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바로 그때 생각나는 물건.

[ALEXANDER WANG × H&M] 

제이바스는 슈퍼마켓이다.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자주 언급됐고, 영화 <유브 갓 메일>에도 나온 뉴욕 어퍼 웨스트의 동네 슈퍼이자, 뉴욕의 최대 식료품점이다. 여기서 파는 커피는 전형적인 미국식 커피다. 미국 각지에서 온 원두를 종류별로 갈아주는데, 깊고 심오하기보다는 매일 몇 잔씩 마셔도 부담 없는 편한 맛이다. 합리적이고 매력적이란 점에서, 시들해질 때도 됐는데 때마다 늘 이목을 집중시키는 H&M의 협업 컬렉션과 닮았다. 곧 서울에도 출시될 다음 협업 컬렉션의 주인공은 알렉산더 왕이다. 하이엔드 캐주얼로 유명한 그가 실용의 상징 H&M과 만났다. 이 둘의 이름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에너지를 느낀다. 김경민

 

 

[HERMÈS]
캡슐 커피의 간편함과 ‘버라이어티’한 맛에 길들여진 지 5년이 넘었지만, 가끔은 커피 원두를 사서 장식장에 넣어둔다. 커피콩을 보면 맛 보다는 어떤 순각이 생각나니까. 라이온, 인텔리젠시아, 새터데이 서프, 풍림다방까지 거기서 마신 커피에 대해선 잘 설명할 자신이 없지만, 그 커피를 마셨던 기억은 또렷하다. 최근에 선물 받은 랄프 로렌 커피도 마찬가지. 아직 이 커피를 마셔보지도, 모자이크 타일로 된 바닥과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서버가 있다는 뉴욕 랄프 로렌 카페에도 가본 적 없다. 언젠가 작은 티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이사 가는 날, 그날 밤에 마시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요즘같은 날씨라면 손잡이가 큰 투박한 머그잔과 무릎담요가 있으면 더 좋을 테고. 박나나

 

 

[JO MALONE]
매일 같은 향수를 뿌리는 건, 고대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자마자 몇 년 동안 쓴 톰 포드 네롤리 포르토피노를 선반 안쪽에 밀어두고, 조 말론의 앰버 앤 패출리를 당겨놓았다. 불을 만진 것처럼 뜨거운 향을 맡을 때마다, 섬세하고 음악적인 손가락을 생각한다. 부쩍 쌀쌀해진 아침엔 네스프레소 카자르를 마신다. 후추 향과 탄 맛이 뒤섞인 강도 12의 깊고 끈적한 에스프레소. 캐러멜 색깔의 부드러운 크림이 지나가고 나면 뒤에 남는 건 고통에 가까운 쓴맛뿐이다. 천천히 후후 불어 마시지 않고, 단숨에 그대로 넘긴다. 그 순간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마자 눈에 눈물이 고이는 독한 술처럼 아득하고, 눈도 못 뜰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간다. 손을 뻗어서 뺨을 부드럽게 만지고 싶단 생각을 한다. 나미가 샴페인 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님의 계절’을 듣는다. 가을은 온통 님의 계절. 마음에 귓전에. 강지영

 

 

[HAVAIANAS]
커피 좀 볶는다는 로스터리는 모두 그들만의 하우스 블렌드 커피를 만든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합정동 앤트러사이트에서 ‘공기와 꿈’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정말 꿈같이 낯선 음파처럼 들렸다. 뭐라고요, 하고 다시 묻기도 했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저서 <공기와 꿈>에서 따온 이름이라더라, ‘하늘을 본다는 것은 감정과 보는 것의 완벽한 융합체’라더라, 하는 철학적 수식에는 관심 없다. 여태껏 이 커피를 기억하는 건 결국 맛때문이니까. 지난가을, 서늘한 공기 속에서 커피를 마시며 검붉게 익은 체리 맛을 떠올리던 순간이 정말 꿈처럼 아득해졌다. 다시 가을, 열대 과일처럼 화사한 일탈이 필요한 계절이다. 이를테면 모헤어 스웨터에 울 코트를 걸치고, 얄팍한 통을 신는 일. 차가운 고무에 뜨끈한 발을 슬쩍 올려두는 일. 소스라치게 싸늘한 공기에 기어이 맨발로 맞서보는 일. 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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