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도 모르면서

유럽이며 일본이며, 음식 맛은 우리보다 짠데 왜 소금 섭취량은 한국인이 최고일까?

Food판형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1일 소금 섭취량은 5그램이다. 한국인은 하루에 대략 12그램을 먹는다. 2배 이상 먹는 셈이다. 이렇게 소금을 많이 먹으면 심장병, 뇌졸중 등에 걸릴 수 있다며 소금을 줄여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정부에서도 소금 줄이기 운동에 나서 저염 식단을 보급 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인은 그 정도 소금을 먹어도 괜찮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내가 가진 정보로는 어떤 말이 맞는지 판단 할 수가 없다. 그 논의와 관계없이, 음식을 맛있게 먹자면 과다한 소금은 좋지 않다. 소금 섭취를 줄여야 한다. 오직 맛있는 음식을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것임을 먼저 밝혀둔다.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인은 유럽인보다도, 일본인보다도 소금을 많이 먹는다. 이 자료를 보고 “어, 이거 이상하다”라고 느낄 수 있다. 유럽이며 일본에 가서 음식을 먹어보면 우리보다 음식이 더 짠데 왜 한국인이 소금을 더 먹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 까닭은, 한국인은 짜게 먹으면서도 짠맛으로 먹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혀가 오미를 느끼는 방식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미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맛에 관여하는 감각은 후각, 청각, 시각, 촉각 등이 있지만, 짠맛은 혀로만 느끼는 것이니 미각에만 집중하자. 미각, 즉 혀에서 느끼는 맛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 다섯이다. 혀에서 이 맛을 느끼도록 인간이 진화한 까닭은 생존과 관련이 있다. 짠맛은 오직 소금에서 얻는다. 소금은 나트륨과 염소의 결합이다. 나트륨은 신경과 세포의 기능을 유지시키며 체액을 조절하는 등의 일을 한다. 쉽게 말해 나트륨, 즉 소금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인간은 짠맛을 좋아하게 세팅돼 있다. 단맛은 당에서 얻는다. 당은 몸의 에너지 원이다. 이 역시 인간이 좋아하게 세팅돼 있다. 감칠맛은 단백질의 맛이며, 몸을 구성하고 에너지로 사용하니 이 또한 인간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반면 신맛과 쓴맛은 인간이 원래 좋아하게 세팅된 것이 아니다. 신맛은 부패의 맛이고 쓴맛은 독의 맛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신맛과 쓴맛을 즐기는 것은 경험 축적과 학습의 결과다. 신맛 또는 쓴맛이 나는 음식물 중 먹을 수 있는 것만을 가려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를 후대에 학습시킴으로써 즐기게 된 것이다. 그럼 이제 인간이 ‘맛있다’고 느끼는 미각의 포인트가 다 나왔다. 짠맛, 단맛, 감칠맛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으면 본능적으로 맛이 좋다고 느끼게 되어 있다. 신맛과 쓴맛은 교육되지 않으면 즐기지 못할 수도 있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통각이다. 피부나 눈에 바르지 않고 입에 넣어 이를 즐기기 때문 에 맛으로 착각한다. 매운맛을 유난히 좋아하 는 한국인이 매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어 이구 어이구”하며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땀 을 뻘뻘 흘리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서도 그 매운 음식을 또 입에 밀어 넣는다. 고통 을 즐기는 것이다. 일종의 마조히즘일까? 맞다. 몸에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가해지면 뇌 가 이를 속인다. 도파민이 분비되어 그 고통을 덜어준다. 도파민은 일종의 생리적 마약이다. 이 도파민을 즐기기 위해 혀가 아프도록 매운 음식을 먹는 것이다.

 

매운맛의 당의정 전략 

한국인이 유럽에 가서 음식을 먹으면 한결같이 이렇게 반응한다. “짜다.” 내 입에도 확실히 짜다. 소바 같은 일본 음식을 먹으면 또 이런다. “달고 짜다.” 그 역시 맞다. 그러면 한국 음식은 어떤가. 언뜻 생각하면 “매워”라는 답을 떠올릴 수도 있으나, 아니다. 맵기만 하다면 인간은 도저히 버티지 못한다. 궁금하다면 시판되고 있는 ‘캡사이신’ 즉, 고추에서 추출한 매운 물질을 혀에 대어보길 권한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데굴데굴 구를 것이다. 한국 음식은 맵고 달고 짜다. 유럽은 짜고, 일본은 짜고 달며, 한국은 짜고 달고 맵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한국 맛에서 매운맛 하나를 빼면 일본 맛이고, 매운맛과 단맛 둘을 빼면 유럽 맛이다. 

 

떡볶이, 라면, 짬뽕, 김치, 비빔국수, 함흥냉면, 쫄면, 양념치킨, 닭강정, 돼지불고기,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낙지볶음, 순대볶음, 닭발, 닭볶음탕, 찜닭, 아귀찜, 꽃게찜, 갈치조림, 고등어조림, 부대찌개, 김치찌개, 곱창볶음, 물회, 순두부 찌개, 닭갈비…. 이 밖에도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루룩 나열해보라. 똑같이 맵고 달고 짜다. 그저 매운 것이 아니다. 맵고 달고 짜다.

