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드라마 작가의 불안

2014.11.17GQ

최근 월화수목 미니시리즈 드라마 중에서 시청률 20퍼센트를 넘긴 드라마는 단 한 작품도 없다. 드라마 작가는 이미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Entertainment판형

습관은 무섭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저녁 밥을 먹고 뉴스를 보고 드라마를 봤다. 그 습관에 기대 1960년대부터 TV 드라마가 명맥을 유지했다면 비약일까? 9시 뉴스처럼 10시 드라마도 변함없이 그 시간에 있었다. 그래서 재미없는 드라마는 있을 수 있어도 10시에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한 드라마 작가가 고백했다. 이 습관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불안하다고. “올 해 시작한 월화수목 미니시리즈 중에서 시청률 10퍼센트를 넘긴 게 하나도 없어요. 어떤 월화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높은 게 KBS 1 <가요무대>에요. 수목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높은 게 또 KBS 1의 <생로병사의 비밀>이고요.”

사실 TV에 충성하는 시청자 연령대가 점점 높아진다는 말은 지겹다. 인터넷이나 다운로드, 다시 보기에 익숙하지 못한 세대일수록 더욱 기존 TV에 매달릴 테니까. 그래서 월화수목 드라마가 재미가 없으면 고정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 아닐까? 그 사실만으로 드라마의 몰락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작가의 생각은 좀 달랐다. “주중 10시대 TV시청률의 총합 자체가 너무 작아졌어요. 그나마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는 높은 연령대의 충성도라도 있지만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10월 13일, 10시대 세 개 드라마의 시청률 총합이 20.5퍼센트였다. 동시간대 가요무대 시청률이 11.5퍼센트 였으니 지상파 네 개 방송을 본 시청자는 32퍼 센트라고 추측할 수 있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소위 대박을 친 유일한 드라마 <별 에서 온 그대>가 최고 시청률이 28.1퍼센트였으니 한 작품의 시청률과 비슷한 총합 시청률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슬슬 광고주가 더 이상 TV에 매달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라마 제작비 압박이 심해지겠죠.”

지금까지 드라마 제작비는 일본과 중국에 수출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책정했다. 그러니 줄어든 시청률에도 계속 비슷한 수준의 제작비를 유지하며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일본의 상황이 바뀌었다. 몇몇 스타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제외하곤 전반적으로 수출 금액이 반 이하로 줄었다. 한류의 인기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한류 열풍이 사그라진 게 뭐 새로울 것 있냐는 반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올해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최대의 수익을 낸 중국의 상황이 바뀐다면 정말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중국은 내년부터 방송법이 바뀐다. 한 방송국에서 중국 안의 두 개의 성省에만 콘텐츠를 팔 수 있다.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한 청책이다. 이러면 자체 제작에 열을 올릴 것이다. 벌써 한국 드라마 인력을 ‘모시고’ 가려는 움직임이 많다. 이제 중국 시장이 자립하게 되면 한국 드라마의 제작비는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기 힘들다. 한 드라마 제작자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 드라마의 수준이 궤도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예요. 그렇다고 한국 드라마 제작비를 줄일 수 있을까요? 작가나 배우는 자신의 몸값을 쉽게 떨어뜨리지 않을 거예요.”

“더 큰 문제는 드라마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거예요. 드라마의 경쟁상대는 드라마가 아닙니다. 게임이에요.” 모 VOD 서비스 회사의 팀 장은 ‘본방사수’가 많다고 다운로드가 적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가 다운로드가 높다. 시청률이 낮은데 다시 보기가 잘 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같은 시간대에 킬링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해야 해요. 일단 사람들이 TV 앞에 앉게 해야죠. 이번 월화 드라마 <비밀의 문>에 대한 기대가 다들 컸어요. 그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진뿐만 아니라 드라마 관계자 모두요. 하지만 지금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아요.” 내년 드라마를 편성 받은 한 작가는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 실패해서 미니시리즈가 올해 완벽하게 실패한 것 같다고 전 했다. “이제 하반기에 월화수목 미니시리즈 드라마 중에서 기대작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쓴 박혜련 작가의 <피노키오>밖에 안 남았어요. 그것마저 잘 안 되면 월화수목 드라마는 분기점을 맞게 되는 거죠.”

