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100년의 자격

‘호방한 기개와 극도의 호사스러움.’ 마세라티 브랜드 설립 100주년 기념 행사의 일관된 분위기였다. ‘센테니얼 게더링’이라는 이름으로 수백 대의 마세라티가 모였다.

이탈리아 모데나의 어느 골목을 접어들 때, 저쪽에서 불어오는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에겐 낯설고 다른 누군가에겐 자랑스러운 풍경이 곧 펼쳐졌다. 이 넓은 광장에 도열해 있는 마세라티는 모두 몇 대였을까? 지난 100년간 생산된 마세라티 중 여기 서 있는 모든 마세라티의 이름은 또 뭘까? 광장에는 동경과 감탄, 질투가 섞여 있었다. 누군가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을 땐 광장을 둘러싼 거의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원하고 명쾌한 소리, 때론 카랑카랑하고 대개는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 아무 의심도 없이 ‘저 자동차는 살아 있는 게 아닐까?’ 상상하게 만드는 소리. 100년을 지켜온 브랜드, 마세라티의 성격이 그 소리에 다 압축돼 있었다. 광장 주변엔 2백여 대의 마세라티를 전 세계에서 직접 운전하고 온 사람, 그들의 가족이 카페에 앉아있었다. 약 30개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5백 명, 유럽과 아시아, 미국과 호주, 중동에서 초대된 기자가 90여 명이었다. 여기에 그저 수많은 마세라티가 전시된 풍경을 즐기려는 모데나 주민들까지. 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낮고 차분하게 광장을 메웠다. 그 와중에 우렁찬 건 가끔씩 들리는 배기음 뿐이었다. 이날 그랑데 광장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마세라티 2백여 대의 방식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삼지창 트리아이나Triaina는 그대로 마세라티의 엠블럼이 됐다. 여섯 형제 중 주축이 됐던 건 엔지니어이자 레이서였던 알피에리 마세라티, 트리아이나를 마세라티의 엠블럼으로 다시 디자인한 건 다섯째 마리오 마세라티였다. 이 형제들은 그들이 만들 자동차의 성격을 미리 짐작했던 걸까? 포세이돈의 그 성격대로 바다와 땅을 동시에 질주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이미 100년 전에 마세라티의 엔진룸에서 파도가 치고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길 의도했던 걸까? 승리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했던 마세라티의 본질을 신화에서 짐작할 수 있다면, 그 해석의 여지야말로 풍성하고 문학적이다.

 

올해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돼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마세라티의 콘셉트카다. 이 아름다움 그대로, 2016년 출시 된다. 후륜구동 방식으로 최고출력 404마력에 달하는 V6 트윈터보 엔진이 장착될 예정. 2년 후엔 이 차의 배기음을 들을 수 있다.

올해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돼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마세라티의 콘셉트카다. 이 아름다움 그대로, 2016년 출시 된다. 후륜구동 방식으로 최고출력 404마력에 달하는 V6 트윈터보 엔진이 장착될 예정. 2년 후엔 이 차의 배기음을 들을 수 있다.

 

 

1971년에 만든 마세라티 부메랑Boomerang이다. 4,709cc V8 엔진이 310마력을 낸다.  

1971년에 만든 마세라티 부메랑Boomerang이다. 4,709cc V8 엔진이 310마력을 낸다.

광장을 가로질러 조금 더 걷다 보면 페폴리라는 이름의 작은 골목이 나왔다. 그 골목에 마세라티가 태동한 작은 공간이 있었다. “여기가 공방이라고?” 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네, 여기서 마세라티가 태어났어요.” 마세라티 글로벌 홍보 담당자 카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골목 어귀 오른쪽 작은 문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작은 공간, 누군가는 풍미가 좋은 와인 한잔을 떠올리기도 했던 그 공간이 마세라티 최초의 공방이었다. 자동차를 만들었다기보다, 차라리 오붓한 응접실 같았다. 거기서 알피에리 마세라티를 비롯한 여섯 명의 형제가 모여 있었다. 망치로 철을 때리고, 벽엔 온갖 공구가 걸려 있고 저쪽에선 엔진을, 다른 쪽에선 변속기를 만들고 서로 대화하면서 조립하는 풍경이라니. 공장과 공방은 그렇게 다를 것이다. 효율과 대화, 이성과 감성, 직선과 곡선의 차이. 마세라티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해석의 여지를 무한으로 열어놓고 한 공간에서 조율하면서 만들어가는 한 대의 차였던 것이다. 100년 전, 이탈리아 볼로냐의 겨울이었다.

레이싱은 마세라티의 근원이었다. 레이서이자 엔지니어였던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완성차를 경주용 자동차로 개조해서 직접 운전해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경주에서 철수한 건 1957년이었다. 창립부터 그때까지 23개 챔피언십과 32개 F1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횟수만 5백여 회.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마세라티의 첫 차 티포Tipo 26을 직접 몰고 경주에서 우승한 기록도 있다. 1950년대에는 전설적인 레이서 후안 마뉴엘 판지오가 250F를 타고 F1 그랑프리에 51번 출전, 그 중 24번을 우승했다.

 

중국에서 이탈리아까지. 센테니얼 게더링은 중국 대륙과 이탈리아를 육로로 이었다. 이들의 마세라티 보닛에는 중국에서 이탈리아까지의 여정이 지도로 그려져 있었다.