 

매운맛 하나만 있으면 고통이 극심해 어떤 인간이라도 잘 먹질 못한다. 매운 음식을 입에 넣고 몸을 ‘학대’해 도파민이 분출되게 하려면 매운맛을 위장할 필요가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게 단맛이다. 단맛이 혀에 닿으면 뇌는 그 음식을 계속 먹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매운맛에 단맛을 첨가해 먹음으로써 몸을 속이는 것이다. 일종의 당의정 전략이다. 하지만 매운맛과 단맛만 있으면 균형감이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짠맛이다. 균형을 맞추어야 하니 매운맛이 강해지면 단맛도 강해지고 덩달아 짠맛도 강해진다. 짠맛에 익숙한 유럽인, 짜고 단 맛에 익숙한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짠돌이’가 된 것은 그놈의 매운맛 때문이다.

 

한국인은 매운맛 중독, 도파민 중독에 빠져 있다. 한국인은 원래 매운맛을 좋아하며 매운맛이 한국 음식의 중요한 특징인 듯이 말한다. 외국인에게 매운 음식 먹여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한국의 맛이라며 우쭐해한다. 마조히즘에 사디즘까지 갖춘 것일까?

요즘 보급되는 저염식 레시피를 보면 기존 음식에서 소금만 빼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맛의 균형을 잡기 어렵다. 소금을 빼려면 먼저 고추부터 빼야 한다. 고추를 빼면 설탕이 빠지게 되고 덩달아 소금도 줄게 되어 있다. 이렇게 매운맛 단맛 짠맛을 동시에 줄이면 그릇에 덩그러니 남는 것은 식재료의 민낯이다. 맵고 달고 짠 음식에서 재료의 맛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있나? 예를 들어, 닭강정에서 닭고기의 맛을, 아귀찜에서 아귀의 맛을, 함흥냉면에서 감자면의 맛을 제대로 느낀 적이 있나? 그 어떤 재료든 다들 양념 맛으로 먹고들 있지 않나?

 

 

뜨거운 맛, 차가운 맛 

음식을 입 안에 넣었을 때에 작동하는 감각 중 또 하나 유심히 관찰해야 하는 게 있다. 온도감각이다. 온도를 느끼는 감각수용체가 피부는 물론이고 입 안에도 있다. 적당히 따뜻하고 차가우면 온도감각 수용체가 작동하지만 그 도를 넘으면 통각 수용체의 몫이 된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우면 아프다. 통각임에도 매운 ‘것’을 매운맛이라 했으니 아주 뜨거운 것과 아주 차가운 것도 뜨거운 맛, 차가운 맛이라 불러도 될 것 이다. 한국인은 매운맛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이 두 종류의 맛을 즐기므로. 

 

한국인은 국물을 먹어도 팔팔 끓는 상태에서 입 안에 넣으려 한다. 식탁에 아예 불을 올려 다 먹을 때까지 팔팔 끓인다. 이를 “시원하다”며 먹는 것을 두고 한국인 특유의 감각이라 말하기도 한다. 특유한 것은 맞으나 자랑할 것은 아니다. 혀를 델 정도의 온도에서 음식을 먹겠다는 것은 그 음식에 포함된 다양한 맛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뜨거운 맛 앞에서 그 어떤 맛인들 힘을 쓰겠는가. 매운맛, 단맛, 짠맛도 힘을 잃는다. 그러니 뜨거운 맛 앞에서는 더 맵고 더 달며 더 짜게 양념할 수밖에 없다.

 

차가운 맛도 뜨거운 맛과 똑같이 혀의 마비 작용을 일으킨다. 빙수같이 차가운 육수에 국수를 말면 면과 육수의 맛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차가운 음식을 먹을 때 입 안이 얼얼하게 마비되어 아무 느낌이 없다는 것은 미각 수용체 역시 마비되었다는 뜻이다. 마비된 미각 수용체를 자극하자니 더 맵게 더 달게 더 짜게 양념해야 맛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인이 소금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짠맛에 중독된 것은 아니다. 맛도 아닌 매운맛, 뜨거운 맛, 차가운 맛에 중독되어 짠맛을 모르고 짜게 먹을 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한국 특유의 미각이 존재한다고 거짓말을 일삼아 온 수많은 음식 관련 글쟁이와 광고쟁이와 대중매체 종사자들 탓이다. 한국인이면 매운맛을 좋아해야 한다고? 한국인이면 혀를 델 정도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열치열이니 뭐니 하며 “어 어, 시원해” 해야 한다고? 한국인이면 얼음 둥둥의 냉면이며 막국수를 ‘소울푸드’인 양 들이켜야 한다고? 마이 무웃다,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