두 사물을 동시에 담으면서 혜원은 숫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라는 말조차 없던 때, 혜원은 무엇을 어떻게 왜 상상하는가? 마지막 그림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소나무가 있었다. 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달은 잘려 있었다!

잘린 달이라니, 행여 ‘옛 그림’이라는 말로 에두를 수 있는 수많은 회화 중에서 잘린 달을 그린 그림이 있었나? 더구나 조선의 화가가 먹으로 그린 그림에서.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도 그런 건 생각나지 않았다. 코앞에 놓인 잘린 달. 맙소사, 그건 고안된 ‘프레임’이었다. ‘줌’이었고 ‘크롭’이었다. 왼쪽 아래에 있으니 달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중일 터. 어느 보름날 밤 혜원은 소나무 아래에서 달을 기다렸다. 이윽고 달이 소나무 가지를 타고 오르자 ‘줌’으로 확 당겼다. 그리고 ‘크롭’으로 싹둑 잘라버렸다. 총 10폭짜리 <화조도첩>은 그렇게 끝난다.

그날 동산방화랑을 나와 수표교 쪽으로 걸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인가를 했는데, 그 결을 지금 기억하진 않는다. 다만 그 후로 혜원의 그림을 대하는 내 호기심과 시선은 철저히 사진과 카메라에 지배당했다. 내게 어렵지 않은, 실은 간결한 일이었다. 카메라와 사진은 내가 어떤 시각적 대상에게 들이대는 유일한 도구이자 최선의 판단이었다. 프레임, 에너지, 낯섦, 겨누기…. 왜 혜원 신윤복을 좋아하는가?, 왜 혜원 신윤복만 따로 좋아하는가? 나는 꼬집듯이 자신에게 (그리고 혜원에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두 사람만의 일.

서울에 살고 있다. 2백 년 전 혜원이 살았던 도시다. 어쩌면 혜원의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겹쳤을지도 모른다. (왠지 그의 신발 사이즈는 270보다 작을 것 같지만.) 인왕산이 보인다. 한강이 서쪽으로 흐른다. 혜원의 생애는 온통 미스터리로 남았다. 출생과 사망조차 거의 짐작과 추측이 다. 남은 건 그림뿐. 나는 한동안 혜원을 ‘미스터리’로 상정하고 어떻게든 그 속에 들어가 퍼즐 조각을 맞추고자 애썼다. 읽고, 찾고, 생각하고, 보고, 판단하고, 추측하고, 다시 봤다. 그러다 멈췄다. 나는 결국 미스터리에 속하는 쪽을 택했다. 풍속화든, 인물화든, 사진이든, 디스토션이든, 플래시든, 노이즈든 그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기로 했다.

이제, 혜원에게 뜬금없이 들이댄 치콘느 유스에 대해 말할 차례일까? 동산방화랑에서 <달과 소나무>를 본 얼마 후였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특별한 뭔가를 찾고 있었고, 어떡하면 그것을 갖거나 체험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있었다. 방법은 하나. 폴더를 만들어 다 담는 것. 벤쿠버에 사는 조각가가 만든 아크릴 조각, 아유타야 왕조의 탱화 장식, 금강 호피석, 프랑크 듀랑이 요즘 벌인 일, 아추마 마코토가 새로 꽂은 꽃…. 그러던 중 치콘느 유스의 앨범 이 나왔다. 나는 홀린 사람처럼 되었다. 마돈나의 오른쪽 눈이 반 이상 잘린 표지는 즉각 혜원의 <달과 소나무>와 충돌을 일으켰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걸 나란히 놓기만 한다. 방금 앨범을 틀었다. 소리가 난무한다. 나는 죽는 날까지 이 글을 고쳐 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