하지만 드라마 업계에선 내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소위 대형 작가가 줄줄이 월화수목 드라마로 돌아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대체 불가능한 입지를 확보한 김은숙 작가는 밝혀지진 않았지만 변신을 준비 중이다.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를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 콤비도 새로운 연령대의 사극을 만들 예정이고, <추적자>를 쓴 박경수 작가의 선 굵은 신작도 내년 초에 편성 되었다. “기대하고 있어요. 월화수목 드라마의 위기라는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올해 대형 작가의 작품이 별로 없었다는 점을 꼽을 수도 있는 거죠.” 공중파 드라마 PD는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한 스타 작가의 멜로드라마가 이슈가 꽤 많이 되었어요. 하지만 시청률은 10퍼센트를 간신히 넘겼을 뿐입니다. 어떤 드라마는 SNS에서 엄청 인기가 많은 것 같았지만 결국 10퍼센트를 한 번도 넘기지 못했어요. 젊은 층이 보는 드라마의 총체적인 위기인 거예요.” 이 말은 다시 TV 라는 매체가 연령층이 높다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한다. “아뇨 TV 드라마가 양분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월화수목 드라마가 여전히 젊은 세대를 노리고 만들어진다면 그 세대에 맞게 ‘플랫폼’을 선택해야죠. 공중파 TV는 공짜잖아요. 그래서 광고 수익에 의존하게 되죠. 무분별한 PPL을 왜 용납하고 있을까요? 결국 볼 때 공짜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 젊은 사람들은 편리 하기만 하다면 돈 주고 보는데 꺼려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원래 공짜인 드라마를 돈 주고 보는데 처음부터 돈을 받고 드라마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왜 안 나오겠냐는 거예요. 이미 하고 있잖아요.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로 시작했죠.” 작년, 스트리밍 비디오 서비스 넷플 릭스는 자체제작 드라마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아주 긴 영화라고 했다. 케빈 스페이시와 데이비드 핀처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열광했고 넷플릭스는 새로운 방송국이 되었다. 당연하다. 전 세계 가입자만 4천8백만 명이다. “소문에 따르면 최근에 상장한 중국 알리바바가 자신들의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를 통해 TV 콘텐츠를 판매할 예정이래요. 뭐 놀라울 것도 없어요. 하지만 그 시작을 알리기 위해,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해, 킬러 콘텐츠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 요. 어떤 인력도 끌어드릴 거예요. 어떤 배우이든 감독이든 작가든지요. 그리고 버짓(예산)의 수준이 달라요. 중국 드라마를 중심으로 시장이 개편될 수도 있어요..”

사실 1960년대부터 드라마는 습관이 아니라 광고 때문에 존재해왔다. 앞뒤로 방영되는 광고가 있었기 때문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젊은 층에게 노출하고 싶은 기업은 월화수목 저녁 10시 드라마 앞뒤로 광고를 하거나 PPL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드라마 작가들은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려면 그 시간대에 편성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전쟁이다. 시청률 전쟁, 스타 배우 모시기 전쟁이 밖에서 하는 전쟁이라면 진짜 싸움은 편성에 있다. “드라마 작가가 ‘작품을 쓴다’ 고 말하는 건 ‘편성이 됐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까지는 공중파가 가장 큰 힘을 지 닌 ‘플랫폼’이기 때문에 다들 그 편성에 사활을 걸죠.” 다른 드라마 작가는 TV가 우위라는 사실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렇다. 인터넷이 가장 큰 힘을 지니고 있다지만 매번 검색어 1위는 ‘지금 TV에 나오는 것’이니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TV를 보고 있다. 이 사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세트 중심으로 한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는 계속 TV에서 인기를 끌 거예요. 정확하게는 지속적으로 편성되기 쉽겠죠. 왜냐하면 적은 제작비로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그것만을 원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이를테면 ‘무비’형 드라마를 원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계속 줄어든 TV 광고 수익으로 제작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처음부터 유료를 선택할 수도 있어요. 차라리 콘텐츠를 직접 파는게 유일한 돌파구가 될 수도 있죠.”

처음 고백한 작가의 답도 비슷하다. “편당 5백원짜리 드라마를 1백만 명만 봐도, 5억원입니다. 제작비를 바로 회수할 수 있어요.” 1백만 명을 시청률로 따지면 고작 2퍼센트. “광고와 편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드라마를 처음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50년 전 보다 즐길거리는 정말 많아졌다. 모든 게 풍요로워졌다. 늘지 않은 건 시간뿐이다. 드라마는 사람들에게서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을 빼앗으려고 고민하고 있다. 더 이상 송신탑만 쳐다보고 있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에디터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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