중국에서 이탈리아까지. 센테니얼 게더링은 중국 대륙과 이탈리아를 육로로 이었다. 이들의 마세라티 보닛에는 중국에서 이탈리아까지의 여정이 지도로 그려져 있었다.

 

엔초 페라리 박물관에 전시된 마세라티의 역사적인 자동차들. 모두 소개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엔초 페라리 박물관에 전시된 마세라티의 역사적인 자동차들. 모두 소개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모데나에 있는 엔초 페라리 박물관에서는 “마세라티 100년- 순수 이탈리아 스포츠카의 한 세기”라는 제목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과연 역사는 보존하고 전시하며 되새기는 것. 1932년 마세라티 티포와 1937년 마세라티 6CM을 비롯한 십수 대가 거기서 조명을 받고 서 있었다. 이날 저녁, 마세라티 모데나 본사 공장은 근사한 파티장이 되었다.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를 만드는 공장 입구 오솔길은 향초로 장식돼 있었다. 오른쪽 생산 라인 천장에는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가 매달려 있고, 왼쪽에는 치즈와 하몽, 살라미와 와인이 준비됐다. 박물관과 공장 생산 라인의 경계를 흩뜨리면서 그들의 철학을 제대로 전시하는 방식이었다. 마세라티의 아름다움은 완성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아름다움과 감성이야말로 페폴리 골목의 작은 공방에서 박물관과 공장을 아우르는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마세라티가 내는 소리는 튜닝 전문가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문위원단은 피아니스트와 작곡가 등 음악가로 구성돼 있다. 엔진음을 악보에 채보하면서 세심하게 조율한 결과다. 그 결과는 과연 음악적이다. 실제로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의 엔진에 센서를 달아 주파수를 분석하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부터 심박수와 혈류량을 측정하면 전설의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해 들려줬을 때와 비슷한 결과치가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올린의 도시, 크레모나에 있는 스트라디바리Stradivari 박물관이 마세라티를 위한 작은 연주회를 헌정한 건 그래서였을까? 이젠 전설이 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마세라티 3500GT로 마세라티와의 인연을 시작했던 도시도 크레모나였다. 마세라티는 2007년 파바로티 타계 이후에도 파바로티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크레모나 코뮨 광장에서도 모데나 그랑데광장에서와 같은 전시가 이어졌다. 마세라티 센테니얼 게더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도시를 돌며, 각각의 광장에 각자의 차를 전시하는 식으로 축하를 이어갔다.

 

01 레이스에 출전한 1956년의 마세라티 250F. 02 1954년 마세라티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스털링 모스. 03 1950년대 마세라티 공장.

01 레이스에 출전한 1956년의 마세라티 250F.

02 1954년 마세라티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스털링 모스.

03 1950년대 마세라티 공장.

볼로냐, 모데나, 크레모나를 잇는 마지막 도시는 토리노였다. 레지아 디 베나리아라는 이름의 성에서 열린 만찬은 마세라티의 정수를 꿰뚫는 것 같았다. 성 입구에 전시된 마세라티 알피에리는 전 세계가 극찬했던 콘셉트카, “제발 이대로만 양산됐으면 좋겠다”고 바랄 만큼 아름다운 차였다. 달리기 성능?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름다움의 나라에서, 그 자체로 조각인 것처럼 전시된 차가 성 마당에 있었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걷는 사람들, 선대부터 마세라티와 인연이 있었다며 웃는 젊은 귀족, 전 세계에서 초청된 기자와 오랜 고객들의 환대가 그 성을 가득 메웠다. 마 세라티는 이 행사를 3일간 진행했다. 마지막 날은 국립 자동차 박물관에 들러 이탈리아 자동차의 역사를 봤다. 오후엔 참가자 중 가장 아름다운 마세라티를 뽑는 콩쿠르 드 엘레강스가 토리노 산 카를로 광장에서 열렸다. 최고 디자인상 수상자는 마세라티 멕시코 4200 프로토타입 프루아였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겨루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누가 우승하는 일은 썩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마세라티는 100년의 역사를 3일에 압축해 모두에게 선물했다. 전 세계에서 자신의 마세라티를 몰고 이탈리아까지 온 고객들은 그 자체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국팀은 몇날 며칠을 달려 육로로 이탈리아까지 왔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도. 과연 100년 만의 모임, 센테니얼 게더링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행사. 시간과 역사를 아낄 줄 아는 문화 속에서만 창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04 마세라티 모데나 공장에서 혹은 레지아 디 베나리아 성에서 열렸던 성대하고 호사스러운 규모의 만찬.

마세라티 모데나 공장에서 혹은 레지아 디 베나리아 성에서 열렸던 성대하고 호사스러운 규모의 만찬.

“Maserati, The Absolute Opposite of Ordinary.” 엔초 페라리 박물관에서 진행된 전시에는 이 문구가 상징처럼 쓰여 있었다. “마세라티, 평범함의 완벽한 반대말.”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될까? ‘ordinary’에는 평범함, 보통의, 일상적인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의 반대편 끝에 마세라티가 있다고, 좀 넓게 이해하는 게 옳을 것이다. 마세라티는 자격이 있다. 1914년 이래 흔들림 없이, 그렇게 매혹적인 100년을 지켜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